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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와 함께 대구에 머물다 - 공연기획자, (사)한국문화공동체B.O.K 이사 임강훈
작성일
2018-06-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489

역사와 함께 대구에 머물다 - 공연기획자, (사)한국문화공동체B.O.K 이사 임강훈 지나간 이야기는 참 두고두고 꺼내보아도 할 말이 많다. 내가 잊었어도, 네가 기억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던가. ‘그때 우리 그랬잖아’하며 옛 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것은 그래서 참 소중하다. 누군가는 잊었어도,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자꾸 입 밖으로 꺼낸다면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임강훈 이사가 대구에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01. 대구의 근대건축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하고 문화 콘텐츠로 기획하는 임강훈 이사 02. 1930년대 북성로 전경 ⓒ시간과공간연구소

북성로의 비극적 과거

1905년,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던 북성로. 일본은 이곳에 대구역을 건설했다. 대구역이 생기면서 주변으로 커다란 역세권이 형성됐고 상권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일본인의 상권진입은 쉽지 않았다. 상권의 중심지를 커다란 성벽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 그 성벽을 중심으로 안쪽에는 조선인, 바깥쪽에는 일본인이 진출해있었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성안으로 상권을 확장하고 싶어 했고, 급기야 성벽의 철거를 요구했다. 이 성벽은 조선 중기에 만들어져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친일파였던 대구 시장 급 관료는 무참히 성벽을 허물어버렸다. 고종의 허가도 없이 말이다. 멋대로 부숴버린 성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허물어진 자리에는 바둑판처럼 반듯한 길이 났다. “길을 따라서 크고 작은 가게들이 들어섰어요. 성벽이 허물어지고 일본 상점들이 즐비해있었죠. 1950년까지 상당히 번화했어요.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왔던 공구들을 이곳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공구골목이 형성됐죠.”

대구의 공구골목은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나돌 만큼 없는 것 이 없었다.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개발의 붐이 일면서 과거의 상권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북성로 바깥으로 아파트가 들어섰고, 대구의 명동이라 불리는 동성로에 새로운 젊은 문화가 형성됐다. 거주자와 상권이 모두 빠져나가니 북성로에는 오래된 공구 공장이나 텅 빈 건물들만 있을 뿐이었다.

03. 선교사블레어주택,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등 근대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조성된 대구근대문화거리 ⓒ대구시 중구청 04. 임강훈 이사가 대구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기획한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은 골목 곳곳에 남아있는 숨은 이야기와 연계해 공연과 전시를 설계한 것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임강훈
05. 북성로사회적기업가 육성센터 건물. 임강훈 이사는 공연기획자이자 (사)한국문화공동체B.O.K 이사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 육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06. 음악과 공연, 역사, 문화 등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인 대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는 임강훈 이사

북성로의 지금

공구골목인 줄로만 알았던 대구의 북성로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들이 덧입혀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과 문화기획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점차 상권도 활기를 찾고 있다. 공구 판매가 아닌 문화관광지로서의 대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북성로에 관심을 가진 한 기획자가 있었어요. 북성로를 걷다가 건축양식이 특이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낡은 건축물의 옛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한 거죠. 건물 외벽에 붙은 타일을 뜯어보니 안쪽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거예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었죠. 개발붐을 비껴간 덕분에 아이러니하게 일제강점기 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보존된 셈이었어요.” 대구 북성로 근처에는 1,000개가 넘는 적산가옥이 있다. 직접 발로 뛰며 적산가옥의 위치를 확인하고 조사한 기획자(시간과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와 대구시 중구청의 노력 덕분에 북성로의 근대건축물들은 재개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근대건축물들에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복원했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금의 근대문화거리가 조성됐다.


밤이 되면 시작하는 근대로의 여행

임강훈 이사는 이 건물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하고 문화 콘텐츠로 기획하는 사람이다. 2016년 문화재청의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에서 임강훈 이사는 근대건물을 중심으로 ‘대구 야행’ 행사를 기획했다. 골목 곳곳에 남아있는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와 연계해 공연과 전시를 설계한 것. 2016 대구 야행 행사는 전국 10여 곳에서 펼쳐진 야행 행사 중 가장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임강훈 이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야행의 북성로 버전을 기획했다. 북성로의 공구골목에 한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창작한 것. 행사를 기획하기에 앞서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공부였다. 젊은 기획자 및 예술가들과 팀을 꾸려 왜 북성로가 생겼는지, 북성로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머물러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알아갔다. 각각의 팀원들은 이곳에 머물러 있는 숱한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였다. 100년의 역사 중 임강훈 이사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르도록 했다. 재즈, 판소리, 뮤지컬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근대골목의 이야기가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의외로 쉬웠어요.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라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국악 곡으로 만들어보는 식이었죠. 문화해설사가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와 곡을 연주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죠. 그 전에는 건물에서 기념사진 찍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음악으로, 공연으로 역사를 기억할 수 있죠.”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었다. 소재는 한일 병합(1910) 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근대의 공구골목 이 야기까지 다양했다. 전체 스토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나로 이어지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골목을 투어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선 후기에서 현대로 시간을 건너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기획자가 되기까지

원래 그는 사물놀이를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취미로 풍물을 하다가 이것을 업으로 해야겠다 고 생각했고, 동아리에서 하던 사물놀이를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것이 지금이 됐다. “처음 시작은 나의 공연을 위한 기획이었죠. 그때는 풍물밖에 몰랐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풍물을 즐기고 향유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이러한 바람으로 그는 공연을 기획하다가 현재는 전통예술에 대한 생산과 소비, 전 과정을 이어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 판소리, 사물놀이 등 전통예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연습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전통문화를 전하는 것에서 나아가 앞으로 통하는 것까지 고민한 결과였다. “옛날에는 노는 것 안에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잖아요. 노동요나 민요처럼요. 그때처럼 지금도 누구나 부르고, 보고, 즐기는 것이 우리 전통문화였으면 좋겠어요.”

임강훈 이사는 정말 바쁘다. 소속된 단체도, 진행 중인 사업도 정말 많다. 사회적 기업도 육성하고, 전통 예술극장도 운영하며 틈틈이 작곡과 대본도 쓴다. 공연기획자, 사업가, 예술가 등 그를 설명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통문화 하나로 집결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대구에 있다. 음악과 공연, 역사, 문화 등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대구에 있기에 그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대구에 머물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 대구에 가면 그가 전하는 옛 대구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이혜민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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