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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풍류와 멋, 절개와 노래가 산을 타고 흐르는 곳 함양
작성일
2014-11-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032

풍류와 멋, 절개와 노래가 산을 타고 흐르는 곳 함양
굽이굽이 이어진 산자락을 따라 골짜기마다 선비의 풍류가 흐르고, 고택을 따라 그 기개가 남아 있는 곳. 지리산 자락 아래 산촌(山村) 함양에는 아직도 선비가 산다.

지리산 높이 솟아올라 만길이나 거대한데

그 산 속엔 묻힌 옛 고을 함양이라 이르네

화장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

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

- 강희맹(1424~1483, 조선시대 문장가)

01. 선비의 고장 함양의 양반가 전통과 대를 이으며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개평마을

물 좋은 곳 정자도 좋더라

안동과 함께 영남 유림의 맥을 이어온 함양은 조선시대 선비의 멋과 마음을 만날 수 있는 땅이다. 일찍부터 묵향의 꽃이 핀 선비의 고장답게 향교가 있고, 남계서원을 필두로 10개가 넘는 서원과 100여 개 넘는 정자가 함양 땅 곳곳을 수놓고 있다. 그중 정자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풍류가 있던 쉼터이자, 시서(詩書)를 논하는 경연장이었다.

고색창연한 정자들이 여러 채 남아 옛 선비들의 풍류를 전하는 화림동계곡에 들어서니 산 내음과 물소리 어우러진 풍광마다 정자들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시선을 앗아간 곳은 거연정. 자연 암반 위에 거슬림 없이 세워진 정자의 풍채가 멋스럽다. 맑은 물과 우거진 나무, 가설해 놓은 구름다리가 어우러진 풍광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운치 있게 조화롭다. 이곳에서 선비들은 시를 읊고 학문을 논했을 것이다.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옛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든 농월정은 아쉽게도 화재로 소실돼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없다. 허나 굴곡진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이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가루를 뿌리며 반짝이는 모습은 농월정이라는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하는 듯하다.

그 옛날 의관을 갖춰 입은 꼿꼿한 선비들이 시서를 나누고 나지막이 책을 읽었던 곳. 물소리 새소리에 시를 읊고, 맑은 물 흐르듯 몸도 마음도 편히 흘러가게 놓아두었을 함양의 정자에는 처마 밑 단청 하나 기둥 하나에까지 고고한 선비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02. 경북 풍기의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된 남계서원

뼈대 있는 마을의 옛 이야기를 따라 걷노라면

개평마을은 선비의 뿌리가 깊은 양반마을이다. 약 100여 가구 200여 명 남짓 살아가는 마을에는 대를 잇는 종부들이 살고 있다. 전통과 대를 이어 살며 때론 집의 일부를 고치거나 새로 짓기도 했지만 집의 근간만은 고스란히 지키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택의 집안, 눈길 닿는 곳마다 옛 어른들의 추억이 어려 있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곳은 조선5현 중 한명이었던 정여창 선생의 일두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 넓은 터에 사랑채, 안채, 풍랑채까지 열두 동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고택 입구, 홍정문 우뚝 선 선비의 종택엔 ‘충효절의(忠孝節義)’, ‘백세청풍(百世淸風)’의 기운이 힘차다. 솟을 대문 안에 있는 붉은 빛의 홍정문은 조선시대 다섯 명의 충신과 효자를 낸 가문을 기려 나라에서 세운 문이다. 그래서인지 5백 년 고택엔 충효의 다짐이 새겨져 있다.

일두 고택 곳곳엔 옛집의 지혜가 곳곳에 스며있다.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운 보조 기둥의 경우 땅에서 올라온 습기로 나무가 빨리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단부는 석조로 했다. 나무 기둥도 비에 나무가 상할 경우 언제든 빼내 새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모두 짜맞춤을 했다. 손님이 머무는 사랑채엔 더욱 특별한 배려가 숨어있다. 손님을 위한 이동식 화장실을 두었던 것. 선비들이 모여 시류를 논하고 풍류를 나누다 보면 밤을 지새우며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고, 손님들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다 다칠 것을 염려해 이동식 화장실을 마련해 둔 것이다. 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넘어가는 중문에서도 사람에 대한 세심함이 배어있다. 누구든 넘나들기 쉽도록 문턱을 낮춰 놓았는데, 안채를 지키는 아낙들이 긴 치마자락을 들고 쉬 넘어 갈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03. 일두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 툇마루 끝에 미닫이 창살로 정교하게 마감된 마루벽장 
04.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인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

백성을 사랑한 선비의 마음이 담긴 정원

계곡마다 정자마다 마을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함양의 풍류는 천년의 숲이라 불리는 함양상림으로 마무리된다. 함양 읍내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다 할 것 없이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빛깔로 곱디고운 단장을 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햇빛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수풀이 무성한데, 은행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등 40여 종의 낙엽관목을 포함하여 116종의 2만 그루의 나무가 1.6㎞의 둑을 따라 80∼200m 폭으로 펼쳐져 있다.

함양상림은 신라시대, 위천( 함양 백전면과 함양읍 일대에 흐르는 하천)의 잦은 범람으로 인한 물난리를 막아보고자 당시 함양 태수였던 최치원(857~?)이 물길을 돌려 만든 인공 숲이다. 즉 백성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했던 최치원의 이야기를 간직한 숲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인지 숲 속 오솔길을 사목사목 걷노라면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조선의 선비의 마음을 만나게 된다. 숲 한가운데에는 자리한 최지원 선생을 기리는 정자에 올라서니 가을 햇살에 흥건하게 젖은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고,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살의 찰랑거리는 느낌이 좋다

05. 일두 정여창 선생의 타계 1세기 후에 후손들에 의해 중건된 일두고택

함양을 떠나기 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학사루(學士樓)에 올라섰다. 1692년 조선 숙종 때 고쳐 지은 누각은 정자와 달리 개인이 아니라 나라에서 지어 경연장으로 함양의 역사를 지켜온 누각이다. 최치원 선생이 자주 올랐던 학사루에 올라서니 어진 선비의 품 안에서 백성들이 불렀을 태평성대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높은 산이 푸르른 까닭은 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산이 내어준 물은 시간이 낸 자연의 길 따라 흐르고 흘러 사람에게로 가 닿는다. 사람에게로 가 숲을 흐르며 깨달을 진리도 들려준다.

녹음 짙은 숲 속 고즈넉한 정자, 산을 담고 물을 담고 바람을 담은 술잔 안에선 선비의 미소가 익어가던 땅, 함양. 이곳에서 사람들은 시간, 역사, 그리고 이곳을 거닐던 옛 선비들의 정신과 조우하게 된다.

06. 함양상림은 최치원 선생이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은 데서 만들어진 호안림이다.

 

글 이현주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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