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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한국의비
작성일
2014-11-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870

비碑란
어떤 일이나 그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목비로 남아 있는 것은 없고, 대부분 석비가 많다.
비의 형태는 고구려 석비인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년,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돌기둥 모양이 일반적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영향 속에서 비몸돌(碑身)과 거북 모양의 비받침(龜趺) 그리고 비머릿돌(螭首)을 갖춘 전형적인 형식을 이루었다. 한편 비몸돌은 앞면을 비양(碑陽), 뒷면을 비음(碑陰)이라 했고, 비몸돌의 상단부 또는 비머릿돌의 중앙에 비의 명칭을 새기는데 이를 제액(題額) 또는 전서(篆書)로 쓴다 하여 전액(篆額)이라 불렀다.
비문은 산문 형식의 서(序)와 운문으로 된 명(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렇게 서와 명을 갖춘 비를 비명(碑銘)이라고도 부른다.
비는 내용에 따라 묘비(墓碑)·탑비(塔碑)·사묘비(祠廟碑)·사적비(事蹟碑)·유허비(遺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갈라진다. 왕권이 확립된 시대의 왕릉비(王陵碑), 불교가 성행되었던 시대의 고승 부도탑비(浮屠塔碑), 제사를 지내는 지역의 신성함을 알리는 신사비(神祠碑)나 국경 순수 후에 세운 척경비(拓境碑)와 순수비(巡狩碑)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비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되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이며, 비의 형태와 비에 새겨진 비문 등은 미술사 연구는 물론 문자학, 서예학 등 여러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 5세기, 충북 충주시 소재)와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 6세기, 충북 단양군 소재),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561년, 경남 창녕군 소재) 등 상당수의 비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보물 제507호)
이 탑비는 선각대사 형미(逈微, 864~918)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고려 정종 원년(946)에 건립됐다. 비는 거북받침과 몸돌 및 머릿돌이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비받침은 몸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으로 조각하였다. 비몸에는 선각대사의 행적과 함께 비문을 지은 최언위(崔彦撝)와 비문을 쓴 유훈률(柳勳律)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중앙에 비의 이름을 새겼던 제액(題額)을 두고, 그 주위로 구름 속의 용을 조각하여 죽은 이의 영혼이 천상세계로 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1. 보주(寶朱) : 비나 탑, 석등의 맨 꼭대기에 얹은 부분. 비의 경우 용과 비슷한 상상의 동물인 이무기를 많이 새겼다.

2. 제액(題額) :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3. 비문(碑文) : 비의 내용을 새긴 부분. 많은 비문이 다른 기록에는 없는 중요한 역사 기록들을 지니고 있어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새겨진 글씨가 닳거나 깨지면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록의 보존을 위해서 탁본을 하기도 한다.

4. 비좌(碑座) : 중앙에서 비를 직접 받치고 있는 부분. 구름 무늬와 둥근형태의 조각을 새겼다.

5. 귀부(龜趺) : 거북 모양을 한 비의 받침돌. 비문을 후세에 오래 전할 수 있도록 장수의 상징인 거북을 주로 새겼다.

6. 귀갑문(龜匣紋) : 거북의 등껍질 모양과 비슷한 육각형의 문양을 새긴 부분.

01. 강진 백련사 사적비(보물 제1396호) ⓒ문화재청  02.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 ⓒ문화재청
03.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문화재청  04.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 ⓒ문화재청

 

감수 정제규(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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