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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삶의 무게를 지탱해주던 막역한 친구 ‘양조장’
작성일
2014-11-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517

삶의 무게를 지탱해주던 막역한 친구 ‘양조장’
농촌에서 새참으로 먹던 막걸리는 어느 때나 가장 중하게 챙긴 먹거리의 하나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농민들이나 도시로 이주한 이농민의 애잔한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존재였다. 그런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은 무슨 이유였는지 차츰차츰 없어져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시중에서 보는 막걸리들은 대부분 기계화 된 공장에서 만든 것들이다. 그 많던 양조장은 다 어디 갔을까?

양조장은 젊은이들의 추억은 없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당시에 찌그러진 주전자로 막걸리 심부름을 가기도 했고, 막걸리를 받아오면서 힘든 나머지 몰래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가며 홀짝홀짝 마시기도 했다. 양조장 주인은 몰래 마시는 이런 분위기를 미리 눈치 챘는지 심부름 온 학생에게는 막걸리를 짜고 남은 술지게미를 주었고, 집에 돌아가던 중 지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 다시 술지게미에 물을 넣어 휘휘 젓고 하나도 안 마신 양 막걸리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와 추억이 있는 막걸리 양조장은 지금 자취를 많이 감추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을 걸으면서 유통과 제조가 분리되었고, 특별히 양조장을 가지 않더라도 주변 유통매장에서 막걸리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 추억이 있는 양조장이지만 그 추억과 문화의 복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양조장은 대자본과의 경쟁에 허덕이며 자취를 감췄다. 근래에 수년간 막걸리 붐이 일었지만 그 문화로써 이끌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01. 1930년대 막걸리 빚는 광경

가장 신선한 막걸리를 만나볼 수 있는 곳 ‘양조장’

아직 시골 중에서는 직접 술을 사러 양조장으로 가기도 하는데, 도시민들은 대부분 막걸리를 사기 위해 양조장에 가는 문화를 거의 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양조장 문화를 복원하는 사업인 ‘찾아가는 양조장(농림축산식품부)’을 통해 우리 농산물의 산지이거나 3대를 이어가는 곳, 또는 보존가치가 있는 양조장을 선정하고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하는 곳이 생겼다. 이런 양조장에서는 술 익어가는 냄새를 맡아보며 과정을 배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술을 만든 사람과 직접 만날 수 있다. 언제쯤 술빚기를 시작해서 언제쯤 마시는 것이 좋은지 양조장 주인이 가르쳐준다.

사실 양조장은 술을 만드는 곳이란 이미지이지만, 알고 보면 자연의 산물인 발효공정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오감(五感)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발효될 때 나오는 수많은 탄산과 그 소리, 올라가는 온도로 인한 따뜻해지는 항아리, 그리고 무엇보다 발효에서 나오는 다양한 향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양조장이 재조명되다 보니 다양한 체험 행사 역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충남 당진에 위치한 신평 양조장(1933년 설립)의 경우, 단체객 대상으로 백련 잎을 사용한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고 막걸리 짜기를 진행한다. 겨울에는 살짝 따뜻하게 한 막걸리나 약주를 즐겨보는 체험도 하며, 출하 날짜에 따라 달라지는 막걸리 맛을 통해 발효시 어떻게 맛이 변하는가에 대해 설명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대기업과 외국인들의 체험이 이어지는데, 막걸리 양조장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독특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02. 옛 양조장 중에는 설립 당시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사진은 1930년대 지어진 신평 양조장 고택이다 
03.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양조장은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곧잘 찾는 장소가 됐다.

우리에게 양조장은 무엇인가?

우리는 변화무쌍한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그때그때 맘에 들지 않으면 바꾸고, 없애고, 뒤집고, 늘 외국의 것을 바라보며 도입해왔다. 그러다보니 우리 것은 뒷전이고, 너무 많은 것을 도입하다 보니 우리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았다. 가재 잡고 도랑 치던 고향의 냇가 모습은 사라지고 회색의 아파트로 변모하게 되었고, 이젠 20년만 지나도 오랜 역사의 모습으로 인식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오랜 세월동안 전통을 간직한 가게 몇 곳이 살아남았다. 한때 동네 입구의 길목에 있으면서 술 익는 향기가 솔솔 나던 곳, 모든 것이 바뀌었어도 수십 년에서 1백 년간 한자리를 지켜 온 ‘양조장’이다.

이제 양조장은 젊고 트랜디한 모습에 전통을 함께 담으며 변모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이제 막 걸러진 신선한 막걸리를 즐기기도 하고, 1백 일간 푹 숙성시킨 약주를 즐기기도 한다.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동을 느낀다. 이번 주말에 옛 양조장을 들러 막걸리 체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 쪽이라도 눈과 귀, 입까지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할 테니.

 

글·사진 명욱(디지틀조선일보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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