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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존재하는 살아있는 전통유산 인도네시아 바틱
작성일
2015-03-0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042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존재하는 살아있는 전통유산 인도네시아 바틱. 현재까지 여섯 종류의 인도네시아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중 사만(saman: 수마뜨라섬 가요사람의 전통춤)과 노껜(noken: 매듭이나 직조방식으로 만든 빠뿌아 지역의 가방)은 긴급보호가 필요한 유산에 속한다. 앙끌룽(angklung: 대나무 악 기), 와양(wayang: 그림자 인형극), 끄리스(keris: 단도), 바틱(batik: 왁스의 저항력을 이용한 염색 기법) 등 대표목록에 등재된 나머지 유산은 2억5천여만명의 인구 중 2/3 정도가 거주하는 자바섬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대중에 의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01. 같은 디자인의 바틱 의상을 입은 여고생들의 행렬. ⓒ김형준 02. 짠띵을 이용하여 바틱에 왁스를 입히는 과정. ⓒ김형준

문화적 분쟁 대상으로서의 바틱

바틱은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하 유네스코 유산) 등재가 진행되었다. 종족적, 언어적, 문화적 특징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두 국가는 네덜란드 식민지역은 인도네시아로, 영국 식민지역은 말레이시아로 독립하게 되었다. 1960년대 첫 국경 분쟁을 경험한 후, 양국은 경쟁적이며 갈등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왔는데, 2000년 대 들어 이는 문화적 영역으까지 확장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예술로 보다 널리 알려진 춤이나 음악, 연행, 의복, 음식 등을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전통으로 소개하는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불만이 고조되던 중 말레이시아 측이 바틱을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곧바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인도네시아에서 가시화되었으며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시도된 2009년 등재 신청은 유네스코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바틱의 유네스코 등재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로, 나아가 말레이시아와의 문화적 대결에서 승리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발표가 바틱의 기원이나 소유권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의 주장처럼 바틱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오랫동안 이용된 기술이며, 두 나라 이외 지역에서도 유사한 이용 사례가 보고되어왔다. 따라서 유네스코의 결정은 바틱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고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그 보호를 위한 노력이 가장 활발한 곳이 인도네시아임을 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틱의 제작 과정

바틱은 왁스(밀랍이나 파라핀)의 저항력을 이용한 염색방법,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천을 일컫는다. 바틱 제작의 첫 단계는 면이나 비단 같은 천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왁스와 염료가 잘 스며들도록 식물성 기름에 담가 건조한 후 다듬이질을 하는 작업이다. 두번째 단계는 준비된 천에 원하는 디자인을 입히는 과정이다. 숙련된 제작자의 경우 밑그림 없이 천에 직접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천에 밑그림을 그려둔다. 이후 짠띵canting이라는 도구가 이용된다. 짠띵은 나무로 된 손잡이, 왁스가 담긴 구리통, 왁스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부리로 구성되며, 제작자는 짠팅을 손에 쥔 채 점과 선의 형태로 밑그림 위에 왁스를 입힌다.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의 바틱은 천의 앞뒷면 모두에 동일한 디자인을 입힌 것으로, 한쪽 면을 작업한 후 다른 면에도 동일한 작업을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가장 훌륭한 형태로 인정 되며, 손으로 디자인을 그렸다 하여 ‘바틱 뚤리스(tulis: 그리다)’라 불린다. 보다 효율적인 가공을 위해서는 짭(cap: 도장)이라는 동판이 이용된다. 특정한 디자인이 새겨진 동판을, 녹인 왁스에 담근 후 천에 찍어 누르면 왁스를 넓은 면적에 입힐 수 있다. 손으로 만든 바틱과 구분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바틱은 ‘바틱 짭’이 라 부른다. 세번째 단계는 염료를 푼 물에 왁스 작업이 끝난 천을 넣어 염색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천연식물에서 나온 염료를 이용하여 주로 베이지색, 파란색, 갈색, 빨간색, 검은색 등으로 염색했지만, 화학 염료가 이용된 후 다양한 색의 염색이 가능해졌다. 염색할 물에 담그는 시간과 횟수를 통해 색의 농도를 조절하는데, 짙은 색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천을 담가 놓는다. 염색작업이 완료되면 천을 삶아 왁스를 제거한다.

03. 특정한 디자인이 새겨진 동판을 녹인 왁스에 담근 후 천에 찍어 누르면 왁스를 넓은 면적에 입힐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틱은 ‘바틱 짭’이라 불린다. ⓒ유네스코

한번의 작업으로 한가지 색을 입 힐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색으로 된 바틱을 얻기 위해서는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열가지 색채의 천을 얻고자 한다면 열번의 왁스 및 염색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작상의 특징으로 인해 바틱 생산에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전통사회에 존재했던 성별, 계층별, 지리적 구분은 바틱 생산을 더욱 비효율적으로 만들었다. 보통 바틱 생산의 계획과 관리는 귀족집단의 여성이, 왁스 작업은 일반인 여성이, 염색 작업은 이를 전문으로 하는 남성이 맡아 했다. 따라서 한 벌의 천을 완성하기까지 한두달이 소요되는 경우가 보통이었고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바틱의 경우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바틱 짭’의 등장으로 인해 작업과정이 짧아지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힘들고 오랜 수작업을 거친 ‘바틱 뚤리스’가 가장 완성된 형태의 바틱으로 인정된다.

04. 바틱에 이용되는 재료와 도구. ⓒ김형준 05. 밑그림이 그려진 천을 손에 쥐고 점과 선의 형태로 왁스를 천 위에 입힌다. ⓒ유네스코

바틱의 디자인

바틱의 디자인 속에는 전통의 고수와 외부 영향에 대한 개방성이 공존한다. 전통에 대한 강조가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지역은 전통 왕국의 영향력이 강한 중부 자바로 기하학적 디자인, 동일한 모티브의 반복, 단조로운 색이 선호되며, 새로운 디자인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반면 자바 북쪽 해안지역에서는 화려한 색채의 꽃과 구름, 동식물을 이용한 디자인이 선호되며, 다양한 디자인과 색이 실험되어 왔다.

또한 이슬람의 영향은 아랍식 캘리그래피와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인도-페르시아의 영향은 공작, 코끼리로 나타난다. 이후 네덜란드의 영향을 통해 꽃다발, 동화, 집, 말, 자전거와 같은 디자인이 유입되었고, 중국으로부터 불사조, 용, 구름과 같은 모티브가 유입되었다. 인도네시아를 짧은 기간 식민지배했던 일본은 벚꽃, 국화, 나비 등의 영향을 남겼다.

수작업으로 디자인을 하는 제작방식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모든 형태 디자인이 바틱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의복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품목으로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보다 다양한 디자인이 수용될 수 있었으며, 그림을 그리듯 바틱 기법을 이용하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 디자인은 바틱 문화를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여전히 대중으로부터 선호되고 있다.

살아있는 전통으로서의 바틱

전통사회에서 바틱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인도네시아인, 특히 자바인의 생활에 널리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서구의 영향력이 확대된 20세기 초반부터 바틱의 위상은 약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서구문화가 선호되고 전통이 경시되는 상황에서 서양식 옷이 득세했는데, 독립 후 첫 대통령인 수까로노는 공식석상에서 서구식 복장을 고집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처럼 주변화 되어가던 바틱 전통은 1970년 대 들어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전통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견지한 수하르또 정권 하에서 바틱을 포함한 전통예술은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바틱은 공식복장으로 인정되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이 바틱 셔츠를 착용한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빈번하게 보도되었고, 이는 일반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경제성장에 따른 구매력 증가는 모든 계층이 바틱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말레이시아와의 갈등 상황에서 이루어진 유네스코 유산 등재는 바틱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시켰다. 매주 금요일이 공무원의 바틱 착용일로 지정되고 일반 사기업 역시 이 정책을 뒤따르게 되자 바틱을 입고 근무하는 직장인을 찾아보기가 쉬워졌다. 전통적 바틱 디자인의 활용 역시 확대되어 기차, 버스, 항공기의 외관을 바틱 디자인으로 장식하기도 했으며 바틱천이나 디자인을 이용한 생활용품 역시 확산되었다.

바틱을 장려하는 국가정책, 바틱 사용영역을 확대하려는 창의적 시도로 인해 오늘날 바틱은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틱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호도이다. 전통복장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복장으로 바틱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일반인들은 바틱 옷과 생활용품을 일상에서 애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틱은 시대적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존재하는 살아있는 전통유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글. 김형준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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