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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터미널 부르스
작성일
2014-12-05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421

일러스트

터미널 부르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스산하게 불면 불현 듯 고향이 그리워진다. 떠나온 지 너무나 오래라 이제는 잊혀질 만도 한데 가슴에 내려앉은 앙금이 되어 그 옛날 집 앞에 주렁주렁 달렸던 감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 하는 듯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 지금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쇼핑의 천국이다.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두 개나 되고 지하상가에는 꽃을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집결되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던 곳, 삶의 애환 이 묻어나던 그 때의 터미널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지하도 입구에 쪼그려 앉아 예전처럼 군밤과 떡을 파는 아줌마의 모습만이 아련한 추억을 되살릴 뿐이다.

옛날, 어머니를 따라 처음 나선 고향의 터미널은 터미널이라는 말이 무색한 간이 정류장 수준으로 초라했었다. 하루에 몇 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 전부터 나와 있는 사람들로 번잡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멍한 얼굴, 먼지바람 일으키며 털털 거리며 오는 버스를 보며 떠나기도 전에 이별의 눈 물을 흘리던 연인과 부모와 형제들. 그들은 멀어져가는 버스를 보며 하염없이 손을 흔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별의 아픔이 있던 곳에 도착하는 버스에서는 만남의 기쁨을 토해내기도 했다. 군에 갔던 아들을 맞이하 는 어머니의 거친 손, 말없이 그 아들을 보며 대견한 듯 보는 아버지. 가족을 위해 돈 벌러 서울에 갔다 온 언니의 손에 한아름 들린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고 기뻐 뛰던 철부지 동생들. 오랜만에 본 딸과 아들에게 미안해 얼른 다가 오지 못하던 우리네 가엾은 부모들의 모습이 아련하다.

어린 나도 어머니와 함께 그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었다. 터미널이 있던 곳이면 어디에나 있었던 손가락 김밥과 삶은 달걀, 인절미와 망개떡…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것이라 어린 나는 어머니가 사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김밥 아줌마도 인절미 할머니도 망개떡 아저씨도 그냥 지나쳐 갔다.

조금 지나자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미끈한 병에 담긴 ‘사이다’. 어린 마음을 사로잡은 사이다는 내게 용기를 내어 어머니한테 사달라고 떼를 쓰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안 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그곳을 떠나 면 영 못 살 것 같아 나는 꾀를 낸다고 한 것이 오줌이 마렵다며 화장실로 갔다. 사람들로 번잡한 곳이라 어머니는 나를 따라 화장실에 따라 오셨고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본다며 냄새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있다 나왔다. 다시 사이다를 파는 구멍가게 앞을 지나게 되고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어머니의 무심한 눈빛에 눌 려 빈손으로 버스를 탔다. 속상한 마음으로 탄 버스에서 맡게 된 역한 기름 냄새, 그 기름 냄새 때문인지 속상해서 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다는 내게 어머니는 창문을 열어주며 바람을 쐬라고 하셨다.

우리가 탄 버스에 군인 아저씨와 할머니가 올라 타셨다. 군인 아저씨가 자리에 앉고도 한참을 우시던 할머니는 이제 버스가 출발한다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 서둘러 내리다가 손에 들고 있던 사이다를 군인 아저씨한테 주고 내렸다. 내 눈은 그 사이다에 꽂혀 떠날 줄 몰랐다. ‘우리 엄마는 미워!’ 울컥, 버스는 크게 트림을 하듯 출렁거렸고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달려가기 시작했다. “용식아! 잘 다녀와야 혀!” 군인 아저씨한테 사이다를 사준 할머니가 애타게 아들을 부르며 울며 따라 오셨다. 이별이 뭔지 잘 모르던 그 시절 그렇게 따라오는 할머니를 둔 그 군인 아저씨가 얼마나 부럽던지….

차가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만 속이 울렁거림을 참지 못하고 토해 버렸다. 마침 어머니가 봉지 에 받아내서 옷은 버리지 않았지만 시큼한 냄새와 창피한 마음,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는 야속함이 어우러져 그 후 로도 서너 번은 더 토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내 눈은 군인 아저씨가 들고 있는 사이다 병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잠이 들었나보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용산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창밖의 풍 경에 멍한 나는 정신이 들자 군인 아저씨를 찾았고 그 아저씨는 이미 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서 러움에 울어버렸고 놀란 어머니는 자다가 깬 내가 많이 아파서 그런 줄 알고 괜찮다며 다독이셨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내 손을 꼭 잡으신 어머니. 어린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 왜 울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커다란 터미 널의 새로운 풍경에 넋을 놓았다. 시골보다 더 많은 사람들, 머리에 등에 지고 나르는 짐 보따리들. 그 속에서 “구 두 닦~!” 소리치는 사람들, “짐이요 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낯선 환경이 무서 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어머니 손을 더욱 다 잡으려고 애를 썼고 어머니는 무거운 짐을 추스르느라 잠시 내 손을 놓았었는데 나는 그만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한참을 울던 내게 반짝이는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사이다와 과자들이 눈에 들어오 자 넋 놓고 바라보다, 그런 모습을 본 어머니는 한숨을 쉬시며 사이다를 사서 들려주셨다.

달착지근하고 톡 쏘는 사이다의 맛, 그렇게 원하던 사이다를 먹게 된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버스를 타고 토했 던 일도, 서울이라는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도 금방 날려버렸다. 사이다를 사주고 나온 어머니 또한 속이 불편하셨나보다. 터미널 밖에 나오자 줄줄이 서 있던 노점상 가운데에서 늦 은 점심 겸 저녁으로 손가락 김밥과 끓여서 팔던 홍합탕을 한 사발 사셨다. 홍고추와 풋고추를 넣어 끓인 홍합탕에 서 알맹이는 내게 먹이고 국물을 드시며 이제야 속이 풀리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지금 버스터미널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저마다 가진 사연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달리 변한 것이 없지만 우리네 정이 살아있던 사람 냄새나는, 따스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 김 밥 하나 더 얹어주며 ‘옛다 덤이다 많이 먹어라!’ 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도 나처럼 사이다에 목메는 어린 아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전보다 더 바쁘게 더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버스터미널.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그 흘려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 는 아련한 추억 하나 다시 건질 수 있을까?

 

글 현옥희(수필가) 그림 이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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