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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과 문화재
작성일
2006-04-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423



사랑 “나비야 나비야 청산가자 호랑나비 너도 가자 구시월 새 단풍에 된서리 맞아 여나무똥 되지 말고 만첩청산 깊은 골에 썩 들어가서 너하고 나하고 서로 치기나 하다 한세상 보내는 것이 어떠냐.” -제6과장 취발이 놀이 中 피리 소리, 장구 장단에 맞춰 노장과 취발이, 말뚝이, 상좌 등으로 분한 사람들이 전수관에 모여 신명나는 한판 놀이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양주별산대놀이 보존회 회원들. 대부분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연습시간의 출석률은 언제나 100%에 가까운 열정을 보이는, 오직 양주별산대놀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심엔 양주별산대놀이의 스승이며, 47년간 산대놀이를 지켜온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 회장 노재영 선생(75세)이 있다.

“동네 할아범들이 춤이나 노래를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어깨너머로 눈대중으로 봐가면서 스스로 터득해야 했지요. 손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혼자 하다보니 배우는데 오래 걸렸어요.”라고 스스로 터득하기까지의 고초를 알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유양리 마을회관에 가서 북과 장고 가락에 춤추고 노래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매일같이 보면서 자라왔다. 그러나 춤과 노래 대신 생계를 위해 목수일을 배웠다. 당시에 목수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손이 부족한 때여서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니며 일을 하다보니 전국을 돌아다녔다. 집은 언제나 유양리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일로 외지에 나가지 않던가 일손이 없을 때에는 마을회관에 나가 동네 어르신들의 노래와 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인을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다. 이듬해 어느 날, 노재영 선생은 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술 한 잔씩 마시게 되었고 그 기분에 한 분의 어르신께 장구가락을 부탁했다. “할아범 내 장구 한번 쳐 주시오. 춤 한번 출랍니다.” 이렇게 해서 춤을 추게 되었는데, 어릴때부터 봐온 춤이 별산대놀이의 몸짓이니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몸짓을 본 어르신들이 “춤을 곧잘 추는구나.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배워 볼테냐?”하고 묻길래 “가르쳐 준다면야 마다하지 않지요.” 하는 말이 올해까지 47년 동안 별산대놀이의 탈춤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이었다. 어르신들은 춤을 한 번 추어 보이곤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식이었다. 시범을 보인 춤을 기억하면서 혼자 연습해 익힌 탈춤은 절대 잊어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대놀이에 모든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 목수일을 다니면서 연습과 공연을 하다보면 며칠씩 일을 빠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면서도 아들들의 교육을 마치게 했다. 그렇게 어렵게 배우며 일을 했지만 지금 별산대놀이를 배우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손짓 발짓 하나까지 가르치고 있다. “내가 언제까지 힘이 남아서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니 눈짓 손짓 하나까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탈춤과 달리 무언無言으로 하는 마당이 많다. 몸짓과 손짓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선과 발의 위치, 손가락의 휘돌아가는 모양새까지 정확해야 한다.

제자의 몸짓에서 손동작 하나만 틀려도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혼자서 하는 놀이가 아니고 단체놀이이기 때문에 호흡도 잘 맞아야 하고 치고 받는 대사에서도 한 사람이 하듯 자연스럽게 되어야 하니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소화했을 때 그 흥으로 약간의 변형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없으면 별산대놀이도 없는 것이니 만큼 고맙게 생각합니다.”라며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지만 노재영 선생은 아들들이 탈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어렵고 힘들어.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어 해야 되요. 어거지로 시키는 것은 안 시키는 것만 못하지요. 집안에서는 큰아버님께서 탈을 쓰셨다는데, 뵙지는 못했어요. 내 대에서 끊기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많은 제자들이 있잖아요. 나이가 있으니 힘이 달려서 탈을 쓰는 것이 버거울 때까지만 하고 제자들에게 넘겨 주어야지요.” 양주별산대놀이를 지키고 이어가는 노재영 선생의 공로가 인정되어 1971년에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2004년 10월에는 제7회 소민연극상을 수상했다. 점차 우리 전통의 옛 것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가는 이때, 고령의 나이에도 서민들의 정서와 흥취를 담은 양주별산대놀이의 전수를 위해 애쓰는 노재영 선생과 열심히 지키며 배우는 보존협회 회원들이 있어 우리의 전통의 맥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는 놀이마당으로 발전한 전수관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 주말(토, 일요일)에 무료상설공연을 통해 우리탈놀이 문화를 알리고 있다.

취재 / 이영철 기자 양주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는 파계승에 대한 풍자와 서민 생활의 애환, 양반에 대한 풍자를 담은 민간 오락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탈놀이로 모두 8마당 9거리로 짜여졌으며, 다른 가면극의 연출형태와 마찬가지로 음악반주에 춤이 주가 되며, 몸짓과 손짓, 덕담과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과 노래를 곁들인다. 즉 가무적 부분과 연극적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월초파일과 단오, 추석 등의 명절과 기우제 때 주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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