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수라상에 올랐을 전통음식의 변화와 흔적
작성일
2017-07-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92

수라상에 올랐을 전통음식의 변화와 흔적 - 과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전통음식들이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며 남아 있는지, 혹 변했다면 어떤 맛과 모습으로 달라졌을지 호기심이 인다. 궁 안에서 음식과 연관된 인물은 누가 있었으며 그들에게 담긴 얘기도 함께 곁들여 보도록 한다. 1892년 궁중 잔칫상에 오른 육만두(2017년 궁중음식 공개행사 전시 중에서)

Q. 같은 이름인데 과거와 현재, 모습과 형태가 달라진 요리에 대해 알고 싶어요

잡탕 : 흔히 ‘잡탕’이라 하면 이것저것 남은 재료를 모아 끓인 모호한 음식을 얕잡아 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나 궁중에서 잡탕(雜湯)은 임금의 밥상이나 잔치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화성에 행차했을 때 차린 상차림에도 잡탕이 올랐습니다. 잡탕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두골, 곤자손, 저포 등의 내장류를 삶아 썰어 양념하고, 숭어전, 해삼, 전복, 오이를 닭 육수에 끓여 지단과 잣을 올린 국물음식입니다.

육만두, 고기만두 : 이름 그대로 보면 고기소를 듬뿍 넣은 찐빵같은 만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1892년(고종 29) 근정전에서 베푼 잔칫상에 오른 육만두(肉饅頭)는 다릅니다. 그 재료를 보면 양깃머리, 천엽, 소안심, 돼지고기, 숙주나물, 녹말, 참기름, 깨소금, 잣, 소금, 후춧가루입니다. 육만두는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만든 만두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얇고 넓게 저민 양(소의 윗부분)과 천엽을 만두피로 사용해 만두소를 넣어 싼 후, 녹말을 묻혀 찐 만두입니다.


Q. 예전에도 영양사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음식의 열량과 영양 등을 계산했는지 궁금해요

궁중의 내의원은 궁에 사는 임금과 왕족의 병 치료와 약 조제 외에도 건강을 위한 식단을 작성하는 일 즉, 지금 영양사의 역할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병이 나기 전에 음식의 적절한 섭생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으며, 병들고 난 후의 처치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식치(食治)’란 말인데, 음식으로 몸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음식을 통한 섭생을 뜻합니다. 1463년(세조 9) 12월에 반포된 『의약론』에서는 음식으로 처방하여 몸을 돌보는 의사인 식의(食醫)를 바람직한 의사의 유형으로 뽑았습니다. 질병의 치료에 앞서 예방을 강조했고, 특히 병에 걸렸을 경우 적절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치료를 돕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겼습니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때에 걸쳐 어의로 활동했던 전순의가 쓴 『식료찬요(食療纂要)』(1460)에는 기존의 의서에서 45가지 질병에 대한 식이요법 처방을 모아 쉽게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엮었습니다. 궁중에서는 식단 작성에 있어서 음식의 열량이나 영양보다는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질·효능에 따른 배합과 조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좌)죽순채 (우)『이조궁정요리통고』의 떡볶이

Q. 예전 궁중음식 중에 지금은 대중적인 음식이 된 것은 어떤 것이 있나요?

죽순채 : 죽순채는 늦은 봄에 나오는 대나무 순으로 봄의 미각을 돋우는 향긋한 음식입니다. 죽순을 빗살 모양으로 썰어 볶고 미나리, 숙주, 고추, 고기 등 오색의 재료를 합하여 새콤한 초간장으로 무칩니다. 간장, 설탕, 식초의 짠맛, 단맛, 신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대장금>에서 죽순채 양념의 재료로 홍시를 사용한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고안한 것으로 실제로 궁중에서 홍시를 음식에 사용했던 적은 없습니다. 홍시죽순채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재탄생하여 널리 알려진 궁중음식입니다.

궁중 떡볶이 : 떡볶이는 강렬한 붉은 색과 매콤달콤한 맛으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마지막 왕족의 음식을 담당했던 한희순 상궁과 제자 황혜성이 쓴 궁중음식책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庭料理通考)』의 떡볶이는 굵은 가래떡을 4cm 길이로 잘라 4등분하여 끓는 물에 삶습니다. 그리고 쇠고기·표고·호박오가리 등을 양념해 볶은 것과 숙주·미나리 데친 것을 한데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 볶습니다. 조선시대의 떡볶이는 정월에 가래떡이 있을 때 간식으로 해먹던 음식으로 잡채처럼 고기볶음과 채소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만듭니다. 그랬던 것이 고추장이 대량생산 되던 시절 가늘게 만든 가래떡이 나오면서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추장 떡볶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패스트푸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이젠 궁중식 간장 떡볶이보다 고추장 떡볶이가 아무때나 즐겨 먹는 간식으로 인기를 누립니다.


Q. 영화 <광해>를 보면, 왕이 남긴 음식을 궁녀들이 먹곤 하는데, 실제로도 정말 그랬는지 궁금해요

먼저 영화처럼 임금이 남긴 음식을 궁녀들이 먹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해답은 1527년(중종 22) 3월 불에 지진 쥐를 나무에 걸어 세자(훗날 인종)를 저주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범인을 찾기 위해 후궁과 궁녀 등을 불러 문초하던 중 궁녀 안씨가 사건 당일 행적을 설명하는데, 점심때 왕과 왕비가 함께 드시도록 특별히 차려낸 수라상을 받았고, 상을 물리고 남긴 음식을 다른 나인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 하였습니다.(중종실록58권, 중종 22년 4월 3일 기사)

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 음식을 준비하던 궁중의 부엌을 소주방(燒廚房)이라고 합니다. 소주방은 화재의 염려가 있으므로 대전, 왕비전, 세자궁 등 침전에서 떨어진 곳에 배치하였습니다. 침전 가까이에는 퇴선간(退膳間)이 있어 그곳에서는 밥을 짓고 소주방에서 만들어 내온 음식 중에 국이나 구이 등을 다시 데워 상을 차리는 중간 부엌의 역할을 했던 겁니다. 소주방에서 만들어온 음식들이 합에 담겨 퇴선간으로 오면 그곳에서 수라기(임금전용 은그릇)에 담아 임금께 올립니다. 수라기에 담고 남은 음식과 임금이 물린 음식을 소주방으로 다시 보내지 않고 시중을 들었던 지위가 높은 궁녀들부터 아래 궁녀까지 밥을 새로 지어 남은 찬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임금님께 올린 좋은 음식을 하사받는 마음으로 감사히 먹었을 것입니다. 소주방 궁녀들의 입맛도 왕족 못지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글+사진 한복려(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