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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재답사기] 600년의 숨결로! 미래의 역사로!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06-10-11
조회수
4311
작성자 : 박혜균님 [2006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최우수상(3위) 수상작]



1. 드디어 궁궐을 찾아가다



''서울에 가면 꼭 경복궁에 가 봐야지’ 경북의 외진 시골에 살면서 나는 경복궁을 꿈꾸었다. 그것은 조선의 正宮이었던 경복궁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유달리 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궐의 우리나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경복궁의 나무들을 내 손으로 어루만져보고 싶었다. 짙게 베인 왕실의 역사를 함께 한 나무들의 숨결을 한껏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궁궐은 예나 지금이나 시골벽지에서는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인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를 하던 10월의 마지막 날. 나는 남편에게 호기있게 말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경복궁에 꼭 다녀올 거예요” 하지만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이사후에도 서울로의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하고도 8개월.

시골에 살 때와는 달리 경복궁에 대한 연정을 조금 접어버렸다. 그런데 다시 ‘경복궁에 가봐야지’ 할 일이 생겼다. 호암 미술관에 갈 일이 있었는데 미술관 앞에 꽃담이 있었다. 그 꽃담을 유심히 바라보는 내게 미술관을 관리하는 이가 말했다. “경복궁의 꽃담을 그대로 만든 것입니다.” 나는 경복궁의 꽃담이 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말했다. “8일에 학교 안가지? 엄마랑 경복궁에 다녀오자. 그때면 수문장 교대식도 하니까 좋지?” 나와 아들은 달력의 4월 8일자에 [경복궁 가는 날]이라고 표기해두고 그 날을 기다렸다. 서클 활동에 바빠 같이 가지 못하는 딸아이의 서운한 표정을 뒤로하고, 도시락과 카메라를 든 우리 두 모자는 8호선과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에 도착했다. [죽지 않는다는 문]이 있는 경복궁역의 개찰구를 빠져나오면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경복궁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가보다. 오늘이 토요일이잖니?” 경복궁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은 수문장 교대식 시간을 물어보았다. 궁궐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일정한 의식을 선호하는 아들다운 행동이었다.



2. 미리 공부를 좀 하고 갈 것을......



광화문을 볼 여유도 없이 무료 가이드 시간이 되어 가이드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아들은 가이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옆에 선 내게 일일이 물어보며 수첩에 필기를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 속에 두기가 안 돼 보여 나는 아들을 가이드의 행렬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이제 우리 두 모자만의 오롯한 경복궁 관람이 시작되었다. “이 담벼락에는 뭔가 글씨가 있는 것 같죠?”근정전 담 앞에서 아들은 한참을 서 있었다. 평소 세심한 아들의 성격처럼 아들은 무엇 하나 지나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구나. 나중에 인터넷의 지식인에 한 번 물어보자구나. 수첩에 기록해둘래?” 단청을 보고 아들이 환호성을 쳤다. “저건 절에 가면 많이 있는데.”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총 동원하여 설명에 나섰다.

“그렇지. 예전에는 궁궐과 사찰에서만 사용되던 단청인데 최근에는 정자에도 많이 사용한단다. 예쁘지?”“글쎄요. 예쁘긴 한데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조금 어지러워요. 그런데 처마 밑의 그물은 뭐죠?” “아하! 저건 말이다. 단청을 예쁘게 색칠해놓았는데 새들이 둥지를 틀면 어떻게 될까?” “그야 단청이 빨리 더러워지겠죠!” “그렇기도 하고 건물도 빨리 상해버리지. 그래서 새들이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그물로 막아놓은 거야. 시골 할아버지 댁처럼 처마 흙이 막 떨어져 궁궐이 상하면 우리가 어떻게 궁궐을 구경할 수 있겠니?”“지붕위의 저 동물모양은 뭐예요? 건물마다 개수도 틀려요.” “그래. 역시 눈썰미가 좋구나. 저건 말이야. 임금님이 자주 가시는 건물에는 개수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적단다. 중국식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일전에 아빠와 같이 중국에 있는 자금성에 갔더니 똑같이 저렇게 되어 있었거든.” 아들은 경복궁을 다니는 내내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나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 그리 없어서 궁궐의 조형미에 대한 것은 얘기해 줄 수가 없었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설명을 해줄 수 있었다. 머릿속에는 ‘궁궐의 나무는 어디 있지? 꽃담은?’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궁궐이라 그런지 천장이 아주 높다. 기둥이 아주 거대하다’는 정도로 근정전까지의 관람을 마쳤다. 그런데 아들은 근정전의 내부를 보며 예상도 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요. 임금이 밤 되면 많이 무서웠겠다!” 아직 권력, 政爭등에 대하여 모르는 아들은, 어른들의 생각인 ‘임금이라서 좋았겠다!’는 것보다는 무섭다는 것이 우선이었다.



3. 궁궐의 우리 나무



“그럼, 이제는 무섭지 않은 곳으로 가볼까?” 우리는 경복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경회루로 갔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궁궐의 우리 나무가 있는 곳이다. 목련과 벚꽃,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있는 경회루의 전경은 사진에서 보던 정경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확 트인 경회루 앞쪽에서 사진을 찍었고, 고궁의 봄을 즐겼다. 우리는 한쪽 벤치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풀었다. 노오란 민들레가 벤치 아래에 피어 있었다. 버드나무, 소나무, 산수유, 개나리, 모란, 진달래, 매화 우리가 흔히 보는, 시골에 살 때면 문밖만 나서면 보던 나무들을 궁궐에서 보게 되니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이 흔히 풍기는 자유분방함보다는 일정한 형식의 품위가 나무에게서 풍겨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봄꽃의 특징이 뭔지 아니? 그건 바로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피우는 거란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꽃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배려이지.” 시골에 살았어도 학교와 집만 오가며 자란 아들은 나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민들레를 보고 개나리라고 말하기도 하는 아들을 데리고 나는 靑梅와 紅梅의 차이점을 설명했고, 진달래와 철쭉의 다른 점도 설명해주었다.

버드나무로 풀피리를 만드는 법을 설명했더니 아들은 이내 신이 났다. “엄마! 우리도 만들어요.” “안돼. 여기는 궁궐이고, 궁궐이 아니더라도 나무는 함부로 꺾으면 안돼”경회루는 연못 가운데 소리 없이 서 있었다. 경회루 근처의 다른 나무들이 소리 없이 긴 세월을 서 있는 것처럼. 최근 경회루를 개방했다는 보도를 보긴 했음에도 고즈넉한 경회루가 참으로 낯설었다. 그나마 책에서 봤던 건물이라고 ‘저는 여기는 알아요!’하는 半지식의 아들을 앞세우고 나는 경회루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어요!” 나 또한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경회루와 궁궐의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경회루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無念無想의 건물이었다. 경회루가 사람들에게 생각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연못 가운데 피어있는 진분홍의 진달래가 주는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지킨 외침이었을 터. 그리고 그 옆을 굳건히 지키는 소나무의 푸른 기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궁궐의 우리나무들이 굳건하게 궁궐을 지키는 것처럼...



4. 궁궐의 꽃담은 특별하다



이제 우리는 교태전으로 이동했다. “임금의 아내, 그러니까 사극을 보면 중전이라고 불리는 어른이 살던 곳이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분위기가 부드럽고 여성스럽게 느껴져요.” 그랬다. 교태전은 지극히 여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특히 담장의 높이나 장식도 부드럽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아미산으로 향했다. 교태전의 굴뚝이 있는 곳, 아름다운 꽃담처럼 장식된 굴뚝이 보고 싶었다. 아들을 굴뚝 앞에 앉혀두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 여기는 엄마가 앉아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에요. 저는 남자인데.” 나는 굴뚝을 장식한 梅蘭菊竹의 꽃무늬를 멀리서 보고 싶었다. 옆에 앉아버리면 梅蘭菊竹이 사그라질까봐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아미산 굴뚝의 꽃담은 섬세하고 가녀린 모습으로 서 있었다. 꽃담은 호암 미술관에서 본 것보다 훨씬 품격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궁궐이라는 배경이 느낌에 한몫을 한 듯 했다. 아들과 함께 자경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과 마주쳤다. “여러분! 여기 담에 있는 꽃은 무슨 꽃일까요?” 인솔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미요” “국화요” “선인장 같아요” “새가 앉은 것 같은데요” 그 말들을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비애감이 느껴졌다. 서양에서 들여온 꽃에 익숙해진 아이들. 그 아이들이 매화나 난초의 아름다움을 언제쯤 알게 될까 걱정도 되었다. “이건 매화예요. 예쁘죠?”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매화가 뭐예요?’하면서 화답했다.

“매실차를 먹어본 사람?” 선생님의 말씀에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드는 와중에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 아빠는 매실주를 아주 잘 마셔요. 그런데 그건 동글동글한데 이 그림은 삐죽삐죽해요.”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매실의 모양과 매화꽃의 꽃담이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듯 했다. 그래도 오늘의 경험이 저 아이들에게는 후일에 기억의 고리로 완성되리라는 기대감은 생길 정도로 꽃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너무 대견했다. 경복궁에서 가장 활기차게 관람하는 아이들의 무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십장생이 새겨져 있는 자경전의 굴뚝으로 향했다. 십장생을 설명하면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예쁘다는 생각으로 봤는데, 너는 경복궁의 꽃담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니?” “글쎄요. 아무리 왕과 그 가족이 사는 집이라지만 민속촌의 초가집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요.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들은 학교에서 ‘빈부격차의 해소’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는 중학생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복궁의 꽃담을 보고서도 ‘잘사는 자와 못사는 이들의 차이’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의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왕정 시대여서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특혜가 있었지만, 지금은 노력하는 이에게만 잘 살 수 있는 특혜가 있지. 그러니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면 빈부 격차 같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단다.” 꽃담의 소담스런 아름다움을 보고서도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생각해야 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5. 옛것은 현대를 유지한다



“향원정으로 가 보자. 그곳에도 나무가 많을 거야” 향원정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노란 빛이 절정에 달해있는 개나리였다. 개나리의 군락 속에 진달래꽃이 한그루 있었다. 아들은 그 앞에서 내게 사진을 찍어주느라 zoom in을 하다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꽃이 더 예뻐요” 발밑을 내려보니 제비꽃 세 송이가 소담스레 피어있었다. “너무 앙증맞죠? 저는 이런 꽃이 좋아요. 화사한 꽃보다 이렇게 조용한 꽃이.”“제비꽃이란다. 그 꽃이 피면 봄이 왔다는 증거이지.” “엄마! 궁궐의 우리나무도 좋지만, 궁궐의 우리 꽃도 좋은데요. 제비꽃? 이름도 좋아요.” 향원정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화사한 정오의 햇살 때문에 눈이 감기긴 했지만, 더 없이 좋은 우리 모자의 일상이었다.

이제 아들의 공부를 위한 박물관행을 하기로 했다. 아들은 중2가 되면서 국사 과목을 배우고 있기에 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어 했다. 우선 어린이 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구석기 시대부터의 생활상을 표현해놓은 전시물을 관람했다. 신석기, 청동기로 이어지는 전시물을 보면서 아들은 탄성을 질렀다. “공부가 아주 쉬워질 것 같은데요!” 내친김에 우리는 어린이 박물관 마당에 지어져 있는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움집도 방문했다.

“두 움집의 차이점이 뭘까?” “음......신석기보다 청동기시대의 움집이 더 튼튼한데요.” “그것도 맞긴 한데 만든 재료가 틀리잖니? 신석기 시대 때는 갈대 같은 것이고, 청동기시대는 볏짚이야. 이게 뭘 뜻하지?” “아하! 알았어요. 청동기 시대부터 벼농사를 했으니 청동기 때는 볏짚으로 움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시험에 나와도 절대 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그 앞에서 水車를 보며 계용묵의 소설인 ‘백치 아다다’를 재현해보기도 했고(아다다와 나중에 결혼하고자 하는 수롱이가 하는 일), 제기차기와 투호놀이를 했다. 연자방아가 있는 앞에서 ‘예전 사람들이 요즘 사람보다 머리 쓰기를 더 많이 했을 것’이라는 나의 말끝에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머리를 많이 써서 이런 것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아들은 학습에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후손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알아챘다. 경복궁에 함께 간 보람이 저절로 생겨났다.

고궁 박물관은 예정에 없었던 방문지였다. ‘경복궁에 가야지’하는 다짐은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도 경복궁 옆에 고궁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덕분에 고궁박물관 관람은 우리에게 덤 관람의 기쁨을 주었다. 고궁박물관에서 맨 처음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궁궐에서 사용했던 造花였다. 추운 겨울, 꽃을 보고 싶어 하실 궁중 어른들(대비, 왕, 왕비 등)을 위한 조화는 천으로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섬세한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역사책에서 흔히 보는 우리 역사의 유물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아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금속활자 부분에서는 설명이 길어졌고, 아들은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지적 수준이 높았던 것에 경의감을 가진다는 대답으로 내 소망에 화답해주었다.우리는 마지막 부분쯤에 진열되어 있던 어보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관람했다. 우리나라의 국새를 새로 만드는데 3천만 원의 금액이 소요된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난 직후라서 그런 듯 했다. 아들에게 어보와 국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흥선대원군과 조대비간의 밀약으로 고종이 즉위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조대비가 어보를 가지고 있었거든. 그 조대비가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게 해주었기에 아까 보았던 자경전을 지어 드렸지.” “어보와 자경전이 무슨 상관 이예요?” “어보가 찍혀야 그 문서는 효력을 발휘해. 조대비가 어보로 왕위 계승권자를 지명해준 걸로 기록되거든. 흥선대원군은 감사의 뜻으로 자경전을 지어 드린 거야.” 아들은 작은 도장(아들의 표현으로는 나라도장이었다) 하나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신기한 듯 했다.

꼭 한번만 만져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박물관을 나오면서도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박물관을 나오니 4월의 햇살이 흥례문 앞에 오롯이 내려앉아 있었다. 세월을 비껴간 듯 청량한 기와소리가 우리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고궁 박물관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의 전경은 소박한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옛것이 변치 않고 현대를 이어오는 모습이 자랑스러운 4월의 오후였다.



6. 동참하는 문화의 향기

오후 4시 정각.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교대식이 있기 직전에 수문장들이 서 있는 흥례문 앞으로 갔다. 외국인들이 수문장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른 나라를 찾아왔으니 그 나라의 왕성을 가장 먼저 찾는 그들을 보며, 한 국가의 궁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문장 교대식은 경복궁을 찾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절도 있는 몸짓으로 광화문 앞에서 교대식이 치러졌다. 교대식이 치러지는 현장에서 한순간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퇴궐을 하는 수문장 행렬을 따라왔던 북치는 수문장 두 사람이 교대식이 끝나자마자 입궐하는 수문장 행렬을 따르는 모습이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했던 것이다.

아들과 나는 열심히 웃으면서 입궐하는 수문장의 행렬을 따라 박물관 앞쪽까지 따라갔다. “엄마! 저도 저런 옷을 한 번 입어보고 싶은데요.” 매표소 옆에 있는 수문장 체험센터로 가서 아들에게 맞는 복장을 찾아 입혔다. 자원봉사 하는 이들이 아들에게 긴 창을 하나 들려주었다. 나는 광화문과 흥례문을 배경으로 수문장이 된 아들의 모습을 몇 커트 찍었다. 아들에게는 두고두고 경복궁의 가장 큰 추억이 되리라.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고 우리는 경복궁을 빠져나왔다. 지하철 역사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황사가 아주 짙었던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복궁에서는 황사는 없었다. 궁궐의 우리 나무가 굳건히 서 있었고,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가 있었던 곳이었기에 황사를 느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올 들어 가장 강한 황사가 온 날이었음에도 황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궁궐의 문화가 우리를 매료시켰던 날. 그렇다. 궁궐의 나무들은 그 날처럼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고, 자경전과 아미산의 꽃담은 소담스런 자태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경복궁의 숨결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조용하고 단정하여 절제된 아름다움을 주는 조상의 지혜로운 건물을 마음속에 지었다. 그리고 600년의 초목에 내 마음을 심어두었다. 그 나무는 영원히 우리와 호흡할 것이고, 단아한 꽃담은 평온의 마음을 전해 즐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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