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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첩 화폭 속, <동궐도>에 뿌리내린 古木을 따라
작성일
2016-03-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872

16첩 화폭 속, <동궐도>에 뿌리내린 古木을 따라 조선 순조 임금의 말기인 1828~1830년 사이 도화서 화원들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 부르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상세 그림 <동궐도(東闕圖)>를 완성한다. 궁궐의 전각을 비롯하여 나무 한 그루까지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조감도식으로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크기는 가로 576㎝, 세로 273㎝에 이르는엄 청난 규모다. 동일한 그림 3질을 만든 것으로 짐작되나 고려대와 동아대에 각각 1질씩만 남아있다. 고려대 본은 16권의 절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화첩은 5절 6면이고 동아대 본은 병풍식으로 되어 있다. 그 안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고목들이 시선을 끈다.

 

잎사귀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동궐도의 나무’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그려낸 동궐도는 전각, 다리, 괴석 등 실제와 같은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조경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동궐도에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약 20여 종으로 추정되는 모양을 달리한 나무가 그려져 있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전체 나무 숫자는 약 4천여 그루나 된다. 이들 중 30여 그루의 고목나무는 신비롭게도 2백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아직도 살아서 궁궐을 지키고 있다. 수종은 향나무, 주목, 은행나무, 느티나무, 매화나무, 밤나무, 뽕나무, 버드나무, 회화나무 등이다. 고목의 수종별 숫자로는 회화나무 15그루, 느티나무 7그루 정도이며 다른 수종들은 1~2그루가 그때 그 나무들이다. 이하 살아있는 동궐도의 고목 몇몇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돈화문 회화나무 봉모당 향나무

 

돈화문 회화나무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금호문 행랑과 북쪽의 내각 및 동쪽의 금천 주변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룬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고목이 섞여 있는데,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주를 이루고 대부분 지금도 살아있다. 외조(外朝)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옛날 중국의 주나라 때 괴목(槐木)➊ 세 그루를 심고 우리나라의 삼정승에 해당하는 삼공이 마주 앉아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라 일부러 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궐의 첫 안마당인 이곳에는 임금님의 행차와 관련된 수많은 기록이 있지만 괴목에 대한 언급은 따로 찾을 수는 없다. 금호문 행랑 앞의 회화나무 4그루와 금천 주변의 회화나무 4그루는 나이 300~400년에 이르고 8그루 모두 천연기념물 4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금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편의 버드나무는 동궐도에 가지가 늘어진 노란 능수버들로 그려져 있고, 다리 건너서 왼편의 느티나무도 동궐도에서 찾을 수 있는 고목이다.

봉모당 향나무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 궐내각사 구역에 들어서면 봉모당 앞뜰에는 웅장하고 우아한 모습의 향나무 고목한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조선왕조가 들어서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 지금의 나이는 750년에 이르는데 동궐도에도 그 모습대로 만날 수 있다. 지금도 받침목에 의지한채 겨우 늙은 몸을 버티고 있으나 동궐도에도 역시 6개의 받침목이 동서 긴 타원형으로 뻗은 가지들을 받치고 있다. 이곳 향나무는 왕실제사에 쓰기 위하여 특별히 보호하고 가꾼 것으로 보인다. 동궐도에는 이 나무 이외에도 부근에 비슷한 크기의 향나무가 두 그루나 더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곳에 향나무가 이렇게 많이 있었던 것은 제사 용도로 쓰기 위함이다. 향나무는 나무속에 강한 향기를 품고 있어서 신을 불러오기 위하여 향을 피우는데 꼭 있어야 한다. 봉모당 향나무 바로 곁에는 대보단 제사를 집전하러 가는 길에 임금이 머물던 소유제와 대유제가 있으며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서는 임금님들의 어진(御眞)을 모신 구선원전이 있다.

존덕정은행나무 반도지입구뽕나무 영화당느티나무

영화당 느티나무 반도지 입구 뽕나무 존덕정 은행나무

 

영화당 느티나무

시골 동네 어귀에서 만나는 정자나무의 대부분이 느티나무일 만큼 우리나라는 느티나무 고목이 많다. 현재 창덕궁과 창경궁의 80여 그루의 고목 중 느티나무가 35그루나 된다. 그러나 동궐도에서 찾을 수 있는 느티나무는 7그루이며 신선원전 안, 금천교 옆, 관물헌 뒤편 및 창경궁 춘당지 서남쪽의 3그루가 지금도 살아있다. 특히 이곳 느티나무는 조선 후기의 여러 행사를 주로 하던 영화당 앞 춘당대 광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보아온 유서 깊은 나무다. 동궐도 이외에 영조 36년(1760) 청계천을 준설하고 영화당 앞에다 천막을 치고 축하연을 연 모습을 그린 준천당랑시사연구첩(濬川堂郞試射聯句帖)이라는 그림 및 김홍도의 규장각도(奎章閣圖)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반도지 입구 뽕나무

창덕궁 후원 불로문 앞을 지나 반도지 입구, 창경궁과의 경계 담 안에는 아름드리 뽕나무 고목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둘레 한 아름 반, 높이 12m이며 나이는 약 4백 년으로 알려져 있다. 동궐도 불로문 앞에 그려진 5그루의 고목 중 한 그루가 지금의 뽕나무로 짐작된다. 조선왕조는 양잠으로 비단옷감 짜는 것을 장려하여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비단 짜는 행사로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했다. 세종 때의 기록으로는 이곳 창덕궁에만 1,000여 그루의 뽕나무가 있었다 하며 영조 43년(1767)에는 친잠례의 절차와 내용을 기록한 친잠의궤를 펴내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비 순종효황후는 주합루 왼편 서향각에 양잠소를 만들고 친잠권민(親蠶勸民)이란 편액을 걸어두기도 했다.

존덕정 은행나무

지금의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옆에는 궁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줄기 둘레 약 세 아름에 높이 23m, 나이는 약 250년쯤 됐다. 이 나무는 동궐도에서 폄우사 북쪽, 존덕정의 서북쪽에 태청문(太淸門)이 있는데, 이 문 앞의 연지 쪽 구석에 그려진 나무가 오늘날의 은행나무로 짐작된다. 존덕정에는 정조의 편액이 걸려 있을 만큼 임금이 자주 들른 곳이다. 학문을 숭상한 정조가 제자를 가르치던 공자의 행단(杏壇)을 대표하는 이 은행나무를 일부러 심었다고 생각된다. 정조의 문집 홍제전서에 은행나무 시가 있으며 오산의 궐리사 복원을 명하면서 큰 은행나무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히 은행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봄바람 불어와 이제 막 움을 틔우는 나무들을 만나러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발걸음을 재촉해보자. 한 손에는 동궐도를 들고서 말이다. 궐 내에 있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뽕나무 등을 직접 조우하며 그림 속 한 조각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는 것도 꽤 근사한 나들이가 아닐까. 언제나 조연 같았던 ‘나무’가 오늘은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다.

 

➊ 옛 문헌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구분하지 않고 꼭 같이 괴(槐)라고 표기하여 어느 나무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글+사진‧박상진(경북대 명예교수) 이미지‧고려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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