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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백 수천 년을 기록할 변치 않은 단단한 금속
작성일
2017-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817

금속활자본을 종이에 찍어내어 글자를 확인하는 과정, 철판에 새긴 한복의 아름다운 자태 '수백 수천 년을 기록할 변치 않은 단단한 금속' -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임인호 장인 & 등대사진관 이창주 대표·이규열 실장 금속이 임인호 장인에 의해 수천, 수만의 글자로 태어나고, 등대사진관에서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진으로 탄생한다. 국내 금속활자 주조 기술의 명맥을 이어가는 임인호 장인과 사람들에게 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사진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등대사진관>이창주 대표·이규열 실장을 만나본다.

기록을 남기다

우리는 무수한 기록 속에서 살아간다. 예술에서 학문까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록의 힘’ 덕분이다. 금속활자장 임인호 장인과 등대사진관 이창주 대표·이규열 실장은 분야는 상이하지만 ‘금속’이란 단단한 소재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이야기를 새긴다.

임인호 장인 | 1984년 서각에 입문해 10년 넘게 서각 작업을 하다가 1996년에 방송에서 오국진 선생의 모습을 보고 금속활자의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스승이 타계하시고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직지 복원사업을 의뢰받아 5년을 작업했습니다. 3만여 자에 달하는 글자를 황토와 모래, 물 등의 천연재료만 사용해 전통의 밀랍주조법을 바탕으로 완성했어요. 직지가 소중한 것은 세계 최초라는 의미도 있지만 인쇄문화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새로 복원된 직지를 직접 볼 수 있으니 우리의 기록 역사를 복원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창주 대표 |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는 임인호 장인과 저희 작업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등대사진관은 150여 년 전 필름이 나오기 전, 금속에 사진을 찍었던 그 방식 그대로를 이어가고 있는 사진관입니다. 흑백사진도 찍지만 ‘틴 타입’이라고 하는 습판 사진을 하는 거죠. 흑백도 예스럽지만 틴 타입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더욱 아날로그답다고 할 수 있어요.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보정이라는 작업이 따라왔어요. 그렇게 보정한 사진은 몇 년 후 다시 보면 너무 유행을 탔거나 가공이 돼서 그런지 어색한 경우가 많더군요. 살아 있는 사진은 몇 년 뒤에 봐도 자연스러운데 말이죠.

01_밀랍이 녹아내리고 쇳물이 활자로 들어앉아 굳어진 모습 02_주물사 주조 방법으로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 모습 03_세밀하게 획이 표현된 금속활자들

끊임없는 연구로 탄생한 결과

주물사 거푸집에 쇳물을 붓느라 금속활자 작업실의 열기가 대단하다. 10여 분이 지나서 거푸집을 열자, 그 안에서 또렷한 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각, 사진관에서는 철판에 찍힌 사진을 약품에 담가 조금씩 상(像)을 찾아가고 있었다. 두 작업 모두 결과를 얻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함께 했을까.

임인호 장인 | 활자 주조 방법은 크게 밀랍 주조와 주물사 주조방법이 있어요. 밀랍 주조란 금속활자의 틀은 진흙으로 만들고 글자의 공간은 밀랍으로 채우는 거예요. 이 거푸집을 열로 성형할 때 밀랍은 녹아내리고 쇳물이 활자로 들어앉게 되는 거죠.

주물사 주조는 모래를 다져 만든 거푸집에 나무로 된 글자형을 찍어내고 그 공간에 쇳물을 부어내는 방식이에요. 재료가 가진 속성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이 모든 작업이 이루어질 수 가 없어요. 예컨대 진흙이 거푸집 역할을 하는 밀랍 주조에서는 온도, 습도에 따라 진흙의 수축·팽창률을 고려해야만 성공적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요. 거푸집이 마르면 갈라지고, 습기가 남아 있다면 고온의 쇳물이 들어갔을 때 순간적으로 흙 속의 수분이 팽창해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죠. 그간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업한 끝에 처음 15자에서 이제는 150자 이상의 제작이 가능한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이규열 실장 | 일반 사람들에게 낯선 습판 사진은 필름 대신 철판이 감광유제에 젖어 있는 상태에서 촬영과 현상이 이루어지는 방식이에요. 까만 철판 위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콜로디온이라는 약물을 도포하고 그 위에 빛에 반응하는 유제를 바르면 이것이 필름처럼 상을 기록합니다. 감광유제가 마르기 전에 사진 촬영과 현상을 마쳐야 해서 약품을 처리할 수 있는 암실 옆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한번 촬영할 때도 상이 맺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하루에 열 컷 찍는다고 가정하면 마음에 드는 한 컷을 건지기가 힘들어요. 날씨, 온도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죠.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습판 사진은 예측을 할 수 없는 불완전성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진이 탄생하는 거예요.

04_등대박물관에서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을 새긴 사람들 05_암실에서 약품을 사용하자 서서히 상이 맺히는 철판 위 한복 이미지 06_19세기 영국의 사진 기술 그대로를 시연하고 있는 이창주, 이규열

세월을 이기는 시간의 예술

이들의 작업은 세월 속에서도 쉽게 퇴색되지 않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쇳물로 활자를 만들어 우리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임인호 장인과 철판에 사진을 찍어 평생 간직할 인생의 한 부분을 남기는 등대사진관의 두 주인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임인호 장인 | 금속활자 제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비록 이것이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활용되지 못하더라도, 전통 금속활자 제조 공정에는 인류가 지식 정보를 어떻게 저장하고 또 공유해왔는지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기에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되죠. 직지3만 여자를 복원해봤습니다. 앞으로는 한글 활자, 그중에서도 ‘월인천강지곡’을 복원해보고 싶어요. 금속활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격을 높여 세계인들을 감동시키고 싶습니다.

이창주 대표 | 저희는 해외에서 전시회를 열어 우리네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그 첫 나라는 영국이었으면 좋겠고요. 습판 사진이라는 기술이 19세기 영국의 것이거든요. 한복 등의 한국적인 소재를 촬영해서 영국에서 전시해보려고요. 그래서 인물사진을 촬영하는 틈틈이 저희의 개인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등대사진관의 슬로건은 ‘있는 그대로’예요. 앞으로도 저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으면서, 우리의 문화와 함께 습판 사진의 가치를 넓혀 나갈 겁니다.

 

글‧한율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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