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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면천두견주 진달래 향 머금은 달콤함에 취하다
작성일
2010-05-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350




감미甘味, 지미至味 감도는 면천두견주의 풍미風味

홍두견, 백두견, 영산홍 등 색깔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봄을 물들이는 진달래(두견화). 오늘날 벚꽃이 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예전 봄날의 정취를 한껏 돋궈주는 꽃의 으뜸은 단연 진달래였다.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일대 지역민들은 고슬고슬하게 지은 찹쌀밥과 잘 말린 진달래꽃을 켜켜이 섞어 빚은 면천두견주를 누대로 즐겨 마셔왔다. 전통사회에서 술은 감甘, 산酸, 신辛, 고苦, 지旨, 삽澁, 청량미淸凉味 등과 색택色澤, 향취, 침강도, 혼탁도가 잘 어우러진 것을 최고로 꼽았다. 면천두견주는 진달래 꽃잎에서 우러나는 담황색의 오묘한 색상과 향취도 좋을뿐더러, 국내 발효주 가운데 가장 높은 도수(18%)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넘어가고 감칠맛도 그만이다. 이처럼 면천지역에서 빚어지는 두견주가감미甘味, 지미旨美 등의 풍미風味가 뛰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두견주를 빚을 때 여느 지역이 진달래꽃과 함께 한약재를 넣어서 빚는 것과 달리  찹쌀과 누룩에 오직 진달래꽃만을 가미하여 가양주家釀酒를 빚어 온 지역은 면천이 유일하다. 면천두견주에 첨가되는 진달래는 활짝 핀 꽃을 따 내어 서늘한 곳에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술을 빚을 때마다 조금씩 사용한다. 진달래꽃잎을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술 빛깔이 붉게 되고 쓴맛이 돌며,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에 적게 넣으면 향기를 느낄 수 없다. 면천사람들은 진달래를 시루떡 앉히듯이 켜켜로 안쳐 발효시킴으로서 보다 맑고 향기로운 술을 빚어냈다. 또한 면천두견주는 멥쌀을 사용하지 않고 찹쌀로만 빚는 술이라는 점에서 한층 고급스러운 가향주佳香酒이다. 찹쌀만 이용하여 빚은 술은 찹쌀 특유의 부드러움이 녹아 소화가 잘되고 점도도 높아서 예로부터 귀한 술로 인정받아 왔다. 면천두견주는 술을 빚는 날로부터 발효와 숙성, 저장에 이르기까지 100일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정성이 담겨져 있다. 집집마다 가전비법家傳秘法으로 빚어오던 면천두견주는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6-나호로 지정되어 전승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을사람들로 구성된 ‘면천두견주보존회’가 보유단체로 인정되면서 면천두견주의 생산은 더욱 활기를 뛰게 되었다. 보존회에서는 좋은 재료의 준비뿐만 아니라 적정한 발효를 위한 술독관리, 그리고 정성을 쏟아 ‘좋은 술’, ‘맛난 술’이 전승될 수 있도록 전통비법을 오롯이 지켜나가고 있다.

한편 좋은 술이라 하여 마냥 아껴두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면천두견주는 발효주의 특성상 장기보존이 어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반드시 15°c 이하의 냉장보관을 하고, 되도록 일주일 이내에 마셔야 참맛을 느낄 수 있음을 기억해 두자.
 
 

지극한 효심이 빚어낸 면천두견주

중국 당나라의 이백과 두보도 즐겨 마셨다는 두견주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마셔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시문집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도 화향주花香酒로서 송주, 국화주, 계향어주, 화주, 죽엽주와 함께 두견주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면천지역에서 두견주를 빚기 시작한 시기를 알려주는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역사기록의 빈 공간을 구전口傳되는 이야기가 채워주고 있으니 잠시 소개해 본다. 고려시대 개국 공신 복지겸이 병에 걸려 면천으로 요양을 왔으나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열일곱 살이던 딸 영랑이 ‘아미산蛾眉山’에 올라가서 지극한 정성으로 백일기도를 드리던 마지막 날 현몽을 하게 된다. 꿈의 내용인 즉, 아미산에 만개한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야 할 것이며, 술을 빚은 지 백일이 지난 다음에 부친으로 하여금 이를 마시게 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 하였다. 영랑이 현몽대로 행했더니 과연 복지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고려시대 각종 문헌에 두견주가 소개되어 있고, 구전으로 미루어 볼 때 면천두견주를 빚어 온 역사는 어림잡아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전설을 뒷받침 해 주듯이 면천두견주에 사용되는 진달래는 당진군을 감싸고 있는 아미산 자락 진달래 군락지에서 4월 초순경에 채취하고 있다. 한편 아미산자락 아래로 펼쳐지는 들의 시작 부분에 전설에도 등장하는 ‘안샘’이 자리하고 있다. 안샘은 아무리 심한 가뭄 때라도 물이 마르지 않으며, 단맛을 지니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면천사람들은 이 물로 두견주를 빚어왔다. 안샘은 평균 수온 14°c~15°c를 유지하고 있어 술 빚기에 매우 적합한 물이었으나, 보존상의 이유로 현재는 안샘과 동일한 성분과 맛을 지닌 물을 사용하고 있다. 


 

전통주, 세계화를 향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

술은 제사를 비롯한 각종 의례 때는 물론 일상 음료로써 즐겨 음용되어왔다. 특히 힘겨운 노동에 흥과 힘을 돋게 하는 술의 마력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농사일의 능률을 위해 술이 필요했던 것은 선현들도 마찬가지였을 터, 15세기 농서 《금양잡록》에서는 ‘호미질(일하러) 나갈 때에 술 단지를 잊지 마라(가져가라)’고 하여 애주가들이 고맙게 여길만한 당부까지 하고 있다.     

조선중엽에 술은 다양해져서 문헌에 전하는 술만 200종이 훨씬 넘었고, 조선후기에는 가전비법家傳秘法으로 빚어지던 명주들이 알려지면서 전통주의 전성기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0년대 초부터 우리네 음주문화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술을 빚으면 세금을 부과하고, 양조 허가를 받은 사람 외에는 술을 만들지 못하도록 일제가 시행한 주세법酒稅法의 등장이 그것이다.‘술은 몇 사람이 먹을 곡식을 한 사람이 마셔 버린다.’는 이유로 술 빚는 일에 제재를 가하였다. 이런 중에도 많은 지역과 집안에서 가양주家釀酒를 몰래 빚기도 하였으나 이마저도 밀주제조에 대한 단속(1916년)이 강화된 탓에 수백 종에 달했던 전통주 빚는 비법은 잊혀져 갔고 모든 술이 약주·탁주·소주로 획일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전통주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집안과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전통주는 오늘날 면천두견주와 같이 국가의 보호와 전승자들의 노력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전통주의 다양한 상품개발과 세계화를 통해 브랜디나 위스키와 같은 술과 경쟁해야 할 때이다. 바야흐로 진달래 향 머금은 달콤함에 취하고 싶은 완연한 봄이다.




글·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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