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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등에 기원을 담아 밝히는 의식, 연등회
작성일
2012-12-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764



어리석음을 깨뜨리는 깨달음의 등

연등회는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공덕을 기리는 불교의례다. 불교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은 불을 밝혀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번뇌와 무명(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비추어 뭇 중생이 모두 무명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기원을 담고 있다.

연등과 관련한 설법은 『불설시등공덕경』과 『현우경』 등 여러 경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경전에서 연등 보시를 하면 얻게 되는 공덕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첫째는 ‘지혜의 빛’을 얻게 된다는 것이고 ‘무한한 복록’을 얻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등불을 밝히는 불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은 공통성이 있다. 


연등회나 팔관회에서 등불을 밝혔다 함은 불의 재생력과 정화력을 믿는 종교적 행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불은 재생, 정화, 재물, 부귀, 장수 같은 신성성을 갖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불상의 광배는 불꽃모양(火焰紋)을 도안하는데 화염문은 천상세계를 밝히는 광명이나 신성한 존재의 힘 또는 위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류는 불을 발명하면서 놀라운 문화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제1의 불을 발명하여 난방과 조명을 해결하고, 제2의 불인 전기의 발명으로 인류문명은 한 번 더 도약하여 지금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인류는 이제 제3의 불이라고 불리는 원자핵의 불을 발명하였으나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그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등불의 원래 의미인 ‘지혜’를 깨달아 인류에 유용하게 불을 사용하는 것이다.



온 나라를 축복으로 밝힌 연등회

연등회는 5세기 초 인도에서부터 대단히 성대하게 열렸다. 법현이라는 중국 승려가 쓴 기행문에 보면, 인도의 연등회 풍속은 네 바퀴 수레위에 5층탑 모형을 만들어 불보살을 안치하고 금은박과 유리옥으로 장식하고 주위를 화려하게 채색한 번幡을 둘러 장식했다. 

밤이 되면 성 밖의 사원에서 성안으로 행렬할 때 승려와 속인들이 모두 모여 등을 밝히며 기악을 공연하고 꽃과 향을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중국으로 건너와 사자춤을 추고, 칼을 삼키거나 불을 토하고, 솟대에 오르거나 줄타기 묘기 등 여러 가지 백희잡기百 雜技를 즐기는 기이한 묘기들이 행해졌다. 이러한 모습은 돈황석굴 벽화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통해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이러한 풍속도 함께 받아들였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이 황룡사에서 연등을 관람하고 여러 신하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고려 왕건은 『훈요십조』를 지어서 후대 왕들에게 나라와 백성을 섬기기 위해 ‘연등회’와 ‘팔관회’를 폐지하지 말 것을 훈시하였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으므로 연등회를 ‘소연등회’와 ‘대연등회’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서 시행하였다.

이 당시 연등회는 궁궐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부처님의 은혜를 기리고 축복을 기원하는 거국적인 행사였다. 『고려사』에 보면 의종 때 연등위장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왕이 연등회에 행차 할 때 1,000여 명의 호위군이 양쪽으로 행렬을 짓고, 40여 명의 기수, 100여 명의 취라군, 100여 명의 악단, 80여 명의 잡기 놀이꾼이 뒤를 따랐다. 그 가운데 특이한 점은 서역(서인도)악인 40명, 고창기(중국 신강성) 16명, 천축(인도)기 18명이 열거되어 있어서 이때 이미 연등회는 국제적인 행사가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종 21년의 연등회는 밤을 새워 백희연희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는데 거리를 밝힌 연등이 3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조선은 정치적으로 억불숭유를 내세웠으므로 궁중에서 신흥 유학자들이 끊임없이 연등회 폐지론을 주장하여 궁궐에서 연등회는 열지 못했으나 이미 풍속으로 고정된 민간의 연등회까지 폐지시킬 수는 없었다. 연등회 폐지를 주장한 유학자들은 남산에 올라가 서울 장안의 휘황찬란한 연등회 풍광을 관등하고 흥취를 남긴 시와 글이 수없이 많다.


장안 성중 집집마다 밤새도록 연등이 노을처럼 붉고,
삼천 세계가 온통 산호나무요 스물 네 다리는 연꽃이라.
동쪽 거리 서편 저자는 온통 대낮과 같고,
떠들며 내닫은 아이들은 잔나비보다 더 빠르네.

-종로에서 관등하다(서거정)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집집마다 꿩깃털을 꽂은 긴 장대에 가족 수대로 등을 매달아 꿈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서거정의 시에도 나무에 등을 매달아서(燈樹) 마치 온 세상이 산호 꽃나무처럼 보이며,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24개의 다리마다 연꽃등으로 장식한 모습을 시로 읊었다.



세계 속의 연등축제, 한국문화의 상징

지금은 말 그대로 글로벌시대. 세상은 하루 생활권이 되어 국경은 그 의미가 점점 희석되고 있다. 21세기는 한나라의 문화가 한 장소에서만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서 온 세상을 휘감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지구촌을 뒤흔든 것은 불과 두세 달 만에 일으킨 문화폭풍이다. 지구촌에서 나라마다 벌어지는 여러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축제는 그 축제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역사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결정체다. 축제를 보면 그 나라 문화의 깊이와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축제는 많다. 프랑스의 아비뇽페스티벌·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축제·브라질의 리우카니발·일본의 기온마츠리·태국의 송끄란축제·스리랑카의 페라하라 축제 등에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즐기며, 어떤 도시는 축제 기간 중에 그 도시 인구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의 유명한 축제를 한두 번 보거나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몇 개나 기억하고 있을까? 종교를 떠나 연등회에 참석하여 함께한 국민은 몇 명이나 될까?

연등회는 우리가 알아주기 전에 먼저 외국인들이 더 기억하고 찾는 축제이기도 하다. 2012년도 연등회 때 외국인 방문객을 조사한 백서(봉축위 간행)에 따르면 연등회를 보기위해 재방문한 사람이 20%이상이며, 축제를 다녀온 지인의 추천으로 방문한 경우가 42%에 달할 정도로 외국 사람들은 연등회의 매력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어떤 가족은 5년째 온가족이 연등회를 보기위해 해마다 한국을 방문한다고 답변한 경우도 있다.

이제 연등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문화는 그것을 끊임없이 사랑으로 가꿀 때 빛이 살아있고 향기가 고운 꽃나무처럼 늘 우리에게 기쁨과 자긍심을 준다. 오랫동안 마음을 기울여 잘 다듬고 보존한 문화는 민족의 얼과 넋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 못하는 문화를 남이 알아줄 리는 만무하다. 

우리는 1,000년이 넘도록 우리 조상이 가꾸어온 연등회를 2012년에 겨우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하였다. 연등회뿐 아니라 우리가 잊고 홀대하고 무관심할 때 우리의 소중한 문화는 시들어가고 따라서 민족혼도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글·사진·김용덕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교수, 성보문화재위원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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