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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신, 그가 새롭게 써내려가는 따뜻한 기록
작성일
2012-12-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075





야구로 꿈을 이야기하다

감동과 아쉬움 속에서 양준혁 선수가 은퇴를 한 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역에서 물러나면 전설이 되어 팬들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야구에 관심이 없던 수많은 대중이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선수시절에도 입담이 좋기로 유명했던 그는 은퇴 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변신했다. 통산 타율 3할1푼6리, 3천 타수 이상 타자 중 역대 2위 기록과 함께 ‘양신’으로 불리던 양준혁의 예능진출에 적지 않은 팬들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는 화려한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방송인으로 데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양준혁 씨는 그라운드만큼이나 치열한 예능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그는 야구계로 돌아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그것은 야구를 통한 사회사업이었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실행으로 옮겨져 양준혁 야구재단이 설립됐고, 그 출발은 야구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을 회복시키고 꿈나무를 키우는 ‘멘토리야구단’ 창립이었다.

“어렸을 때 형편이 어려워서 야구를 못할 뻔 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었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퇴하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뿐입니다.” 성남 국군체육부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멘토리야구단의 훈련에 찾아가자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서 있는 양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희생과 협동, 배려가 담겨 있다는 믿음이 그가 아이들을 위해 멘토리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이다.

삶을 희망으로 만드는 방법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너무 학업만을 중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양준혁 씨.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만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마인드나,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것 역시 그러한 부분들을 함께 나누고,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야구가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부분들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예절을 배우도록 합니다. 야구에는 ‘희생번트’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점들을 야구를 통해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야구를 하다보면 위기에도 직면하게 되고, 경기에서 지면서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경험하면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지혜를 배우게 된다.

12월에 멘토리야구단을 후원하는 자선경기 준비로 바쁜 양준혁 선수. 청소년야구대회를 진행하는 등 야구와 관련해 그가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사업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운 규모이기 때문에 재단이 설립되었고, 동참의 손길을 내미는 곳도 점점 늘고 있다. “국군체육부대에서 야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 사실 야구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가 없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특히 주말에는 사회인 야구단조차 구장이 모자라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상무에서 흔쾌히 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데에는 양준혁 선수가 상무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여러모로 인연이 참 많은 곳이라며 그라운드로 시선을 주는 그의 눈에 짙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야구역사에 있어 가장 큰 문화재, 동대문야구장

프로야구는 작년 700만 관중 시대를 열면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뜨거운 야구 열기를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어떻게 느꼈을까.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계기로 야구 붐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특히 여성 팬들이 늘어나면서 야구가 인기 스포츠가 된 것 같습니다. 야구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하나둘 씩 경기장을 찾게 된 거죠.” 이제 야구는 단순히 하나의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은퇴 후 가끔은 ‘내가 야구를 했었나’ 싶을 정도로 야구와 떨어져 지냈었다는 양준혁 씨. 하지만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다시 그라운드와 가까워졌다. “선수시절에는 몰랐는데 뒤에서 보니까 선수들이 03020418너무 멋있어 보이더군요. 투수가 공을 잘 던지거나, 타자가 홈런을 치면 신기하게까지 보였어요. 그러다보면 ‘나도 옛날에 저렇게 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는 자신은 ‘팬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기에 행복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08년, 야구 역사에 있어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그 무엇보다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된 것이다. “공원을 짓는 것도 좋지만 야구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가치 있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선수들이 모두 그곳에서 배출됐습니다.

영국이나 다른 해외의 사례만 봐도 150년도 훨씬 넘는 경기장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한국 야구의 역사와 스토리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건물 이전에 스토리가 탄생되었고, 명맥을 이어나가는 장소로서 의미를 갖는다. 동대문야구장 자체가 한국야구의 역사를 상징하는 엄청난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데 보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사랑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스포츠, 야구. 한 분야에서 신神으로 추앙받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기록이 되었다. 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최다안타, 최다타점, 최다득점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다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기록의 사나이’로 불린다. 하지만 기록보다는 ‘항상 열심히 뛰었던 선수, 일루까지 전력으로 달렸던 선수’로 기억되는 것이 그가 가지는 바람이다.

스포츠 스타라면 당연히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사회에 돌려줄 필요가 있다며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선수에서는 물러났지만 우리나라에 좋은 야구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선수시절에는 팬들에게 사랑을 받기만해서 돌려주는 것에 서툴지만, 선수들의 의식이 바뀌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베풀기 시작하면서 더욱 바쁜 삶을 살아가게 된 양준혁 씨. ‘프로야구 사상 최초 자선경기 개최’ 등 비록 선수로서의 기록은 아니지만 그가 야구를 통해 써내려가는 따뜻한 기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박진아 사진·엄지민,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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