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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시대의 문양도배지
작성일
2012-12-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9718





살림살이와 도배지

현대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도배지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거생활에서 도배지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잊고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조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서양식 제지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나무판에 문양을 조각하여 조각판 위에 여러 색상의 안료를 칠한 후 거기에 종이를 덮고 솔로 문질러 인쇄하는 목판인쇄로 문양을 찍어내는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대가 불과 100년 전까지도 있었다. 그 때에는 문양이 찍힌 도배지를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한 번 도배지를 마련할 때에는 장차에 다시 도배할 때를 대비하거나 보수가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여분을 마련하여 다락에 귀하게 보관하였다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귀중하게 다루는 종이

종이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채취에서부터 가공하여 완성된 종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작업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제작된 모든 종이를 귀중하게 보관하고 재사용하는 방식이 조선시대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국가에서 행하는 과거시험을 시행한 후에 합격하지 못한 시험지를 모아두었다가 궁궐의 건축공사가 있게 되면 종이의 수량을 헤아려 공사장에 보내어 건물의 도배공사에 사용하게 하였고, 그런 건축공사 과정을 기록한 『궁궐영건도감의궤』라는 책자를 만들어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를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홍수나 화재를 당하여 보관하던 종이가 손상되어 낱장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무게를 달아 공사장에 보내 필요한 곳에 사용하게 하기도 하였고, 기름을 먹인 종이인 유지油紙는 4~5회를 반복하여 재사용하도록 하였고 관청끼리 유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정확히 회계하였으며, 기록된 수량과 차이가 생길 때는 값을 따져 변상시키는 기록도 『영건의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이의 종류와 문양지

『영건의궤』에 기록된 종이의 명칭을 살펴보면 지질과 생산지에 따라 대략 7종에서 70여 종의 종이가 기록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그 많던 종이의 생산기술이 현대에 단절되어 버린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며 옛 종이와 같은 다양한 종이의 생산을 위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문양지의 종류를 살피면 조선시대 책자의 표지에 자주 사용되는 능화문양의 종류가 여럿이 있는 바 그 중에서도 청능화지와 백능화지를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특히 백능화지는 운모가루를 백색의 안료로 삼아 능화문을 찍어내는 것이며, 아직 실물로 백능화지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청능화지는 대원군의 저택인 운현궁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에 백능화지의 모습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백능화지는 백색의 한지 바탕에 은백색의 운모가루로 능화문을 찍어낸 것이어서 그야말로 은은한 아취를 자아내게 하였을 것이다. 이 외에도 용봉지가 있는데 덕수궁의 준명당 수리공사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문양지의 명칭 그대로 용을 장식화 하여 둥글게 만든 용문과 봉황의 모습을 장식화하여 원형으로 표현한 봉문이 서로 교차되게 배치하여 천장의 반자지로 사용한 것이다.

궁궐침전의 도배

궁궐에서 왕과 왕비 또는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서 온돌방은 실내 전체를 도배하여 문인방과 문선 등의 극히 좁은 일부만 목재가 보이게 하였다. 방바닥은 장지에 기름을 먹인 장판지로 바르고 사방의 벽은 백능화지로 도배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천장은 봄을 상징하는 색인 청색을 사용한 청능화지로 도배하게 된다.

물론 모든 침전이 동일한 문양의 도배지를 사용한 것은 아니겠지만 『영건의궤』에 기록된 종이의 수량을 살피어 표준적인 침전의 온돌방 도배의 모습을 추리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서양문물이 도입되는 개화기에는 부분적으로 서양식 인쇄 기법의 초보적인 방식으로 인쇄된 문양지가 사용되고 색상도 다양하게 사용되는 예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반자지(반자를 바르는 종이)에 붉은색 또는 갈색의 온화한 분위기의 문양지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아마도 대한제국 이후의 시기이겠지만 청색능화문 위에 금색의 용문 또는 모란문양을 추가적으로 인쇄한 화려한 도배지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문양지의 실례

1) 창덕궁 석복헌에 사용되었던 수복문壽福紋

석복헌 수리공사시에 도배지를 철거하고 폐기하기 위해 임시로 마당에 쌓아둔 폐기물 더미에서 도배지 일부를 가져다가 분해하여 보니 가장 먼저 도배되었던 문양지가 사진04와 같은 수복문 도배지이다. 중앙에 장수를 기원하는 목숨 수壽자를 장식화하여 중심문양을 만들고, 주변에는 날개를 편 박쥐 다섯 마리를 고르게 배치하였다. 기본 문양의 사이에는 청색의 구름문양을 두어 푸른 꿈(靑雲)을 상징하였고 가장 중심부에는 임금 왕王자를 새겨 넣어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문양지인 것을 알 수 있다.

2) 청능화문+용문

사진03은 운현궁의 안채인 노락당에서 나온 도배지이다. 완자문양을 청색으로 인쇄하고 다시 그 위에 금색으로 용문양을 원형의 도안으로 만들어 찍어낸 것이다. 이 금색의 용문양을 제거한 모습이 위에서 언급한 청능화문이다.

3) 금능화+청모란당초

사진01도 운현궁 노락당 도배지이다. 바탕을 금색의 능화문을 베풀고 중심권에는 모란당초문을 청색으로 찍어낸 것이다. 이것과 같이 노락당에서 나온 도배지는 금색과 청색이 반대로 인쇄된 도배지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목판에 색을 달리 칠하여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민가 주택의 도배지

사대부를 포함하여 일반의 민가에서는 궁궐과 같은 화려한 도배지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안방이나 사랑방 등에는 창호의 갑창 또는 두껍닫이라 하는 곳에 작은 그림을 표구하여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 문방사우도 : 사랑방에서 선비가 자주 사용하는 종이, 붓, 먹, 벼루가 있어 문방사우를 표현하고 있으며, 여기에 선비를 상징하는 매화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함께 장식되어 있다. 


2) 책가도 : 선비의 글공부를 상징하는 책과 문방사우가 있고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도 함께 표현하였다.


조선시대 도배지에 대한 연구

근래에 서울에 있는 궁궐에 많은 건물들이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나 도배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복원된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도배지에 대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기존의 건물에 남아있는 도배지의 일부를 채취하여 어떤 종이에 어떤 문양지가 있었는지를 조사하여야 조선시대의 도배지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조선 시대 궁궐의 도배지가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으나 실제의 건물에서 나온 도배지를 보거나 궁궐의궤에 기록된 도배지의 목록을 보더라도 고급의 비단벽지가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도배지 샘플에 근거하면 모든 문양지는 한지에 인쇄되거나 개화기에 서양식 제지에 인쇄된 문양지이며 직물로 된 도배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근검절약하는 유교적 기풍이 궁궐의 도배에도 적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수공사 시에 이미 많은 자료들이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연구하면 진정한 조선 시대 궁궐의 모습을 갖춘 복원이 가능할 것이며, 도배지 문양의 변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여 본다.



글·사진·장순용 삼아성건축사사무소 대표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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