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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세대 장인’이 빚어내는 우리 술의 미래
작성일
2012-12-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237



술 빚는 ''신세대 장인''

원 없이 술잔을 들이켜도 될 서른여덟 나이에 그는 손수 술을 빚고 있다. 20세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문배주를 빚어왔으니 어느덧 15년 동안 술독에 빠져 살아온 셈이다. 그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지인도 많다.


“제가 전통술을 빚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친구도 여럿 있어요. 우리가 젊은 세대이니까 제가 하는 일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대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전통 술을 빚는 일은 이색적인 직업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전통을 잇고 있는 그가 더욱 귀하게 보인다. 장인이라는 표현이 아직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겸손함을 보이는 이승용 전수조교. 부친이신 이기춘 보유자는 아들에게 문배주의 맛과 더불어 사람들과 어울려 둥글게 세상을 살아가는 멋도 함께 물려준 듯하다. 자신이 장인이라고 불리기에는 이르다고 말하는 젊은 그에게 ‘신세대 장인’이라는 호칭을 건네 본다.




문배주 주조법을 지켜 온 150년

신주단지를 모시듯 소줏고리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술을 그가 정성스럽게 받아낸다. 어릴 때부터 문배주를 빚어 온 까닭에 술 빚는 과정마다 농익은 솜씨가 드러난다. 문배주를 빚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할아버지께서 평안도 평촌에서 제법 큰 양조장을 하셨다고 해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1·4 후퇴 때 서울로 내려오신 이후로 집 안에서만 조금씩 문배주를 빚으셨어요. 아버지께서 뒤를 이으셨고, 저도 아버지와 함께 가업을 이어가게 된 거죠.” 

문배주를 빚어온 집안 내력에 대해 짧게 표현하였지만 이승용 전수조교의 말에서 문배주 주조 비법의 맥을 잇기까지 쓰고 단 세월을 이겨낸 집안 어른들의 발자취가 느껴졌다. 

고조모 때부터 시작된 문배주 주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6-가호로 문배주가 지정되던 해(1986) 이경찬 증조부가 1대 보유자로 인정되어 맥을 이어갔다. 이 시기는 희석식 소주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맥주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전통주 주조 기술이 단절의 위기를 맞은 때였다. 

그의 조부께서는 부친 이기춘 보유자에게 ‘승용이가 반드시 문배주를 잇도록 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승용은 조부의 큰 뜻을 실천하였다. 옛 것을 지켜내기 위한 이들의 사명감을 ‘장인정신’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처럼 모진 세월 속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문배주 빚기를 멈추지 않고 150년간 대를 이어온 것이 문배주 주조법이다.




문배나무 꽃향기가 입안에 감겨드는 술, 문배주

좁쌀과 수수, 누룩(밀로 만들어 발효시킴)으로 담그는 증류주(소주) 문배주. 이는 고려 시대부터 빚어온 술로 알려져 있으니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문배주는 공식 석상에 자주 오르곤 했다. “문배(배의 일종)에서 풍기는 진한 향기가 난다고 해서 문배주라고 합니다. 

깨끗하게 증류되어서 숙취도 적은 편이에요.” 문배주를 마셔본 경험이 있던 터라 이승용 전수조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40도가 넘는 문배주만의 진한 배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졌다. 옅은 황갈색의 문배주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취가 좋아서 한국의 전통주 중에서 유일하게 술의 향기에서 이름을 따온 술이다.

그러나 정작 문배주 제조 과정에서 문배나무의 꽃이나 열매가 전혀 첨가되지 않았다.

 “문배의 향은 자연적으로 곰팡이를 번식시켜서 만든 누룩에서 나오는 겁니다. 술의 향기나 알코올 도수, 색깔을 결정짓는 것이 누룩이기 때문에 적정한 온도에서 정성들여 발효시켜야 하죠.” 

문배주만의 특색과 주조 과정을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이승용 전수교육조교. 그의 이야기 속에 가업을 잇고 있는 자부심과 집념이 배어난다. 문배주 주조법을 이어가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차세대 장인, 전통술의 미래를 빚다

“제가 문배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문배주만을 마시지는 않아요. 특히 즐겨 마시는 술이요? 대체로 깨끗하게 증류된 술을 좋아하지만 가리는 편은 아닙니다.” 

부친과는 달리 그는 술을 곧잘 마시는 눈치다. 좋은 술이라도 과하게 마시지 않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야말로 좋은 술이 아니겠냐고 잔잔한 웃음을 보인다. 유년기부터 문배주를 빚고 계신 조부와 부친의 모습을 생활 속에서 보아온 그이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업을 잇기 위해 공을 들여 온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배주의 전통을 잇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못지않게 다양한 도수의 술을 개발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전통주의 전승을 활성화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분야의 시장성이 취약한데다 때로는 주조법酒造法이 새로운 시도를 차단하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그가 속내를 털어 놓았다. 배우는 과정의 고됨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의 안목은 문배주 본연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문배주를 개발하는 전통의 현재적 계승까지 나아가 있었다. 150년 동안 이어져온 문배주 제조비법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은 이승용 전수교육조교. 신세대이자 차세대 장인으로서 그가 앞으로 빚어가는 것은 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 전통술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취해 사는 젊은 전승자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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