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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과 문화재
작성일
2006-07-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763

은밀한 드러냄과 감춤의 미학,‘세렴장細簾匠’조대용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네 생활공간을 꾸며 왔던 발은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한여름, 태양빛을 차단하고 바람을 투과시켜 더위를 씻어내는 선조의 지혜가 담긴 생활용품이자 안과 밖, 男과 女, 聖과 俗을 구분하던 공간분할의 도구이기도 했다.

4대 째 이어온 통영발의 파수꾼 생활양식의 변화와 아울러 주거양식이 대부분 서양식으로 바뀐 요즘, 여간해서 발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만난 조대용(57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은 단지 전통발만이 아니라 현대에 맞는 새로운 용도와 새로운 모양의 발을 개발하여 선조의 지혜와 생활철학을 오늘에 되살리고 발전시키고자 그 외롭고 힘든 작업을 40여 년 가까이 묵묵하게 해내 오고 있었다. 우선 조대용 선생을 뵙고 최근에 전통발(세렴)의 위상을 물었다. “이젠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요. IMF 이전만 해도 딸 혼수품목으로, 또는 선물용으로 간간이 주문이 들어왔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대발(1~2m의 발을 엮는데) 하나 엮으려면 숙련된 선생의 솜씨로도 3개월이 꼬박 소요된다고 했다. 재료비는 고사하고 그 인건비만 계산해도 어림잡아 6,7백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재료의 구입부터 지난한 제작과정을 보면 그것도 헐값이다. 타지방에서 발의 재료로 사용하는 왕죽과 달리 가늘지만 질기고 유연한 특성을 지닌 시눗대(시리대, 또는 해장죽)를 사용하는 통영발은 무분별한 제초제 사용으로 이제는 재료구입도 어렵다고 했다. 서리가 내리고 휴면기에 들어간 대나무를 채취하는데 마디가 일정하고 휨이 없는 것만 골라 베어내서 푸른 껍질과 속대를 벗겨내고 말리는 일차공정을 통해 은은한 갈색이 도는 발의 재료를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고무쇠라는 추출기를 통해 평균지름이 0.5mm에 불과한 대오리를 준비해야 한다. 명주실을 매단 고두레(보통은 찰흙이나 납덩이에 한지를 입혀 만든다)를 작업대에 걸어 준비한 대오리를 명주실에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엮어간다. 마지막으로 울퉁불퉁한 가장자리 면을 반듯하게 잘라내어 천으로 싼 뒤 술을 달고 맨 밑면은 굵고 튼튼한 목재로 마감을 한다. 온전히 인내를 바탕으로 맨손으로만 가능한 공정이다. 열서너 살 무렵부터 선친의 어깨너머로 이 과정을 익힌 조대용은 이미 가업을 이을 운명이었는지 어떤 놀이보다 즐거웠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증조부 때부터 4대째 이어 온 가업이지만 조대용은 전통 민발(문양 없는 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오리와 함께 엮는 명주실을 이용해 여러 문양을 새겨 넣었다. 또한 고무쇠와 같이 직접 개발한 작업도구 등을 통해 더욱 섬세하고 일정한 굵기의 대오리로 엮어내어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한민족의 은근함이 내재된 발 과연 벽에 전시된 발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섬세한 한 올 한 올에 들어갔을 장인의 땀방울이 금방이라도 손에 묻어날 듯싶다. 그러면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현대의 건축물에 발은 정녕 맞지 않는 것일까?’ 조대용의 작품세계를 알게 될수록 인터뷰 내내 품고 있던 그 의문은 저절로 풀려나갔다. 담백한 자연조형물로서의 발은 현대가옥에서도 충분한 미적가치를 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에는 우리네 고유의 철학이 담겨있다. 발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는 발 바깥의 세상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발에서 멀어지면 발 안쪽의 풍경은 차단된다. 거리에 따라서 빛의 명암이 교묘하게 조율되는 특성을 지닌 발은 드러냄과 숨김의 미학적 결정체다. 다시 말해서 은밀한 드러냄과 조용한 감춤이 동시에 내재한 발은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우리 한민족의 은근함을 상징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발을 현대가옥의 공간에 장식한다면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작품에 못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양을 넣은 새로운 발
<문양을 넣은 새로운 발>
통영발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 그러나 작금에 처한 통영 전통발의 운명은 어떠한가. 겨우 둘째 아들을 설득해 기술을 전수하고는 있지만 최근 전통을 중시하는 풍토가 점점 사라지고 시장성이 사라져 과연 가업이 제대로 유지될지 조대용 선생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 방문했던 일본의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적, 제도적 풍토에 대한 실례를 들었다. “일본의 전통민속공예촌은 공방, 전시장과 함께 아름다운 산골짜기에 조성되어 봄, 가을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여러 분야의 장인들은 시연을 하고 작품을 판매합니다. 장인들은 매일 그곳을 출근하고 월급을 받습니다. 장인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생활이 어렵지 않은 거죠.” 이야기를 듣는 필자의 마음 역시 무거워졌다. ‘왜 우리의 장인은 하나같이 생활이 어려운가, 한 명의 장인을 위해 식구들은 가난이라는 희생을 겪어야만 하는가.” 조대용 선생 역시 사모님이 세탁소를 운영하여 생활을 영위한다고 했다. 선생의 아들 역시 자신처럼 가족의 희생을 감내하고라도 전통발의 명맥을 이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고도 했다. 우리네 선조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문화자산의 가치를 깨닫고 우리 생활 속에 끌어들여 애용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가슴을 후려쳤다. 글 _ 편집실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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