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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담은 궁궐 벽화
작성일
2022-08-3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33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담은 궁궐 벽화 창덕궁 희정당 금강산만물초승경도 (金剛山萬物肖勝景圖) 궁궐의 전각 안에서 금강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창덕궁 희정당 대청마루에 들어서면 금강산의 아름다운 광경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날 디지털 실감영상 기술을 통해 자연의 생생한 풍광을 실내에서 감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창덕궁 희정당의 주인이었던 순종(純宗) 역시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금강산의 경치를 전각 안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01.<금강산만물초승경도>, 김규진(金圭鎭), 1920년, 비단에 채색, 883×205.1cm,국가등록문화재 ©국립고궁박물관, 2016년 보존처리를 마친〈금강산만물초승경도〉와〈총석정절경도〉의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희정당에는 두 벽화의 모사도가 부착되어 있다.

‘일만이천(一萬二千)
놉흔봉(峯)은 /
운무중(雲霧中)에
츌몰(出沒)한다 /
선경(仙境)이냐
옥경(玉京)이냐 /
텬하장관(天下壯觀)
죠흘시고’
- 김규진의 『금강유람가』 중


웅장하고 기묘한 산악미

창덕궁 희정당의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동쪽 벽 상단에는 여름날 푸른 바닷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총석의 기이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그린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가 붙어 있고, 서쪽 벽에는 붉은 단풍으로 물든 금강산 만물상의 가을 전경을 그린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가 마주하고 있다. 두 그림을 그린 화가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으로 그는 실제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제작했다. 거대한 크기뿐 아니라 화면을 압도하는 세밀한 묘사로 창덕궁 희정당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마치 금강산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외금강을 대표하는 만물상의 절경을 담아낸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지는 풍광 묘사가 특히 압권이다. 그림 상단에 묵서로 적어놓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라는 화제는 제목 그대로 금강산 만물초의 뛰어난 경치 그림이라는 뜻이다.


만물초(萬物肖)는 오늘날 흔히 만물상(萬物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옛 사람은 만물이 처음 만들어질 때 가장 먼저 만들어진 표본이라는 뜻에서 만물초(萬物草)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랜 세월 자연 속에 다듬어진 바위산이 저마다 형체를 갖추어 솟아오른 모습이 천태만상의 금강산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해 만물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 사람을 위해 완성한 만물초 절경

예로부터 천하의 승경(勝景)으로 이름난 금강산은 수많은 시구와 노래, 그림 등으로 예찬되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금강산 유람을 평생의 소원으로 꿈꿔왔다. 조선 국왕의 경우에는 최고 권력자였지만 궁을 떠나 사사로이 여행을 할 수 없던 까닭에 금강산을 실견(實見)할 수 없었다. 금강산 경관이 궁금했던 정조(正祖)는 1788년 가을, 김홍도를 시켜 직접 그림을 그려오도록 명을 내린 적이 있었다. 김홍도는 동료 화원 김응환과 함께 50여 일에 걸쳐 강원도와 금강산 일대의 절경을 그려왔는데, 직접 가보지 못하는 임금의 마음을 헤아려 금강산의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그려와 화첩과 장권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제작해 왕에게 바쳤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창덕궁 희정당 벽화의 화제(畵題)도 금강산 실경으로 정해진 것일까? 1917년 화재로 희정당, 대조전 등 창덕궁 내전 일각이 불타는 사고가 있자 당시 궁궐의 사무를 맡고 있던 이왕직(李王職)에서는 경복궁의 강녕전, 교태전 등의 부재를 뜯어 창덕궁으로 옮겨와 3년 여라는 시간에 걸쳐 신축 공사를 거행했다. 그리고 준공을 몇 달 앞둔 1920년 6월 순종의 뜻을 받들어 내전 벽면을 장식할 벽화 제작을 조선의 화가들에게 의뢰했고, 이때 희정당을 장식할 금강산 절경도의 제작을 김규진이 맡게 되었다.


이미 1919년에 금강산 스케치 유람을 떠난 적이 있었던 그는 순종 임금을 위한 벽화를 그리기 위해 1920년 다시 3개월간의 금강산 사생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눈길이 멈추고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그렸던 스케치들을 기초로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야 볼 수 있는 만물초의 풍경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김규진이 그린 창덕궁 희정당 〈금강산만물초승경도〉를 바라보노라면 만물초의 신비한 절경에 대한 경이감 뿐 아니라 조선의 산하를 자유롭게 유람할 수 없었던 순종 임금을 대신해 금강산의 모든 절경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화가의 시선과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글. 박윤희(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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