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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 그리고 정(情)으로 살아 있는 200세의 강원도 최대 시장
작성일
2017-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461

사람 그리고 정(情)으로 살아 있는 200세의 강원도 최대 시장 - 동해 북평5일장 물건만 사고팔려고 장날이 서는가? 오랜만에 이웃 마을 할미의 얼굴 보며 넋두리도 늘어놓고, 소쿠리 하나 사이에 둔 생면부지끼리도 푸근한 정(情)을 나누는, 전통시장은 ‘사귐의 장’이기도 하다. 수백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동해의 북평5일장은 볼거리와 먹을거리, 사람들의 이야기로 북적거린다. 우시장의 흔적은 국밥 거리로, 차력쇼를 펼치던 마당은 공연장으로 조금씩 그 모습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강원도 최대 시장답게 5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선다. 넘쳐나는 인심이 골목골목 정겨운 장터의 풍경을 연출한다.

목마다 사람이 모여, 장(場)을 세우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형 마트 때문에 동네 슈퍼나 재래 시장이 설 자리가 없다는데, 북평5일장이 열리는 날은 오히려 대형 마트의 매상이 뚝 떨어진다. 동해에 위치한 만큼 어물전의 규모도 상당하거니와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직접 캐온 나물과 약초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동해시의 식수원인 전천(箭川)을 끼고 발달한 북평5일장은 전천의 물길이 변하면서 두세 차례 위치가 바뀌기도 했다. 삼척읍지 <진주지>에 따르면 ‘정조 20년(1796년), 북평장은 매월 3, 8, 13, 18, 23, 28일의 여섯 번 장이 열리는데 장세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무려 200년의 세월이다. 북평장이 오랜 세월 동안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으로 따지면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7번 국도, 태백에서 시작한 37번 국도, 정선에서 넘어오는 42번 국도가 바로 동해, 북평장이 열리는 곳에서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북평장이란 이름의 장터가 생기기 전부터 이곳은 정선과 삼척의 물건을 교환하는 접점이 되었다. 또한 깊은 산골 이 많은 강원도의 지형적 특성상 ‘북평장에 와서야 겨우 사람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평장은 물물교환의 장터를 넘어 만남의 장이었던 셈이다. 아직까지 그 훈훈한 인심이 남아 있는 우리의 귀중한 전통적 삶의 터전이다.

▲ 갓 잡아 올려 신선한 홍게와 자리에서 바로 쪄서 판매하는 문어 ▲ 우시장이 번성했음을 증명하듯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머리 국밥집들

01_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북평5일장 02_4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북평장의 터줏대감 ‘북평기름집’

육해공, 없는 게 없는 북평5일장

오전 8시부터 열리는 북평5일장에 자리를 잡으려고 이른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했을 상인들. 길가에 자리를 잡은 좌판의 주인은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다. 무엇보다 북평5일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꽤나 크게 열리는 어물전이다. 갓 잡아 와 싱싱하게 살아 있는 오징어와 곰치, 그 자리에서 삶아 모양을 낸 문어, 붉은 빛을 자랑하는 홍게 무더기, 한 켠에 널어둔 북어까지 제대로 판을 벌린 어물전 덕분에 동해의 바다 내음이 장터에서 출렁인다.

태백과 삼척에서 자란 산나물과 약초들도 북평5일장의 주인공이다. 고무대야 하나 정도 채운 아욱과 근대는 직접 캐온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만 다 팔면 귀갓길에 오를 소박한 좌판이 줄을 잇는다. 양파 6개, 오이 한 소쿠리가 전부인 집도 꽤나 있다. 2천 원과 맞바꾼 나물은 커다란 비닐 봉지를 가득 메울 만큼 인심이 후하다.

북평장의 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40여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름집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가게의 외관과 기름을 짜내는 옛 기계들은 그 자체로 멋스럽다. 마을 사랑방과도 같은 이곳에서 들기름보다 더 고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물고 있다. 누구든 들르는 이에게 작은 주전부리라도 내와야 직성이 풀리는 주인장은 외지인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주인장이 집에서 쪄온 투박한 백설기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다. 없는 게 없는 잡화점을 지나, 공연장이 있는 장터의 중앙으로 들어서자 우람한 토종닭 서너 마리를 들고 나온 상인과 손님의 흥정도 보인다. 가져다가 심기만 하면 쑥쑥 자랄 모종과 아기 나무들도 한자리 크게 차지하고 있다. 채송화와 장미같은 꽃부터 쉽사리 접하기 힘든 커피나무와 머루나무 등도 눈에 띈다. 온갖 것이 모인 제대로 된 장터이다.

03_갓 부친 메밀 전병과 소박한 잔치국수 04_북평5일장 중앙에 위치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 05_손수 키운 채소와 직접 캐온 나물로 좌판을 차린 할머니들

금강산도 식후경. 허기진 속을 달래다

재래시장이라고 얕봤다가는 북평5일장 면적에 놀랄 것이다. 13㎢를 다 둘러보다 보면 금세 허기가 지기 마련. 아이는 물론 어르신 입맛에도 잘 맞는 찹쌀 도너츠부터 갓 튀겨낸 뻥튀기, 시원한 식혜 등 장을 보면서도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지천에 널렸다.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은 메밀전과 잔치국수로 속을 든든히 채운다. 주문과 동시에 부침개 지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소박한 잔치 국수의 맑은 국물은 복잡할 것 없는 담백함 그 자체다. 포장마차 형태로 되어있는 가게에 앉아 사람들은 음식과 함께 추억도 한 그릇 덤으로 맛보고 간다.

정선5일장에서 볼 수 있는 메밀로 만든 음식들이 북평5일장에서도 단골 메뉴다. 매콤한 메밀 전병과 달콤한 팥이 들어간 수수부꾸미,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묵사발까지 메밀이 보여주는 다양한 맛의 변주가 입을 즐겁게 한다.

장터 한쪽으로 국밥집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메뉴는‘소머리 국밥’이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우시장이 먹을 거리로나마 남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때 북평5일장의 새벽을 가장 먼저 열었던 우시장이었을 터. 가마솥에서 몇 시간을 푹 고아 내놓은 국밥 한 그릇에는 느릿한 옛 정취가 함께 우려져 있다.

오후에 접어들자 먼저 소쿠리를 비운 할머니가 아직 다 팔지못한 이웃을 찾아간다. “벌써 다 팔았어?”라는 부러움 반 섞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는 이웃의 곁에 앉아 널려놓은 나물을 가지런히 정리해준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서로의 장바구니 속 재료들을 보며 오늘 저녁거리에 대한 소박한 대화도 이어진다. 5일 후면 또 만날 사이인데도 주름진 손으로 맞잡은 이웃들은 꽤나 긴 인사를 나눈다. 사람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북평5일장은 다음 장날도, 그 다음 장날도 오랫동안 북적일 듯하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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