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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중발굴, 바다 속에 숨겨진 타임캡슐을 찾아
작성일
2016-04-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497

수중발굴, 바다 속에 숨겨진 타임캡슐을 찾아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은 과거 사람들이 남겨놓은 물질 자료로 당시 기술·사회조직·문화·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수중고고학(水中考古學, Underwater archaeology)은 바다나 호수 속에서 고고학 자료를 찾아 연구하는 분야이다. 수중유적 중 대표적인 것은 물에 가라앉거나 잃어버린 난파선이며, 물가에 위치한 유적으로 부두, 선창, 조선소 같은 해양 기반시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수중유적도 대부분 난파선과 난파선에서 흘러나온 유물이다. 이러한 수중유적에는 해양문화를 재조명하는 타임캡슐이 숨겨져 있다.

목간을 통해 밝혀진 고려 시대 선박의 절대연대 ‘1208년’

태안 마도 해저유적은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 일대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화물선, 사신선, 조운선, 국제무역선 등 모든 선박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하지만 해역환경은 서해로 돌출되어 안개 및 풍랑이 잦았고, 복잡한 해저지형으로 조류가 빠르고 암초가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운하를 파서 안전한 뱃길을 확보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편안한 길목’이라는 뜻의 안흥량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안흥정을 설치해 뱃길의 통행을 돌보거나 휴식처로 삼기도 했지만 선박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이는 역으로 수중문화재 발굴의 보고가 되었다.

발굴은 2009년부터 연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마도1·2·3·4호선 등을 잇달아 발굴했다. 마도1~3호선은 모두 고려 시대 곡물과 도자기 등을 운반한 화물선이다. 마도4호선은 조선 시대 조운선이다. 이외에도 중국과 교류를 알 수 있는 도자기와 닻돌 등 유물이 다양하다. 이는 태안 마도 해역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역의 중요 거점이라는 증거이다.

특히 2009년 발굴한 마도1호선은 목간의 판독 결과 나주, 해남, 장흥에서 생산된 곡물과 도자기 등을 싣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목적지로 향하던 선박임이 밝혀졌다. 유물은 곡물류, 젓갈류, 도자기, 목간 등이다. 연대는 목간에 기록된 ‘무진(戊辰)’년간과 ‘대당군김순영(大將軍金純永)’ 등을 종합하여 1208년(희종 3년)으로 밝혀졌다. 1208년 13세기 초에 화물선이 고려 시대 각 지방에서 공물을 선적하여 개경의 무인 실력자들에게 운반한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1208년은 우리나라 고려 시대 목간으로 해양유물에서 절대연대가 확인된 최초의 자료이며, 선박의 나이를 밝혔다. 이외에도 목간은 수취관계, 수량, 도량형 등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었다.

목간을 통해 밝혀진 고려 시대 선박의 절대연대 ‘12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 시작된 ‘1976년’

신안군 증도는 전남 목포에서 서북쪽으로 약 40㎞ 거리에 있는 섬이다. 이곳에서 중국 청자가 확인된 것은 1975년 8월이었다. 증도면 방축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최평호 씨의 그물에 청자화병을 비롯해 중국 청자 등 6점이 걸려 나온 것이다. 최 씨의 동생이 이를 신안군청에 신고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이것이 송원시대의 중국 도자기임을 확인했다. 1976년 9월에는 도굴꾼들이 잠수부를 고용하여 청자화병 등을 몰래 팔려다 검거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몇 차례 도굴 사건이 이어지면서 조사를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수중 발굴 경험을 가진 이가 없었고, 더구나 해저에서 유물을 인양할 수 있는 도구나 장비가 없어 해군의 협조를 받아 1976년 최초 제1차 수중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

이후 1984년까지 9년간 모두 10차례에 걸친 장기간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동원된 잠수사가 연 9,896명, 연 잠수시간 3,474시간으로, 시야가 좋지 않고 조류가 빠른 열악한 조건 아래서 해군 해난구조대 역사상 최장기간 투입된 지원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 시작된 ‘1976년’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굴된 고선박 ‘14척’

해역에서 발굴된 난파선은 총 14척이다. 우리나라의 난파선은 통일신라 시대 1척, 고려 시대 10척, 조선 시대 1척 등 12척이다. 이외에 중국 난파선이 2척이다. 이를 합하면 14척이다. 발굴된 선박들은 대개 화물을 싣고 가거나 회항하는 과정에서 침몰하였다.

발굴된 난파선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선박 발달 과정과 구조를 연구하는 실증자료이다. 또한 실려 있는 유물들은 주로 도자기, 목간, 곡물, 금속품, 석제품, 젓갈 등 다양하다. 이를 통해 해양 실크로드와 조운로(뱃길)로 운송된 공납 체계 등 해양문화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굴된 고선박 ‘14척’

고려 시대 한 척의 난파선에서 발굴된 최대 수량 ‘30,701점’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난파선 가운데 가장 많은 유물을 싣고 있던 배는 완도선이다. 어부가 어로작업 중에 도자기를 몇 점 건져 올려 신고하였고 이에 1983~1984년 2회에 걸쳐 수중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고려 시대 선박임이 밝혀졌다. 선박은 12세기 초의 고려 시대 선박으로 도자기 등 유물을 싣고 가다가 침몰하였다. 유물이 매장된 지점은 암초가 형성되어 밀물 때는 물속에 잠긴다. 썰물 때는 윗 부분만 약간 드러나기 때문에 항해하기에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갯벌 속에 묻힌 유물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았지만, 배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선체의 인양은 해체 방식으로 하였다. 선박은 약 10톤 규모로 평저선(平底船, 배 밑이 평평한 형태)이었으며 발굴된 유물은 도자기를 비롯해 30,701점이었다. 유물은 고려청자 30,645점, 잡유도기 26점, 토제품 2점, 철제품 18점, 목제품 9점, 석제품 1점 등이다. 청자는 녹청자류로 지방관청과 사찰 등에 납품하던 제품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한 척의 난파선에서 발굴된 최대 수량 ‘30,701점’

 

글‧김병근(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일러스트‧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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