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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선생
작성일
2007-08-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000

오랜 꿈이자,
숙원 사업인 ‘한국 전통 무용음악’을 집대성하다

한 번 그 이름을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이름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당대 최고의 대금 연주가인 죽향竹鄕 이생강 선생은 대금 산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반주 악기로만 취급되던 대금을 독주 악기 반열에 올려 놓았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음반과 연주회를 통해 대금 보급에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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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전통 무용을 반주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생강 선생은 최근, 한국 전통 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라는 전집 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이 전집은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장고춤, 살풀이, 승무, 검무, 탈춤, 무당춤, 농악 등에 사용되어 온 전통 무용음악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가 20여 년 동안 간직해 온 꿈이자, 숙원 사업이었던 ‘전통 무용음악 집대성 음반’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춤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음악에서는 동작이 보이지 않죠. 동작을 보이게끔 돕는 것이 음악이고, 소리를 들리게끔 하는 것이 무용입니다. 따라서 무용과 음악은 처음부터 둘이 아닌 하나로 묶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미 80년대부터 우리의 전통 무용음악 100년사를 음반으로 정리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곳곳에 흩어진 전통 무용음악을 하나로 엮어 내어 이를 무대 공연과 연구 활동 등에 실용적으로 쓸 수 있게 CD에 담아낸 것입니다.”
이번 첫 음반 출시를 계기로, 1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무용음악의 흐름을 한 눈에 쉽게 구별할 수 있으며 일관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춤꾼들이 공연을 할 때 악사를 동원하려면 많은 제작비가 필요한데, 이번 음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본다.”면서, “무용인들이 자신의 공연에 맞게 부분별로 편집해 사용할 수 있으며 활용하는 계층도 유치원생부터 초중고생, 대학생,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오랜 숙원 사업인,
한국의 전통 무용음악을 CD로 집대성
 hspace=0 src=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전통 춤을 음악으로 망라한 작업은, 최근에 만든 창작무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전통 무용음악의 ‘백과사전’인셈이다. 연주 시간만 50여 시간에 이르는 이 방대한 작업은 2004년부터 3년에 걸쳐 악사 20여 명과 함께 틈틈이 녹음했다. 그는 기획부터 자료 수집, 작곡·편곡, 연주자 선정, 지휘, 연주, 제작까지 사실상 1인 다역을 맡아 이를 모두 총괄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400장 분량으로 기획된 전집의 1차분(CD 50장)으로, 향후 350장이 일곱 차례에 걸쳐 발매될 예정이다.
“이제 처음 50장이 나왔을 뿐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불어 왔던 우리 음악을 총 400여 장 분량으로 모두 담을 생각입니다.”
그는 이 작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는 “왕을 위한 궁중음악이 아닌, 민초들의 애환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민속악을 중시하는 풍조를 저변으로 확대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먼저 민속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남은 목표
“판소리가 됐든, 민요가 됐든 한국의 전통 공연은 음악과 무용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입니다. 남녀와 음양이 조화롭게 병존하는 세상과 삶의 이치가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해 1947년에 전북 전주에서 한주환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대금을 배우면서부터 이런 조화와 균형을 알게 됐습니다. 춤이 있는 곳에 음악이 있고, 음악이 있는 곳에 춤이 있는 것이지요.”
10살 때 대금을 불기 시작했으니 그의 대금 인생은 올해 꼭 60주년이 되었다. ‘생강’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날 생生에 굳셀 강剛을 써서 지은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그에게, 아버지는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만큼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갖고 타국에서 더욱 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작 그는 어릴 때부터 이름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보고 웃는 것 같으면, 오히려 동생 이름은 ‘마늘’이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단다.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기에 오히려 즐거울 뿐이라며….

이생강 선생은 현재 서울국악예술고교와 중앙대 국악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이수자와 전수자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깊이 있는 예술의 세계를 전수하고 있다. 또한 제자 양성과 함께 공연 활동, 음악 강연, 악기  hspace=3 src=감수, 음반 작업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남은 여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하나의 소망을 내비쳤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우리의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교육되어 전수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이에 합당한 교육기관이 아직 없는 실정이다.
그는 “서울 인근에 아담한 규모의 대학을 세워 기악과 판소리, 민요, 전통춤, 농악 등 5개 과를 설치해 후손들에게 체계적으로 민속악을 전수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금, 피리, 소금, 단소, 퉁소 등 관악기의 명인으로
한 평생을 바쳐온 우리 시대의 거장,
이생강 선생.
그의 오랜 바람대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음악이 후세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길 빌어 본다.

▷ 글 : 허주희
▷ 사진 :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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