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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멈출 줄 몰랐던 베틀 곁에 아낙들이 산다
작성일
2017-07-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182

멈출 줄 몰랐던 베틀 곁에 아낙들이 산다 - 김홍도의 <길쌈>과 <자리짜기>, 유운홍의 <길쌈> 귀한 가문이 아니고서야 과거 모든 아낙은 옷감을 짜느라 밤잠을 아껴야 했다. 길쌈은 평생 벗어나기 힘든 노동 중 하나였던 셈이다. 실을 뽑아내기 위해 새벽까지 꼬박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만 했던 여인들의 풍경. 그 안에는 평범하면서도 고단했던 인생의 단면이 그려져 있다. 쉼 없는 노동의 끝에 희망이 있음을 놓치지 않은 작품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김홍도, <길쌈>, 지본담채, 27×22.7cm, ⓒ국립중앙박물관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와도 같았던 길쌈

김홍도(金弘道, 1745~?)의 <길쌈>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는 베매기 하는 장면을, 아래에는 베짜기를 그렸다. 한 화면에 길쌈의 마지막 두 공정을 순서대로 그렸는데 베매기하는 여인은 뒷면을, 베 짜는 여인은 앞면을 그려 변화를 주었다. 위쪽 여인은 아래쪽 여인보다 작게 그려 원근감을 강조했다. <길쌈>은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들어있는 25점 중 한 작품이다. 이 풍속화첩에 들어있는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배경을 생략하고 주제만 두드러지게 그렸다. 현장을 얼마나 충실하게 그렸던지 그림만으로도 실제 길쌈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위에 보이는 베매기는 바디의 구멍에 날실을 끼워 풀을 먹이면서 도투마리에 거는 과정을 말한다. 오른쪽 끌개에 묵직한 돌멩이를 올려놓아 끄싱개에 날실을 걸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아낙은 베매기솔에 풀을 묻혀 날실에 풀을 먹이고 있다. 날실이 팽팽해지도록 조절하는 바디는 그녀의 왼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날실 아래에는 베매기한 실이 잘 마르도록 뱃불을 피워놓았으며 옆에는 좁쌀풀에 된장을 섞은 대야가 놓여 있다. 날실 풀기-풀칠-건조-도투마리감기-날실풀기로 반복되는 베매기는 길쌈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공정이다. 베매기가 끝나면 도투마리는 아래쪽에 앉은 여인의 베틀로 옮겨질 것이다.

위쪽 여인이 가져온 도투마리를 베틀에 걸고 씨실을 다져가며 베를 짠다. 북을 좌우로 옮길때마다 바디소리가 철거덕거린다. 시어머니는 손주를 엎고 서서 베 짜는 며느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앉았던 곳일 텐데 이제는 며느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저녁밥을 먹은 지 오래된 큰 손주는 할머니 허리띠를 잡고 칭얼거린다. 아무리 칭얼거려도 엄마는 베짜기를 마칠 때까지 절대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끝도 없는 살림살이에 지쳤을 여인들. 온종일 밭일로 허리 한번 못 펴고 돌아와 절구질에, 저녁밥까지 차리고 나면 베틀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베짜기는 새벽닭이 울고 먼동이 틀 때까지 계속해도 한 필을 짜기가 힘들었다. 베 한 필이 나오기까지는 모두 11가지 공정을 거쳐야 한다. 힘들다 해서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01_유운홍, <길쌈>, 지본담채, 92×40cm, ⓒ국립중앙박물관 02_김홍도, <자리짜기>, 지본담채, 27×22.7cm, ⓒ국립중앙박물관

백성의 고충을 담아내기 위해 그린 경직도

소재는 같지만, 김홍도의 작품보다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배경을 강조한 유운홍(劉運弘, 1797~1859)의 <길쌈>은 또 다른 풍경이다. 계절은 초가을인 듯 초가지붕 위에 여문 박이 걸려 있고 집 주위의 나뭇잎이 붉게 물들었다. 마루에서 베짜기를 하는 사람 곁에는 무릎에 실을 올려놓고 비벼 삼삼기를 하는 여인도 보인다. 치마를 걷고 맨살에 실을 비비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렸다. 마당에는 세 여인이 베매기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맨발로 왔다갔다 하며 도투마리 하는 엄마 곁을 어린아이가 졸졸 따라다니는데 이는 길쌈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기둥 옆에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같이하는 일은 삼째기인지 삼껍질 벗기기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밖에도 유운홍의 <길쌈>에는 삼삼기를 하는 여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얘기를 하는 여인과 집 뒤에 서 있는 모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길쌈은 경직도(耕織圖)의 유행과 함께 여러 작가에 의해 그려졌다. 경직도는 농사와 관련된 경작도(耕作圖)와 누에치고 길쌈하는 모습을 그린 잠직도(蠶織圖)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이후 진재해(秦再奚, 1691~1769)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숙종어제잠직도(肅宗御題耕織圖)」를 비롯해 병풍 형식의 경직도가 여러 폭 전해진다. 경직도가 많이 그려진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에게 백성의 고충을 잊지 않게 하려는 감계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구중궁궐에 갇힌 임금이 백성들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으로나마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길쌈을 하는 여인네들의 심신을 더욱 지치게 만든 때가 있었다. 길쌈에 가해진 수탈 때문이었다. 군역 대신 내게 된 군포(軍布)처럼 직물이 화폐가 되면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괴로움은 심각했다. 조선 재정의 주 수입원이었던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의 삼정(三政)이 문란해졌다. 군정은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매기는 백골징포(白骨徵布)와 어린아이에게도 군포를 받아가는 황구첨정(黃口簽丁)처럼 착취의 중심에 있었다. 몸의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진 가혹한 시절이었다.


씨실과 날실 사이에 인생의 행복을 엮다

<길쌈>과는 달리 <자리짜기>는 가족의 희망을 담은 작품이다. 김홍도의 <자리짜기> 역시 《풍속화첩》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자리틀에 고드랫돌을 걸어놓고 자리를 짜고 있다. 앞엣것은 뒤로 넘기고 뒤엣것은 앞으로 넘기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아버지는 말이 없다. 몰락한 양반 신분으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 때문이다. 말이 없기는 물레를 돌리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말이 없는 이유가 꼭 일 때문만은 아니다. 아들이 막대기로 한자씩 짚어가며 큰 소리로 읽는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세가지 소리(三喜聲)는 갓난 아이의 우는 소리, 다듬이 소리, 그리고 글 읽는 소리라고 했던가. 부부에게 현실은 비록 고달프지만 글 읽는 아이가 있어 행복하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길쌈의 풍경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대는 흐르고 환경은 바뀌었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 또한 <길쌈>과 <자리짜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고, 결혼해서 부모가 되고 싶어도 살 집이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림 속 인물들은 어떻게 보일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글‧조정육(미술평론가) 그림‧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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