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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검정의 세계, 동굴 속 생물들
작성일
2023-07-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90

검정의 세계, 동굴 속 생물들 동굴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다. 그 속에는 어둠에 적응한 채 터를 잡고 살아가는 특이한 생물들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종류와 특성에 대해 모두 알지 못한다. 01.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제주도 용암동굴, 만장굴의 제3입구. 만장굴은 공개동굴이지만, 일부 구간은 동굴 보존을 위하여 비공개하고 있는데 비공개구간의 입구 중 하나가 제3입구이다. ©장규동

적응의 왕, 절지동물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보자. 아마 불을 끈 직후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점차 천장을 비롯해 주변의 물체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동굴처럼 빛이 없는 곳에 수만 년을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 인종마다 다른 멜라닌 색소의 차이와 고산지대의 산소 부족에도 끄떡없이 생활을 지속하는 현지인들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굴에서 오랜 시간 어둠에 파묻혀 지낸다면 이에 걸맞은 신체적 변화가 생겨날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지지 못한 특수한 신체 기관들이 생겨나거나 신체적 변화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 세대가 100년에 가깝고 생식을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곤충을 포함한 노래기, 거미, 톡토기 등과 같은 절지동물들은 어떨까? 이들 또한 동굴 속에서 적응하여 살기 위해선 인간과 같은 시간이 필요할까? 절지동물들은 인간과 다르게 한 세대가 짧고 한 번에 많은 개체를 번식할 수 있다(<사진 2> 참조). 이러한 절지동물의 특성은 지구 어디에서든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그들을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으며, 현재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이들을 가장 번성한 그룹이 되는 데 기여했다. 이렇듯 이들의 강인한 적응력은 어두운 동굴 안에서도 빛을 발한다.


02.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바람굴의 암대에 대량으로 발생한 등줄굴노래기 무리. 등줄굴노래기는 1938년 독일 학자에 의해 기록된 한국 최초의 동굴생물이다. ©김재원(양평곤충박물관) 03.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장암굴의 암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박쥐의 배설물 주변에 모여든 톡토기 무리들. 톡토기는 곤충과 근연관계에 있는 절지동물의 일종이다. ©김재원(양평곤충박물관) 04.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광천선굴의 암대 휴석소에 고여 있는 지하수에서 살아가는 동굴성 옆새우. 몸 색깔이 희고 눈을 가지지 않는 진동굴성 생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김재원(양평곤충박물관)

어둠 속에서 동굴생물들이 살아남는 법

인간의 눈으로 동굴 속을 둘러보면 동굴은 먹을 것 하나 없는 척박하고 어두운 외계 행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굴에서 살아가는 절지동물들의 눈에는 사방팔방 먹을 것과 자원으로 가득하다. 박쥐의 똥인 구아노를 비롯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현미경적 미세유기물까지 모두 이들에게는 다양한 자원이 되어준다(<사진 3> 참조). 우연히 동물의 사체라도 동굴 속으로 흘러들면 그날은 축제가 벌어진다. 이렇듯 동굴생물들은 본인의 생태적 지위에 맞게 동굴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식을 선택하여 살아간다.


동굴에서 살아가는 절지동물들은 몸에 색소가 없고 눈이 없는 경우가 많다(<사진 4> 참조). 이는 모두 일리가 있는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강한 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색소와 빛이 있어야 작동하는 섬세한 신체 기관인 눈은 미세한 빛줄기도 허용되지 않는 완전히 차단된 검정의 세계인 동굴 안에서는 사치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깊은 어둠 속에서 동굴성 절지동물들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진동 등을 느낄 수 있는 털이나 감각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 미세 동굴

우리나라의 동굴은 온도의 변화와 빛의 유무에 따라 4가지 생태학적 구역인 입구부, 박명부, 두 가지 암대인 변온암대, 항온암대로 구분된다. 동굴에 가장 잘 적응하여 눈과 색소가 없는 생물들을 진동굴성 생물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생물들은 빛이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인 암대에서 관찰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간혹 빛이 많이 드는 박명부나 드물게 입구부에서도 관찰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재청에서는 동굴을 ‘지하 암체 내에서 천연으로 만들어진 공동으로 적어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내린 정의이다. 곤충이나 작은 생명체들의 시선에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뿐 아니라 작은 돌과 돌이 얽혀 만들어 내는 빈틈이나 낙엽과 흙이 만들어 내는 작은 공간들 역시 동굴이 된다. 즉, 입구에 돌들이 얼기설기 깔려있고 흙이나 낙엽이 그 위를 덮고 있는 환경들은 그들에게 모두 ‘미세 동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굴의 박명부나 입구부에서도 진동굴성 생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글, 사진. 장규동(국립농업과학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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