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국내 유일의 탐사형 석회암동굴 평창 백룡동굴
- 작성일
- 2023-07-31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531
백룡동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사연
백룡동굴은 동강 물길에 의해 거의 수직으로 깎여나간 석회암 절벽의 아래쪽에 형성돼 있다. 동굴의 해발고도는 235m이지만, 입구의 높이는 동강 수면으로부터 10~15m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동서방향의 수평굴 형태인 이 동굴은 1개의 주굴과 3개의 가지굴로 구성돼 있다. 주굴인 A굴의 길이는 785m, B굴(85m)·C굴(605m)·D굴(300m)을 합한 길이는 1,090m이다. 백룡동굴의 전체 길이는 1,875m인 셈이다. 그중 A굴만 개방됐고, 세 개의 가지굴은 모두 완벽한 보존을 위해 입구가 폐쇄됐다.
백룡동굴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근 주민들의 피난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동굴 초입에는 방바닥처럼 평평하게 다듬어진 자리와 구들장, 아궁이, 굴뚝 등의 흔적과 함께 토기 몇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구들장 내부 숯의 연대를 측정해보니 대략 18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동안 잊혔던 백룡동굴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76년이었다. 정무룡 씨 형제를 포함한 동네 청년들이 백운산(883.5m) 절벽 아래의 백룡동굴에 들어갔다가 입구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지점의 작은 구멍을 통해 찬바람이 나오고 소리도 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청년들이 구멍을 넓혀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까지 이름조차 없었던 이 동굴은 백운산의 ‘백’ 자와 정무룡 씨 형제의 돌림자인 ‘룡’ 자를 따서 ‘백룡동굴’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1976년 4월부터 1977년 6월까지는 백룡동굴에 대한 동굴 전문가들의 대대적인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5억 년의 역사를 이어 온 이 동굴 내부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을 비롯한 2차 생성물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문가들로부터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동굴로 평가된 백룡동굴은 1979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1996년에 발표된 동강댐 건설 계획으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2000년에 동강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백룡동굴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평창군은 2008년부터 백룡동굴 개발사업을 추진해 2010년 7월부터 일반인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의복과 장비를 갖추고 탐사해야 하는 백룡동굴
백룡동굴에 들어가려면 문희마을의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매표소에서 입장권부터 구입해야 한다. 1회에 20명씩, 하루 11회에 걸쳐 최대 220명만 백룡동굴에 입장할 수 있다.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으므로 주말이나 휴일, 성수기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하고 찾아가는 것이 좋다. 백룡동굴을 둘러보는 일은 편안한 관광이나 탐방이 아니다. 오히려 험난한 탐사에 가깝다. 동굴 안에 들어서면 수시로 낮은 포복이나 게걸음과 오리걸음을 반복하게 된다. 탐방로 곳곳의 높이가 아주 낮거나 바닥에 흙탕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공개동굴과는 달리, 백룡동굴 내부에는 인공 구조물도 거의 없다. 딱 한 곳에 설치된 짧은 철제 계단, 몇 군데의 바닥에 깔린 고무매트와 철제 발판이 전부다. 그래서 이 동굴에 들어가려면 백룡동굴 생태체험장에서 무상으로 빌려주는 의복과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모든탐방객은 우주복 형태의 탐사복에 장갑과 장화, 랜턴이 부착된 안전모를 빠짐없이 착용한 뒤에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또한 관리기관인 문화재청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동굴 안으로 휴대폰이나 카메라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매표소 근처의 선착장에서 백룡동굴 입구까지 약 300m 거리는 배를 타고 이동한다. 동굴 개방 초기에는 백운산 절벽에 설치된 데크로드를 통해 걸어서 이동했다. 하지만 이 데크로드는 낙석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얼마 이용되지 못한 채 폐쇄됐다. 우리나라의 천연 석회암동굴 내부는 대체로 섭씨 11~13.5도의 온도, 70~100%의 습도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피서지, 겨울철에는 피한지로 안성맞춤이다. 아무리 푹푹 찌는 삼복염천이라도 백룡동굴 안에 머무는 1시간 30분 동안은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을 만큼 시원하다.
개구멍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별천지
백룡동굴 탐방은 개인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사와 함께해야 한다. 인근 마을의 주민이기도 한 해설사는 다양한 동굴 생성물에 대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준다. 난코스 구간을 원활하게 통과하는 방법도 일러주고, 탐방객들이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통제하는 일도 해설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두어 군데의 독특한 생성물을 배경으로 탐방객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백룡동굴 입구의 철문을 지나 속칭 ‘개구멍’ 앞에 도착하기까지 약 200m 구간에는 인위적인 훼손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부러지거나 잘려진 종유석과 석순도 적지 않고, 심지어 횃불에 검게 그을린 자국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낮은 포복으로 개구멍을 간신히 통과해 만나는 백룡동굴의 지하 세계는 더욱 깨끗하고 화려하다. 억겁의 세월 동안 자연이 만든 종유석, 유석, 종유관, 석순, 석주, 종유커튼, 베이컨시트, 동굴진주, 동굴산호, 동굴방패, 곡석, 석화 등의 2차 생성물이 눈길 닿는 곳곳에 형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종유석 윗부분이 방패 모양으로 잘려 나간 동굴방패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2차 생성물이다. 탐방객마다 “우와~”하는 탄성이 쉼 없이 터져 나온다. 완벽한 계란프라이 모양의 ‘에그프라이’형 석순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호를 위한 조처로 탐방코스에서 벗어나 있어 관찰하기 어렵다.
1997년에는 백룡동굴과 관련된 뉴스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적도 있다. 사전 허가도 받지 않고 이곳에 들어온 지역 기관장 일행이 남근 모양의 희귀한 .종유석을 불법 채취해 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회수된 종유석은 한 치과의사가 임플란트 시술용 약품을 사용해 제자리에 다시 붙여 놨다.
백룡동굴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막장’으로도 불리는 광장에서의 ‘절대암흑’ 체험이다. 모든 불빛이 꺼진 뒤에 눈을 감으나 뜨나 전혀 차이가 없는 절대암흑 속에서 수십 초 동안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인데도 공포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의외로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진다. 그래서인지 탐방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광장에서 되돌아 나올 때의 마음과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상쾌하다.
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