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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처님 속에 담은 극락왕생의 염원, <수구다라니>
작성일
2023-07-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52

부처님 속에 담은 극락왕생의 염원, <수구다라니> 보물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자운사 대웅전에는 고려시대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 속에는 금강경, 법화경, 다라니, 불상 중수 기록, 옷 장식품, 작은 경전을 넣은 목갑, 청동 방울, 목함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유물들은 조사 시세 차례에 걸쳐서 조심스럽게 꺼내졌다. 유물들의 제작 연대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로 그 폭이 상당히 넓었으며, 재질과 형태도 매우 다양했다. 이러한 복장유물을 하나씩 상세히 들여다보면 불상의 숨은 세월, 시대에 따른 신앙의 형태와 의미 등을 엿볼 수 있다.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수구다라니>를 통해 우리나라의 수구다라니 신앙과 불상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00.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고려, 높이 87cm 어깨너비 38cm, 광주 자운사,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극락왕생의 염원을 담은 수구다라니

일반적으로 불상 안에서 복장유물을 수습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은 다라니이다. 원래 다라니는 우리가 흔히 아는 ‘옴마니반메훔’이나 ‘수리수리 마수리’처럼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외우는 불교 주문을 말한다. 이러한 다라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노랫가락처럼 입으로 외우는 것도 있고, 다라니 구절을 종이에 적어서 부착하거나 돌에 새기는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로 만드는 것도 있다. 사람들은 물질로 만들어진 다라니를 호신용으로 소지하거나 무덤에 묻었으며, 불상이나 탑 내부와 같은 성스러운 장소에 넣어 두기도 했다.


수구다라니는 물질이 된 다라니 중 하나이다. 수구다라니 경전에 따르면 수구다라니를 만드는 방법은 비단이나 종이에 다라니 주문을 비롯하여 불교의 신, 꽃이 꽂힌 리본 달린 병, 나팔 등을 그리는 것이다. 이 수구다라니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지은 죄가 사라지며, 죽어서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구다라니의 기원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수구다라니의 신앙 기록과 유물이 나온 바 있어,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까지 그 시기로 특정할 수 있는 유물은 아직 없다. 제작 시기가 확실한 것 중 가장 이른 것이 바로 1184년, 지금의 충주에서 만들어진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나온 <수구다라니>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수구다라니가 우리나라보다 더 앞선 당나라(618~907) 초기부터 만들어졌다. 중국 당대(唐代) 수구다라니는 앞에서 살펴본 경전의 제작 방법과 유사하다. 중앙에 그림을 그리고, 그 주위에 다라니를 서사하고, 가장자리에 밀교 법구를 그린 형태이다. 이러한 당대의 수구다라니는 주로 무덤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쓰촨성[四川省]의 무덤에서 발견된 수구다라니가 있다.


수구다라니는 시신이 착용한 팔찌 속에 돌돌 말린 채 들어 있었다. 아마도 장례를 치른 사람들이 수구다라니를 지니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효험을 잘 알고 죽은 자에게 수구다라니가 들어 있는 팔찌를 착용시켰을 것이다. 다른 당대 무덤에서도 목걸이나 팔찌 등의 장신구에서 수구다라니가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장례 풍습에 수구다라니를 넣는 행위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01.수구다라니, 1184년 조판(彫版), 종이에 목판인쇄, 34.5x33.5, 순천 송광사성보박물관 보관,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고려시대 수구다라니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유물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수구다라니>는 불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오랜 연대가 나와 있는 유물이다. 다라니의 세부 모습을 살펴보면, 위쪽에 ‘如意寶印大隨求陁羅尼梵字軍陁羅相(여의보인대수구다라니범자군다라상)’이라는 다라니의 이름이 있다. 왼쪽 아래 사각 구획 안에는 ‘大定二十四年甲辰(대정이십사년갑신)’이라는 연대가 있는데, 이는 1184년을 가리킨다. 중앙의 도상은 연화 대좌 위에 둥근 다라니가 올라간 모습이다. 다라니의 구성은 삼중 원형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는 보관을 쓰고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보살이 연꽃 위에 왼쪽 무릎을 올린 채 꿇고 앉아 있다. 보살은 왼손에 둥근 형태의 물건을 들고 있다. 옷자락은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다. 


이 보살을 중심으로 범자 다라니가 펼쳐진다. 총 21줄의 나선형 다라니는 보살의 왼손 부근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간다. 그리고 맨 가장자리에 연꽃 위에 올려진 33개의 밀교 법구와 보살 좌상 등이 배열되어 있다. 이 <수구다라니>는 1184년이라는 판각 연대가 찍혀 있어 고려시대 수구다라니의 기준 작품이 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유일하게 연대, 제작 장소, 목적 드러나 있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는 수구다라니가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구다라니는 주로 불상에서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외에도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개심사 목조아미타불좌상>, <개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 발견된 수구다라니들이 그런 사례이다. 그중 자운사 <수구다라니>는 다른 수구다라니와 구별되는 도상이 조화되어 고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한가운데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한쪽 다리를 꿇고 앉은 보살상과 범자 다라니, 밀교 법구들,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으로 화려하게 꾸민 연화 대좌의 조화를 보이는 수구다라니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 어디에서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이다.


그렇다면 자운사 <수구다라니>를 불상에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불상 안의 다라니는 불상 안의 물건들을 보호하는 충전재 역할로 주로 언급되었다. 그런데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 수십 장씩 넣어진 다른 종류의 다라니에 비해 <수구다라니>는 오직 한 장만 넣어졌고, 유일하게 연대와 제작 장소가 적혀 있다. 게다가 ‘法界亡者往淨土之願(법계망자왕정토지원)’이라는 망자가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제작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아마도 수구다라니를 불상 속에 넣은 자는 극락왕생에 효험이 있는 수구다라니를 만들어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염원을 그 속에 담고, 그 염원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살아생전 빌고 의지했던 부처님 안에 넣은 것은 아닐까?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간절한 염원을 자운사 <수구다라니>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 김보민(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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