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처음 물리친 역사현장 정읍 황토현 전적
- 작성일
- 2023-06-01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414
동학농민군의 황토현 전투 승리와 그 전후 이야기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은 1,000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관아를 습격했다. 무고하게 옥에 갇힌 농민들을 풀어주고 강탈당한 곡식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줬다. 농민들의 분노와 원성의 대상이었던 만석보도 무너뜨렸다. 탐관오리 조병갑은 부리나케 도주했고, 새로 부임한 고부군수 박원명은 폐단의 시정을 약속하며 농민들의 해산을 종용했다.
고부군수의 약속을 믿고 농민들은 해산했지만, 안핵사 이용태는 고부 농민봉기에 가담한 농민을 색출한다며 무고한 농민을 잡아들이거나 재산을 빼앗는가 하면 부녀자들을 능욕했다. 전봉준은 무장(전북 고창군 무장면)으로 이동해 무장접주 손화중과 태인접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과 합세했다. 그들은 3월 20일에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자”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걸고 본격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이 ‘무장기포’는 지역 민란이 전국적인 농민혁명으로 확산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무장에서 기포한 뒤 고부관아를 점령한 농민군은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전라도 여러 고을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백산(전북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머물렀다. 하얀 무명옷을 입은 농민군들이 손에 죽창을 든 모습에서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곳에서 농민군은 전봉준을 총대장, 손화중과 김개남을 총관령으로 추대했다. 총사령부 격인 호남창의대장소를 설치하고, 4대 명의 및 12대 기율과 백성들의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동학농민군이 백산에 모였다는 소식을 접한 전라감사 김문현은 전라감영의 관군과 보부상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급히 출동시켰다. 이 일대의 지형에 익숙한 농민군들은 관군들을 황토현으로 유인했다. 4월 6일 관군들은 황토현 부근에, 농민군들은 맞은편의 사시봉에 진을 치고 대치했다.
관군의 야간 기습을 예상한 전봉준은 농민군의 진지에 허수아비를 세우거나 나뭇가지에 흰 옷가지를 걸쳐 위장하고 농민군들을 주변에 매복시켰다. 4월 7일(양력 5월 11일) 새벽, 전봉준의 예상대로 관군이 농민군의 텅 빈 진지를 기습하자 매복한 농민군이 일제히 나타나 역습을 가했다. 농민군은 우왕좌왕하며 달아나는 관군의 뒤를 쫓아 관군 진지까지 대파했다.
그날 파죽지세로 정읍까지 점령한 동학농민군들은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나주 등을 잇달아 점령하고 장성으로 향했다. 한편,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중앙군(경군)은 전라감영군이 황토현에서 대패한 4월 7일에 군산을 거쳐 전주에 도착했다. 농민군을 뒤쫓아 온 홍계훈 부대는 4월 23일 장성 황룡강에서 동학군을 급습했지만 장태를 방탄도구로 활용한 농민군에게 참패했다. 이후 전주로 진격을 시작한 농민군들은 마침내 4월 27일 전주성에 입성하기에 이른다.
선을 압도하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 조각상
황토재’로도 불리는 황토현은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나직하게 솟은 고개이다. 정상 높이가 해발 35m에 불과해서 고개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고갯마루에는 1963년에 건립된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 주변의 석판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장수 울고 간다’는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에 무심코 불렀던 노래가 여기서는 진한 울림을 안겨준다. 기념탑 아래의 비탈에는 동학농민군들의 위패를 모신 구민사, 새롭게 조성된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상’, 전봉준 장군의 영정이 봉안된 제민당, 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광장에 새로 들어선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상이다. ‘불멸-바람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이 대형 조각상은 2022년 6월 25일에 완공됐다. 한가운데에는 결연한 표정의 전봉준 장군이 갓을 벗어 오른손에 움켜쥔 채로 앞장서 나가고, 그 뒤에는 다양한 계층의 동학농민군 10여 명이 따른다. 사람 ‘인(人)’ 자 형상으로 좌우에 배치된 화강암 벽의 ‘1·2차 봉기 행군상’에는 무려 600여 명의 농민군을 대단히 사실적인 기법의 부조와 투조로 표현했다.
원래 이곳에는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전봉준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김경승의 친일행위가 밝혀지면서 1987년에 세워진 그의 작품에 대한 철거 요구가 빗발쳐 결국 2021년 9월에 철거됐다. 새 조각상은 조각가 임영선의 작품인데, 전국 635개 단체와 5,149명이 기탁한 성금 2억 2,571만 원을 포함해 총 13억 7,984만 원이 투입돼 만들어졌다고 한다.
새롭게 조성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생생한 역사 체험
1981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정읍 황토현 전적’의 면적은 16만 4,658㎡(4만 9,809평)에 이른다. 황토현과 사시봉 일대의 넓은 들과 구릉에 걸쳐 있는 황토현 전적에는 지난해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인 5월 11일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기존의 동학혁명기념관 이외에도 황토색 건물의 동학농민혁명박물관(전시관 및 추모관), 상징조형물인 ‘죽창결의’,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한 ‘농민의 벽’, ‘울림의 기둥’과 ‘기억의 들판’, 사발통문광장, 녹두장군캠핑장 등의 새로운 조형물과 편의시설, 추모공간 등이 조성됐다.
오래전에 문을 연 동학혁명기념관에는 동학농민혁명의 모든 사건과 역사를 정리한 문서와 유물, 시청각 자료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당시 농민군이 사용한 화승총과 장태 등과 옛 모습을 그대로 되살린 복장이나 농민군 인형 등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에 문을 연 동학농민혁명박물관은 크게 추모관과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영상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화승총을 든 동학군과 최신식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사용한 일본군의 비교 영상을 시청할 때는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나서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자료와 전시물들이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 현재진행 중인 것처럼 실감나게 다가온다.
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