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日 반출 문화재를 수집해 기증한 김용두 선생
작성일
2018-08-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070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日 반출문화재를 수집해 기증한 김용두 선생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개관 이래 현재까지 50여명의 기증자로부터 3,000여 점의 문화재를 기증받았다. 기증 문화재는 박물관의 보다 다양한 전시와 문화재 조사·연구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한 재일교포가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평생 모은 귀중한 문화재를 기증함으로써 박물관 소장품의 양과 질을 한층 높여주었다.

자수성가한 재일교포의 문화재 수집

두암 김용두 선생(1922~2003)은 1922년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수탈 정책으로 집과 땅을 빼앗긴 그는 8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제2차 세계대전 중 동남아시아 지역 전쟁터에 징용으로 끌려가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하였던 경제상황 속에서 그는 고철 수집 사업을 시작으로 1950년대부터 천리개발주식회사(千里開發株式會社)를 설립·운영하면서 자수성가하였다. 선생은 사업 성공 후 경제력이 생기자 1960년경부터 일본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은 한 골동품 가게에 전시된 조선 백자 한 점 앞에서 큰 감동에 빠져들었다. 선생은 그 강렬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것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졌던 형제를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기쁨이었고 한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선생은 일본에 유출된 고국의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이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향수를 달래기 위해 한 일이기도 하였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뜻깊은 기증

김용두 선생은 1986년 수집한 문화재로 일본 나라시(奈良市)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에서 <사천자(泗川子) 소장품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국내 학계 및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선생이 그동안 수집한 문화재가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3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도록을 발간하고, 1994년 <김용두 옹 수집문화재 귀향특별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개최하였다.

이를 계기로 선생은 혼란한 시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고귀한 뜻을 담아 고향인 사천과 가까운 국립진주박물관에 세 차례(1997년, 2000년, 2001년)에 걸쳐 총 190점의 문화재를 기증하였다. 그는 문화재를 기증한 공로로 1998년 국민훈장모란상을 수상하였다.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기증한 나도 기쁘지만, 수십 수백 년 동안 떠돌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이 문화재들은 얼마나 감격이 크겠는가?”라 하였는데, 선생의 고국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돌아온 우리 문화재의 의미 있는 전시

김용두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회화, 글씨, 공예품 등 시기가 광범위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명품들이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 그 대표작으로 보물 제1632-1호 「정조어필」과 보물 제1864호 <소상팔경도>를 꼽을 수 있다. 「정조어필」은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조선 왕실 서예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고, <소상팔경도>는 완벽한 구성력과 능숙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선생의 기증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뜻있는 개인의 노력으로 고국으로 되돌아온 사례로서, 이 땅에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그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진주박물관은 2001년 선생의 뜻을 기려 기증된 문화재를 모아 전시하는 두암실을 마련하였고, 2017년 전시실을 개편하면서 선생이 기증한 우리 문화재를 관람객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글. 박아연(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러스트. AM327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