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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가의 길, 국민의 품에 안기다 조선의 경복궁, 대한민국의 청와대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05

왕가의 길, 국민의 품에 안기다 조선의 경복궁, 대한민국의 청와대 1천여 년 동안 서울은 왕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땅이었다. 새로운 왕조 조선은 서울에 ・종사묘직과 법궁인 경복궁을 시작으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을 세우며 왕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유장한 역사의 물결은 서울을 대한민국의 수도로 우뚝 세웠다. 00. (좌) 학의 날개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흥례문과 좌우 행각, (우)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

왕가의 존엄이 깃든 경복궁

국운이 다한 고려를 멸하고 새 시대를 연 태조 이성계. 그는 종묘・사직을 세운 후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조선 제일의 궁궐 경복궁은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이 품은 너른 터, 널찍한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경복궁이라는 명칭은 《시경》의 ‘君子萬年 介爾景福(군자만년 개이경복)’이라는 글에 서 따온 것으로 ‘임금님은 큰 복을 누리리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경복궁에는 네 개의 성문이 있다. 정문 광화문은 ‘군주의 큰 덕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 동문 건춘문은 ‘봄을 세우다’, 서문 영추문은 ‘가을을 맞이한다’, 북문 신무문은 ‘북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인 현무’를 뜻한다. 신무문 밖에는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었다. 왕은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인 회맹제에 참석할 때 신무문을 통했다.


광화문으로 발을 들이니 넓은 마당 끝자락에 학의 날개처럼 우아하게 흥례문과 좌우 행각이 펼쳐져 있다. 흥례문은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흥례문 뒤로 근정문과 경복궁의 중심 건물 국보 근정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은 ‘정치를 부지런히 한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근정전은 겉보기와 달리 건물 내부는 아래위가 트인 통층이다.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높이의 천장에 놀라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칠조룡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중앙 뒤편에 임금의 자리 어좌가 있고, 그 뒤에 왕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 병풍이 놓였다.


근정전 높은 월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일사불란하게 서 있는 품계석과 행각의 붉은 기둥, 박석에 빛이 반사되어 월대 까지 환하게 밝힌다. 실로 발아래 모든 것이 임금을 추앙하고, 임금의 시선은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만족감이나 즐거움, 행복감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왕가의 길이 얼마나 모질고 무거웠는지 익히 알기 때문이다.


근정전을 지나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던 편전인 보물 사정전에 이른다. 사정전 뒤쪽에 왕의 침전 강녕전과 왕비의 침전 교태전이 이어진다. 교태전 뒤 쪽에 인공으로 조성한 언덕이 이채롭다. ‘아미산’이라 부르는 이 언덕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산으로 봄가을에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울창한 정원 가운데 붉은 색이 감도는 6각형의 굴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교태전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세운 굴뚝이다.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등 다양한 무늬를 장식해 매우 화려하다.


아미산을 돌아보고 발길이 닿은 곳은 ‘향기가 멀리 퍼져나 간다’라는 보물 향원정이다. 1873년 고종이 건천궁을 지을 때 연못을 파고 그 가운데 지은 정자이다.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이 끝난 뒤 고종 10년(1873)에 지은 건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한적하다.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랐지만, 섬세하면서도 화려하다. 그래서 궁궐의 다른 전각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건천궁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미국, 영국, 러시아 등 공사를 접견하는 외교의 장으로 자주 활용됐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 된 곳이 왕비가 머물던 곤녕합의 누마루였다. 상상할 수도 없는 참담한 이 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 했고, 건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렸다. 현재 건물은 2006년에 복원한 것이다.


01.경복궁과 경복궁 후원(청와대) ©shutterstock 02.보물 경복궁 아미산 굴뚝

청와대, 국민 품으로 돌아오다

경복궁 북쪽에 있는 신무문 앞에 선다. 궁에서 신무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청와대와 그 뒤로 명승 백악산(북악산)이 우뚝하다. 원래 청와대 일대는 고려 숙종 때 이궁이 있던 곳으로 당시 숙종은 한양을 남경으로 삼았다. 이후 조선 건국과 함께 경복궁이 지어졌으며, 이궁이 있던 자리는 세종 8년(1426) 경복궁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왕가의 휴식처로 사랑받던 후원에는 서현정, 연무장 등이 들어섰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되어 270여 년 동안 방치됐다. 옛 모습을 되찾은 사람은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다. 이때 조성한 곳 중 하나가 경무대이다.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으로서 기능을 이어갔다. 하지만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경복궁과 후원 역시 수난을 겪었다.


1929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과 후원 자리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건물 대부분이 철거됐다. 수모는 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원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저를 지은 것이다. 그 관저는 광복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의 관저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 이곳을 경무대라고 부른 이유는 경복궁 후원에 있던 경무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뒤를 이은 윤보선 대통령은 당시 경무 대의 기와가 파란색이라는 점에 착안해 청와대로 이름을 고쳤다. 청와대의 본관과 관저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신축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사용했다.


03.대통령 관저 04.다용도 공간으로 활용되던 충무실

74년 만의 조우, 청와대

신무문을 지나 청와대 정문으로 향한다. 그 사잇길이 조선과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가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 터 역시 조선 왕가의 것이었다. 청와대가 자리한 곳이 경복궁의 후원인 까닭이다. 봉황과 무궁화, 태극문양으로 장식된 청와대 정문을 지나 푸른 잔디마당이 탐스러운 청와대 본관 앞에 이른다. 대정원이라 부르는 이 곳은 TV 화면을 통해 자주 보던 곳이라 낯설지 않다.


청와대 관람은 영빈관 앞 영빈문, 본관 앞 정문, 춘추관 앞 춘추문 등 세 곳에서 시작한다. 어느 곳으로 입장하든 경내를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단, 실내 관람은 따로 줄을 서야 한다. 청와대 관람의 백미를 꼽자면 본관, 관저, 영빈관, 춘추관 등을 돌아보는 것과 신록이 우거진 숲과 정원, 그 속에 숨어 있는 문화재 탐방이다.


명승 백악산(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본관은 한옥의 격조와 기품을 고스란히 지녔다. 궁궐의 처마 끝자락을 장식 하는 잡상 11개가 하늘을 향하고, 팔작지붕은 위엄과 품격을 더한다. 실내에 들면 충무실을 먼저 거쳐 간다. 대규모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외빈 만찬장으로 활용되는 다목적 공간이다. 이어 통영 출신 전혁림 화백의 작품 〈통영항〉이 인상적인 인왕실에 이른다. 〈통영항〉은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혁림 화백이 그린 700×280cm 크기의 대작이다. 그 당시 전혁림 화백은 91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또한 1층에는 역대 영부인 사진이 나란히 걸린 영부인 집무실인 무궁화실이 있다. 2층에 는 한국적인 분위기로 한껏 멋을 낸 외빈 접견실과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관저로 향하는 길에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수궁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이 일대에 있던 여러 건물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지었다.


이후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총독관저는 철거 됐고, 그 터에 관사 현관 지붕을 장식하던 절병통이 놓여 있다. 수궁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대통령 관저이다. 인수문이 라는 편액이 걸린 솟을대문과 함께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한옥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 본채 건물에는 침실, 드레 스룸, 가족용 식당 등이 있다. 실내는 개방하지 않지만, 열린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05.미남불 가는 산책로 에서 본 풍경 06.백악산,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 풍경

대통령이 산책을 즐겼던 관저 뒷길 북쪽으로 향한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인 오운정과 미남불로 불리는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가는 산책로이다. 오운정은 ‘오색구름이 펼쳐진 풍경이 선계와 같다’라는 뜻으로 오운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미남불이 자리한다.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양감이 특히 돋보이며 섬세하다.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침류각을 마주한다.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1920년대에지은 건물이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라는 뜻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유유자적한 풍류를 느낄 수 있다.


120여 종의 나무가 우거진 녹지원은 숲이 우거져 그늘이 넉넉하고 작은 연못과 폭포가 어우러져 더위를 식히기에도 안성맞춤 이다. 녹지원을 지키는 건물은 상춘재이다.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 전통 가옥을 소개하거나 의전행사, 비공식 회의 등을 진행하던 곳이다. 영빈관은 외국 국빈을 위한 공식행사나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그 용도 면에서 경복궁의 근정전을 닮았다. 춘추관은 기자회견 장소와 기자실로 쓰였다.


춘추관에서 담장을 따라 명승 백악산(북악산)으로 향한다. 최근에 백악산(북악산) 청와대 전망대가 개방되어 찾는 이가 많다. 등산로는 두 갈래이다. 청와대 춘추관 뒷길로 올라가는 코스와 칠궁에서 출발하는 코스이다. 두 코스 모두 전망대 아래 백악정에서 만나 하나로 이어진다. 춘추관에서 출발해 전망을 보고 칠궁으로 내려오면 칠궁까지 챙겨 볼 수 있어 효율적이다. 30분여 분 만에 전망대 앞에 선다. 청와대와 경복궁은 물론이고 남산과 잠실, 강남 테헤란로 까지 한눈에 담긴다.


Info 함께 방문하면 좋은 문화재와 행사 # 코리아 온 스테이지: 8월 13일(토) 저녁 7시 10분부터 광복절 기념 특별공연 ‘코리아 온 스테이지’가 청와대 대정원 등에서 열린다. K-POP과 국악이 어우러진 특별 공연은 KBS 1TV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 종묘: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사당.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국내 최초로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다.(시간제 관람, 토·일요일, 공휴일 및 매주 마지막 수요일 일반관람, 화요일 휴관) # 창경궁-종묘 궁궐담장길: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켰던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를 다시 연결했다. 일제가 갈라놓았던 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시 이어진 것. 창경궁과 종묘 사이 궁궐담장(503m)과 북신문(北神門)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담장을 따라 창경궁을 바라볼 수 있는 궁궐담장길(340m)은 7월 22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여행 문의 경복궁 02-3700-3900 / 종묘 02-765-0195 청와대 ‘청와대 국민 품으로’ 누리집에서 예약(관람 안내 1522-7760)
문화유산 방문하고, 선물 받으세요! 가장 한국다움이 넘치는, 신비로운 우리 문화유산을 함께 만드는 길에 동참하세요. 10개의 길, 75개의 만남이 있는 문화유산 방문코스가 2022년 월간 <문화재사랑>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됩니다. 방문코스에 나오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 멋진 풍경에 푹 빠져보세요. 그리고 직접 문화재사랑 8월호에 소개된 방문코스 또는 그 외 ‘왕가의 길’ 코스를 방문해 인증 사진을 보내주세요. 네 분을 선정해 선물을 드립니다. 오른쪽 QR코드를 찍으면 이벤트 참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증사진을 첨부해 보내주세요. 8월호 코스: ‘왕가의 길’ 응모기간: 8월 18일까지 문화유산의 모습을 담아도 좋고 문화유산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도 좋습니다. 인증 사진을 찍고 메일로 보내주세요! * 문화유산에 따라 출입이 제한된 곳도 있습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출입이 제한된 곳은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글, 사진.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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