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규제혁신

제목
[문화재답사기] 나의 마음은... 경주로 향했다.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06-11-29
조회수
3387
작성자 : 조지영님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1학년) [2006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가작(10위) 수상작]

경주하면 ‘신라 천년의 수도’ 라고 먼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난 먼저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경주를 자랑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는 원래 경주 사람으로 아버지의 일 때문에 서울로 전학 왔는데 언제나 입에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달고 살았다. 심지어 초등학생이었던 그때 자식은 경주에서 낳아서 키운다고 했으니 그 친구가 경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와 나도 가봐야지~’ 라고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늘의 뜻인지 몰라도 학교에서 수학여행지로 빈번하게 간다는 경주를 대학교 1학년에서야 가게 되었다. 답사를 위해 짐을 싸며 경주가서 볼 곳들을 생각하니 가슴마저 두 근 거렸다. 책에서만 보아오던 불국사, 석굴암, 남산, 양동마을...

선생님, 우리도 이런 곳에서 공부해요~... < 옥산서원 / 독락당 >

이번 답사는 교수님들이 다른 과의 관점에서 경주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문화재관리학과 그리고 전통 조경학과와 같이 가게 되었다. 서로 다른 과가 같은 유적을 살피는데 오는 생각의 차이는 어떨까... 처음 우리가 도착한 곳은 4개의 명산과 5대(臺)의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는 4산5대의 경승지인 <옥산서원> 이었다. 이 서원은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제향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서원 건물들은 전면에 강학공간을, 후면에 제향공간을 형성하여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취하고 있었다. 서원을 살피기 전에 이곳을 담당해서 발표한 학생의 설명을 들어 감상할 때 더 생각하면서 볼 수 있었다.옥산서원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은 공부하다 피곤하면 잠시 나와서 계곡에서 쉬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한다면 더욱더 공부가 잘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원주변을 사진 한 폭에 담기 위해서 주위를 거닐며 정적한 서원을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문화재관리학과 교수님의 말씀대로 보수를 할 때 본연의 색과 방법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분홍색과 주홍색으로 어설피 칠해진 벽은 마치 처음 화장을 한 여자처럼 촌스러웠고 오래된 원숙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언제나 파손되고 어설피 보수가 되어있는 문화유산들을 보면 책임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워져 왔다. 대학교도 전통과 관련된 학교다보니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또한 나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의 관심이 필요 하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건물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친구의 설명대로 건물들이 기하학적 구성을 하면서도 주변경관과 어울리는 배치를 하고 있었다. 서양 사람들처럼 치밀하게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과학적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만드는 우리 조상의 솜씨는 후세인 나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했을 뿐더러 미래의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할 가치가 있는 보배라고 생각했다. 옥산 서원에서 나와서 걷다 보면 독락당이 나오는데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정치적 시련기에 은둔하던 곳 이여서 폐쇄적이고 은밀한 느낌이 난다는 자료의 표현도 옳지만 오히려 나는 이런 곳은 폐쇄적인 공간이기 보다는 멋진 보물을 꼭꼭 숨겨둔 비밀장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건물을 돌다가 계정을 보려 했지만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없었기에 개천 쪽에서 계정을 보기 위해 개천으로 내려갔다. 개천으로 가는 구불 구불한 길은 마치 미로 속을 걸어다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왠지 끝에는 멋있는 무언가가 짜~잔 하고 나타날 것 같았다.) 역시 길 끝에는 푸른 숲이 날 맞아 주었고 그 밑으로 졸졸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개천에서 계정을 바라보며 회재 이언적이 왜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벗어나서 계정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분명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을 테니...

지금은 조선시대 입니까 ? 나는 지금 양동마을에 ... 왜 다리가 아프지? 오랜만에 걸어서 일까? 아니면 내가 보통 걷던 길이 아니라서?

이튿날 간 양동마을에서 나는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비포장도로에 집과 집 사이의 지반의 높이는 천차만별이었으니... 마치 드라마의 세트장처럼 집들은 하나같이 민속촌에서 볼 법한 것이었고 인적이 뜸해 마을이 텅 빈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이곳을 담당해서 조사한 친구가 양동마을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곳은 중요민속자료로 선정되고 또한 경주 손씨 대종가가 오백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 깊은 양반마을 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양반들의 상류주택 뿐만 아니라 초가 까지 포함하여 160호가 집중되어 있었다. 자료집의 설명에 따르면 경치가 좋은 고지대에는 양반들이 살았고 반면에 저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의 가옥을 감싸는 형태를 보인다고 해서 한 눈에 마을을 볼 수 있는 곳에 가서 보니 실제로 그런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다 수백 년 묵은 기와들, 낮은 돌담 어망 같은 고샅길...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유명하게 이름난 정자들을 구경하며 마치 내가 조선시대에 와 있는 듯 한 착각에 나의 행동이 얌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간 날이 장날’ 이라는 말처럼 며칠 전만해도 초봄의 날씨였는데 하늘에선 어느새 뜨거운 열기를 내 머리로 팍팍 내리 쪄주는 여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인지 처음에는 불편한 길을 걸으며 짜증도 냈다. 나의 그런 기분을 친구가 알았는지 잠시 쉬다가가고 해서 우리는 어느 양반 집 정자 같은 곳의 툇마루에 누웠다. 관리를 받는 곳 이여서 그런지 사람이 살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깨끗했다. 처마 밑으로 진 그늘은 언제 더웠냐는 듯이 내 머리위로 송 글 송 글 맺힌 땀을 식혀 주었고 파란 하늘의 구름은 유유자적하며 푸른 하늘 위로 떠 다녔다. 나도 어느새 나른해진 기분에 눈을 감았다. 멀리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에 부대끼는 나무소리는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같이 간 언니가 사준 약과 ( 이 고장에서는 전통 먹을거리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집들이 많다.)를 오물 오물 씹으며 자연에 주는 풍성함과 한옥이 주는 편한함에 취해 그렇게 정자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신기하다~ 무덤을 걸다니 ... < 괘릉 >

여기에는 신기한 무덤이 있습니다...관을 건다는 것을 들은 적 있습니까? 내물왕이 12대 손인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괘릉은 답사를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역사 스페셜을 즐겨 보시는데 같이 보다가 괘릉에 대해 본 기억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괘릉을 만들어진 이 곳은 명당이기는 하지만 습기가 많아서 관을 걸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인상 깊게 기억나는 것은 무덤 주위에 둘러진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을 양각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직접 이 무덤을 구경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와서 직접 보니 더욱더 신기 했다. 정말 무덤 주변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물이 고여 있었고 십이지신상은 세월의 풍파로 형체는 많이 망가져있었다. 괘릉을 둘러 보며 ‘이 곳이 얼마나 좋은 명당이 길래 관까지 걸어야 했을까?’라고 생가하고 친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덤 앞에는 누가 무덤에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인지 무인석, 문인석, 돌사자 두 쌍이 지키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문,무인석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인데 문인석은 중국인의 복장을 무인석은 중동인의 얼굴과 복장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이런 석상들을 보면 신라시대가 얼마나 다른 나라와 왕성한 교류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괘릉을 구경하던 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답사에서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아껴주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 우리 문화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보람찬 답사였다. 책에서만 보고 ‘아~문화재를 사랑하고 아껴야지’하던 생각에서 직접 답사해서 그것에 대해 내 눈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그것을 내 삶의 하나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시간을 들인 것에 대해서 아깝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게 해 주었다.우리 속담 중에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말에 대해서 이번 답사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는데 직접 봄으로써 더 문화재에 대해 애착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우리의 이런 좋은 문화재를 우리나라 사람들만 공유하기 보다는 관광 측면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내서 지역 문화도 발전시키고 우리나라가 경제 뿐 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우수하다는 것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많이 답사를 다니겠지만 학교에서 가는 것 뿐 만 아니라 .혼자서도 문화재를 찾아 답사하고 싶다.(학교에서 가면 시간이 정해져 있어 꼼꼼하게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답사장소에는 옥산서원, 독락당, 양동마을 , 괘릉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곳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에 깊어서 이들 유적지에 대해 답사문을 쓰게 되었다.
첨부파일
  •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법무감사담당관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