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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재답사기] 와흘 본향당 답사기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06-11-14
조회수
3999
작성자 : 좌동열님 [2006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가작(8위) 수상작]



제주의 마을에는 ‘본향당本鄕堂’이라 해서 마을의 중심이 되는 신앙처信仰處가 있습니다. 와흘본향당은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마을 본향당 제는 과거 제주마을제의 모습이 그대로 잘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답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마을제가 유교식 포제로 많이 바뀌어 버렸지만, 제주의 옛 기록을 보면 ‘제주 사람들은 본향당에 모두 모여 남녀가 춤을 추고 음식을 먹으며 마을제를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런 옛 형태가 지금까지 남아 전하고 있는 곳이 제주에서도 와흘리 마을이며, 이 마을의 堂祭를 지내는 날이면 마을의 남녀는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와흘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의 모든 일은 본향당신本鄕堂神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 그리고 집집마다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고 하루아침에 재물을 잃어 가난해 지는 일, 또한 객지로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들도 모두 본향당신本鄕堂神이 맡아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을사람들은 일년에 세 번은 마을의 본향당신本鄕堂神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데, 이 날은 심방(무당)이 종일 굿을 하며 신神을 즐겁게 해 드립니다. 새해가 되면 우선 신神에게 새배를 하는 ‘신년과세제新年過歲祭’를 드립니다. 이 제사는 다른 제사 때보다 규모가 아주 큽니다. 2월이 되면 영등신을 위하는 ‘영등제’를 드리는데, 영등제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안마을의 어부나 해녀들이 정성을 다 해 드리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7월이 되면 ‘백중마불림제’를 지내는데, 이는 중산간 마을에서 목축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큰 제사이며, 10월이 되어 추수가 끝나면 본향당신本鄕堂神께 감사하다는 ‘시만곡대제 十萬穀大祭’를 드립니다.

제주본향당의 신神들은 모두 족보를 갖고 있는데, 와흘본향당의 신神은 송당본향당의 열한 번째 아들로 ‘백조도령’이라고 합니다. 와흘본향당의 한쪽 구석에는 ‘서정승따님’이라는 女神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두 神은 서로 부부간이었으나 사이가 좋지 않아 지금은 별거하고 있습니다. 와흘본향당의 부부신이 별거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본풀이’의 내용을 보면, ‘아주 오랜 옛날 서정승따님은 남편도 없이 혼자서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데리고 이곳 와흘본향당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송당본향당의 열한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은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다 멀리 와흘마을에 예쁜 서정승따님이 혼자 살고 있는걸 보게 됩니다. 워낙 한량인 ‘백조도령’은 그 마을의 현씨 할아버지에게 중매를 서 달라고 부탁하는데, 백조도령이 인물이 뛰어나고 사냥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서정승따님은 한눈에 반해 버립니다. 혼인을 하고 오래지 않아 서정승따님은 임신을 하였는데, 돼지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신들에게 있어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부정한 짓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절대로 먹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서정승따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돼지털을 뽑아 불에 그슬려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백조도령’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서정승따님을 내쫒아 버렸습니다. 할 수없이 서정승따님은 와흘본향당의 한쪽 구석으로 쫒겨 나갑니다. 그후부터 백조도령은 이 堂의 堂神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올리는 제물을 받아먹게 되었습니다.



와흘본향당에서 마을제를 지내는 날이면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마을 출신으로 다른 마을로 나가 사는 사람들도 제각기 제물을 준비해서 찾아옵니다. 설령 외국에 나가 있어 직접오지 못하는 경우도 친척이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자기 몫의 제물을 준비하여 올리게 합니다. 이 사진은 2006년 음력 1월 14일, 와흘마을의 본향당신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본향당신에게 바칠 음식을 준비하여 새벽에 당으로 옵니다. 만약 시간이 늦어지면 제단 위에 음식을 올리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서 서둘러 옵니다. 그리고는 堂神 가까이에 제물을 올리려고 애를 씁니다.



같은 날 서정승따님의 床은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컴컴한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갖다 논 과일 한 접시와 양초 한 자루가 전부였습니다. 서정승따님에게 빌면 아기가 아프지 않고 잘 크고 또 그 아기의 생명줄을 길게 이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기를 잘 돌봐 주고 잘 키워 주는 女神은 무시당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무사안녕을 돌봐주는 백조도령에게는 크게 제사를 드리면서 아기를 잘 크게 해 주는 서정승따님은 잊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주의 마을에는 약 350개의 堂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堂을 찾아가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 합니다. 해녀나 어부들이 찾아가는 ‘개당(바닷가 당)이 있고, 아기를 잘 키워 달라고 비는 당이 있고, 피부를 좋게 해 달라고 비는 ’피부당皮膚堂‘도 있습니다. 우마의 번성을 비는 ’쇠당(牛堂)도 있고요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믿는 당신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밀한 곳을 더듬어 찾아다니는 학자들이 있어 최근에는 당堂 답사踏査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2006년 4월 25일, 제주대학교평생교육원에서 와흘본향당을 답사 했습니다. 이날 와흘본향당의 모습은 당제堂祭를 지내던 날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기를 곱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들의 마음이 서정승따님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물색(옷감)을 女神에게 바치고, 아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무명실을 나무 가지에 묶으며 아기가 잘 크도록 도와달라고 빌고 있었습니다. 여신을 찾아 소원을 빌 때는 물색을 바칩니다. 이는 여자들이 고운 옷을 좋아 하여 좋은 옷을 선물하면 부탁을 들어 주는 것과 같은 뜻으로, 여신에게도 고운 옷을 선물하면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와흘본향당 답사를 하며 서정승따님의 처지가 우리나라 여인들의 처해있는 처지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너무나 하찮게 여겨서 임신해서는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고, 사소한 잘못에도 트집을 잡고 집 밖으로 쫒아 냈고, 집 안에서 잔치가 벌어져도 여자들은 먹을 것 하나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던 그 아픈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도 이 堂의 女神에게는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임신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축복이며 자랑이 되었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일 또한 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본향당제를 드리는 날이면 서정승따님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물을 올리면서 마을의 아기들이 잘 크게 보살펴 달라고 빌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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