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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무침으로 뱉어내는 깊은 울림, 역사를 대하는 겸손함으로 자연을 노래하다
작성일
2012-10-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223



운이 좋아 바쁘고, 바쁘기에 행복한 전통음악인

해금연주자 꽃별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큰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의 한 카페였다. 먼저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녀는 앨범재킷에서처럼 가녀린 체구에 선한 눈매를 가졌지만 표정과 말씨에서 왠지 모를 힘이 느껴졌다. 음악에 대해, 인생에 대해 얘기 나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날씨, 우리는 가을비가 내리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테이블 옆에는 해금이 들어있는 케이스가 기대어 놓여 있었다.

“해금은 정말 단순한 악기예요. 그런데 그 단순함 속에 엄청난 것을 가지고 있어요. 현이 공중에 떠 있어서 어떤 소리도 낼 수가 있거든요. 잘 다듬어진 소리가 아니라 거칠기도 하고 설겅설겅 나죠.” 건반 하나하나에 음이 정해져 있는 피아노가 기계적인 악기라면 해금은 제 생김새처럼 정해짐이 없다. 매끈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소리다. “공연도 많았고, 요즘 일을 바쁘게 했어요.

오전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공연하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크로스오버 해금솔로이스트’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꽃별은 지금까지 다섯 장의 앨범을 냈고, 네 번의 단독 콘서트를 비롯해 많은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왔다. 각종 CF 배경음악과 드라마 <추노> OST를 통해 대중에게 조금은 낯선 해금이라는 악기를 알리기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운이 좋아서’였는지 기회가 많이 주어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활동해 왔다. 연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힘겹고도 행복했던 해금과의 동행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 같았어요. 또 어떻게 들으면 짐승이 내는 소리 같기도 했구요. 날 것의 소리라고 할까요? 딱히 잘 모르겠지만 아주 인상적인 느낌이었죠.” 황홀하도록 아름답다거나, 듣는 순간 뭉클해 눈물이 흐르는 그런 감동은 아니었다. 그 끌림은 식상하지만 운명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국악중학교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시작된 긴 배움의 시간은 배움보다는 수련에 가까웠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국악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것이다, 감동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요.” 지식이나 기능적인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전통음악의 미학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것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의 정화를 통해 한 번 걸러서 내보이는 전통음악의 표현방식과도 이어져 있다.

민족의 삶에 배어 있는 깊은 슬픔, 그 한의 정서를 울려내기 위해 그녀는 밖으로 소리를 내는 법이 아닌 속으로 삭이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러면서 인내를 배웠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긴 숨을 가지게 된 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은 쫓기듯이 바쁘게 살지만 전 멈춰 있는 게 두렵거나 조바심 나지 않아요.”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리고 싸움에서 소통으로의 옮겨짐

해금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전통음악은 그녀에게도 낯선 음악이었다. 그 나이 또래가 그렇듯이 서태지와 아이들, 머라이어 캐리 같은 대중음악이 더 친숙했다. 해금으로 그런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발표했던 음악들의 현대적인 느낌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크로스오버 해금연주자라는 타이틀을 붙이지만 그녀 자신은 일부러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던 적은 없었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로, 내고 싶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피아노나 바이올린과의 협주도 의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도록 만드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도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처음에는 그런 과정이 버겁기만 했다.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런데 3집을 만들면서는 그 고통까지도 즐기게 됐다. 그 전까지는 싸우기만 했다면 그때부터는 싸움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예전엔 제 감정을 듣는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통음악은 나 자신은 폭풍같이 느껴도 소리로는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으로 전달돼야 해요. 해금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거나 이끌어내는 힘이 있는 악기라고 생각해요. 제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내게 해주는, 그래서 다시 채울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4집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이었다.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며 그녀는 슬픔과 분노, 질투심, 아득한 기다림 같은 폭풍 같은 감정들을 작곡을 통해 쏟아냈다. 지금 들어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고, 앨범을 발표한 뒤 그녀의 마음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 치유의 경험은 고스란히 음악으로 옮겨졌다. ‘숲의 시간’이라는 테마를 가진 이번 5집에서는 평화로움을 주제로 자작곡을 포함한 12곡의 연주곡을 선보였다. 이제는 나 자신에서 세상으로 시야를 넓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옛 것에서 느끼는 커다란 존재감, 그 앞에서 생각하는 음악가의 길

“전 경주를 참 좋아해요. 그곳의 나지막한 건물들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거든요. 복잡한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이죠. 저에게 평화롭다는 것은 비어있음이에요. 한옥의 빈 마루처럼 아주 잘 짜여 있지만 여유가 있는, 바람이 통하는 공간처럼 말이에요.” 그대로 두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야말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문화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문화재 앞에 서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그 안에 깃든 정신은 영원함을 헤아리게 된다. “지리산의 화엄사를 참 좋아하는데 그곳에 가면 나무기둥에 가만히 손을 대고 한참 있어요. 건물을 지을 때 나무를 존중했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순간 뭉클해지죠.” 한옥에서 공연을 하면 확실히 소리가 다르다. 해금은 음향시스템이 잘 갖춰진 콘서트홀보다 한옥의 마당에서 더 자연스러운 울림을 낸다. 연주를 할 때면 악기가 편안해 함이 느껴지고, 연주를 마친 뒤에는 이길 수 없는 존재감 같은 것이 밀려온다. “해금으로 평화로움을 이야기하는 음악가로 사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치열한 과정을 통해서 해 나갔으면 해요. 어떤 자리에 서 있든 음악 앞에서는 제가 아무 것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해금연주가 꽃별, 그녀는 옛 절의 기둥에서 느꼈던 큰 존재감을 마음 깊이 두고 더 겸손하게, 더 치열하게 음악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글·성혜경 사진·이대영,포니캐년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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