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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문화유산의 숨결을 찾아
작성일
2006-04-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533



담양 5일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죽물시장이었다. 한때는 산더미처럼 쌓인 죽물들 사이로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과 겨우내 손수 대나무를 다듬었던 농부들의 흥정 소리가 드높았고, 그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도 입에 돈을 물고 다녔다 할 정도로 좋은 시절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3년 전부터 죽물시장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담양읍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대나무를 다루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골집 마당마다 북적거리며 바구니를 만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길에서 만난 분께 여쭤보니, 삼일을 돌아다녀도 못 찾을 거라며 혀를 차신다. 한때 담양사람 가운데 2,000여 명이 죽세공예품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수가 100분에 1로 줄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제품이 일상화되고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담양의 죽물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담양의 죽세공예문화도 그렇게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죽제품은 담양산을 최고로 쳐왔다. 이토록 담양의 죽물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대나무의 질이 월등히 좋았기 때문이다. 작가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담양의 대를 다른 지방에 옮겨 심으면 그 걸출한 모습은 간 데가 없고 ‘좀대’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기후와 토양 탓이라는 것쯤은 헤아리고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도 담양에는 이름난 대나무 숲이 많다. <죽녹원>, <대나무골 테마공원> 등은 드라마나 CF 촬영지로 유명해져서 많은 이들이 죽림욕을 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담양읍내 <대나무 박물관>부터 둘러보았다. 과거 각종 생활용구를 비롯하여 담양의 명물인 채상, 발, 낙죽, 참빗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인의 감각에 맞도록 디자인된 다양한 죽제품 경진대회 출품작들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에 흡족하질 않는다. 애초에 담양의 어느 골목길에 서서 장인들의 제작과정을 직접 지켜보리라던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대나무 공예품은 민중들의 삶과 깊이 연관을 맺고 있다. 담양에서 만들어진 죽제품들은 대부분 필수적인 생활도구로 당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민중적인 공예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제작자인 민중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죽세공예를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겨울철 농한기를 맞아 가족들끼리 둘러 앉아 바구니나 석작을 만들었고, 남은 것을 장에 내다 팔면 1년 농사 수입보다도 큰 수입이 들어오니 점차 농가의 부업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이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몇 집 남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상가의 주문이 있어야만 제작을 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더 커졌다. 박물관 앞에 있는 죽세공예 체험장에서야 비로소 죽물장인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정용택(67세) 명인이었다. 정용택 님은 체험장의 강사로 재직하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죽세공예 체험을 지도하고 계신다고 했다. 열 두살에 외가집에 놀러갔다가 죽석(돗자리) 만드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와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 대나무 공예가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잠시 도시에 나가 사업도 해봤지만,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대나무 인생을 살고 있으니, 올해로 55년째 대나무를 만지고 있는 것이다. 체험장이 잠시 한가한 시간에 그는 커다란 종이 모자를 만들고 계셨다. 곱게 다듬은 대나무 살을 촘촘히 엮어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빨갛고 노란 박쥐 문양과 태극문양을 오려 붙인다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위에 직접 쓸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옛날 평양 기생들이 썼던 우산 겸용 모자라고 한다. 기생들이 사용하던 전모를 말씀하시는 듯하나, 머리만 살짝 가리던 기생들의 전모보다는 지름이 훨씬 넓어, 전체적으로 1m가 넘는 크기였다. 사대부들이 갓 위에 썼던 갈모는 우산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이니 갈모와도 생김새가 달랐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옛날 것에 눈뜬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이제 겨우 10년 됐나? 그나마도 처음에는 돈이 될까 싶어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돈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옛 작품들을 재현하는 것은 작업공정도 복잡하고, 잔손이 많이 갔다. 대나무 살을 일일이 손으로 깎아서 다듬는 것도 일이었고, 종이를 세 번 네 번 겹발라야 하는 것도 낯선 일이었다. 문양 붙이고 색칠하는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옛 장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몇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머리를 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에 비해 지금 사람들이 훨씬 똑똑해 보이지만, 옛날 사람들 물건 만들어 놓은 것 보면 지금 사람은 쫓아갈 수가 없어요. 우산을 머리에 직접 쓰는 이런 디자인을 요즘 사람들이 생각이나 해내겠어요? 옛날 것에는 이런 묘미가 있어요. 아이디어들이 톡톡 튀지요.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가로와 세로로 겹치는 살마다 구멍을 뚫어서 실로 묶고, 문양지 한장 한장 오려서 붙이다보면 그 정성을 쏟아 부었던 옛날 사람들이 진짜 존경스러워집니다.” 플라스틱 제품 나오기 전까지 만해도 우리네 생활도구의 많은 것들이 대나무로 만들어졌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바구니, 그릇, 돗자리 등은 흔하다 치더라도, 동양의 오랜 필기도구였던 붓, 퉁소나 피리 대금 등의 악기, 우산, 삿갓, 방립 등의 의생활 도구, 고기를 잡는 어구나 농기구, 의자, 장, 조족등, 노리개나 아이들 장난감, 하물며 요강까지도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니, 대나무의 다양한 활용도에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이 모든 생활도구들이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 정도로 취급되어버리고 있지만, 죽세공예품의 독특한 디자인, 친환경적인 가치는 앞으로도 재고될 가치가 충분하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대나무 소재의 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해서 담양군에서는 대나무 신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대나무 축제와 박람회도 개최할 예정이다(4월 9일~5월 7일). 옛 죽물시장터에는 ‘대나무 직거래 장터’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대나무 숯과 비누, 대나무 숯으로 천연염색한 제품들, 대나무 기름인 죽력, 대나무 물, 대통밥 등, 현대적인 감각의 대나무 제품들이 담양의 화려했던 죽물문화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담양은 문화의 고장이다. 소쇄원, 명옥헌, 면앙정 등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다양한 석불과 석탑을 돌아보는데도 하루로는 모자랄 정도이다. 금성산성과 이름난 고택들이 전통의 향취를 더하고, 관방제림과 메타세콰이어길, 곳곳에 조성된 울울창창한 대나무 숲 때문에 도시는 온통 초록의 인상을 풍긴다.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담양 투어버스도 운행 중이다. 정경아 / 우리얼 www.uri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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