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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의 찬란한 색을 머금은 노거수 멋과 정취를 뽐내다
작성일
2017-10-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454

가을의 찬란한 색을 머금은 노거수 멋과 정취를 뽐내다 - 천연기념물 제463호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일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다.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에서 만난 노거수들은 시인의 노래와 궤를 같이하며 물들고 있다. 절정의 빛깔로 가을을 단장하는 그 숲으로 향했다. (좌)400살 넘은 단풍나무가 15m에 이르는 키를 자랑하고 있다 (우)화려한 색으로 뒤덮인 문수사

산기슭에 자리한 지혜의 터전

청정한 서해와 맞닿아 있어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창. 힘 좋기로 소문난 풍천장어와 복분자주의 환상적인 조합을 맛보기 위해 이맘때쯤이면 고창을 찾는 발길이 많아진다. 어디 그뿐이랴. 가을이 깊어갈수록 선운산 도립공원의 정취는 더욱 그윽하다. 누이처럼 수줍은 표정의 국화가 제철을 만났으니 메마른 감성도 그 빛깔로 금세 물든다. 가을의 낭만이 짙을수록 고창의 매력도 익어간다.

고창이 낳은 시인 서정주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며 국화의 개화과정을 그림 그리듯 한 편의 시로 노래했다.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에서 약 30km 떨어진 청량산에는 불꽃이 핀 것처럼 붉 게 타오르는 천연기념물 제463호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이 있다.

문수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청량산 기슭에 있는 절이다. 청량산은 고창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이곳과 인접한 전라남도 장성에서는 축령산이라 한다. 또한 고창에서는 문수사의 이름을 따 문수산이라고도 한다.

문수사 「사적기(事跡記)」에 나오는 창건 설화에 따르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이 산을 지나게 됐는데 묘하게도 당나라에서 수행했던 청량산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당나라의 청량산은 문수보살이 머무는 상주처(常住處)로 알려져 있다. 문수보살은 『반야경』을 편찬한 이로 불교에서 지혜의 상징이다. 자장은 혹여나 이 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산속 암굴에 들어가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그 자리를 파보니 문수보살 입상이 나왔다. 이에 644년(의자왕4) 문수전을 짓고 이름은 문수사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설화는 설화일 뿐, 당시 이곳은 백제의 영토인 데다 백제와 신라가 다투고 있던 때여서 신라인이었던 자장이 백제 땅에 절을 세웠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문수사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대웅전을 비롯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문수전 등이 있다.

01_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 문수사

02_일주문에는 ‘청량산문수사’라 적혀 있다03_울타리가 있어 들어가지 못하지만 밖에서만 봐도 충분히 아름답다04_한발 앞서 가을을 맞은 단풍잎들은 이미 낙엽이 되었다05_노거수가 높게 가지를 뻗고 있다

가을이 익는 소리는 발아래에서 나는 법

이맘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문수사에만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단풍나무 숲을 보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문수사 단풍나무 숲은 청량산 입구에서부터 문수사 입구까지 약 700m에 달한다. 면적은 120,065㎡로 국제규격 축구장 크기(7,140㎡)의 16배에 달한다. 나무는 대부분 노거수로서 수령은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한다. 비탈진 산에 5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흩어져 자란다. 숲에는 단풍나무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다.

일주문에는 ‘청량산문수사’라 적혀 있다. 소문을 듣고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선 사람들의 차량으로 주차장은 초만원이다. 문수사로 오르는 길은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하다. 길은 좌우로 휘어지며 갈 지(之)자를 그린다.

단풍나무 숲에는 천연기념물이라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무 울타리를 설치해 놓았다. 조금 더 가까이할 수 없어 사람들은 단풍나무 숲이 애틋하다. 문수사 단풍나무 숲길의 명당은 길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다. 붉은 나뭇가지를 끌어당겨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밝은 햇살이 숲에 비치면 단풍도 덩달아 빛난다. 숲이 울창해 숲속이 어두울 것 같지만 손바닥만 한 햇살만 있어도 단풍은 형형색색으로 빛난다.

문수사 단풍나무는 대부분 당단풍보다 잎이 작은 아기단풍이다. 잎이 9~11개로 갈라지며 잎과 열매가 당단풍나무에 비해 훨씬 작고 열매가 수평으로 벌어진다. 나무는 우산모양을 닮아 신부가 드는 부케를 닮았다.

숲길에서 백미로 꼽히는 곳은 문수사 입구의 아름드리 단풍나무 숲이다. 울타리가 없는 곳을 따라 숲속에 발을 들이면 붉게 물든 단풍 덕에 사람의 낯빛도 홍조로 물든다. 반백 년 이상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발그스레한 얼굴을 보고는 아이처럼 웃는다. 단풍의 화사한 빛깔은 살아온 세월 따라 길을 낸 주름을 따라 흐른다.

문수사에는 천년고찰의 위엄과 엄숙함이 존재한다. 높다란 축대 위에 자리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막상 경내에 들어서면 소박한 느낌이다. 대웅전, 문수전, 명부전, 나한전, 누각 등이 절 마당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몇몇 사람들은 단풍나무 숲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며 아쉬워하지만, 후대에 전달해야 할 값진 자연유산이기에 더욱 소중하게가꿔야 할 것이다. 호젓한 가을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단풍이 낙엽이 된 때에 맞춰 이곳을 찾아보자.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지르밟고 가을을 추억하기에는 그때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을이 익는 소리는 발아래에서 나는 법이니.

 

글+사진‧임운석(여행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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