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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우리소반
작성일
2013-12-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0658

세계 각국의 전통이 미래 산업의 원동력으로 떠오르는 요즘, 우리 문화를 찾아
내고 익히며 문화산업으로 발전시켜 그 부가가치를 창출해나가는 적극적인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는긴역사 속에 훌륭한 예술 작품을 남겼고그중
종류나 질적으로 풍부한 것은 공예부분이다. 특히 목공품은 작품에 조용함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생활을 온화하게 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친근함이 있다고
『조선의 소반』을 쓴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는 말하고 있다.

01. 나전 도화문 원소반. 자개로 꽃무늬를 놓아 장식했다. 보통 소반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은 매화, 연꽃, 모란 등 꽃을 비롯해 새, 나비, 물고기, 박쥐, 대나무, 태극, 수복 등 모두 수복강녕을 상징하는 것이다. 
02. 소반 기능전승자의 현대작품. 우리의 주거 공간은 평좌식의 온돌방 구조로 되어 있어 가구가 낮게 설계되었다.

소반의 유래

우리의 주거 공간이 평좌식의 생활을 하는 온돌방 구조로 되어 있어 입식 생활을 하는 중국이나 서양의 가재도구와는 달리 독자적인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문갑이나 책상, 기물을 받치는 도구 등이 낮게 설계되었다. 기물을 받치는 도구로는 탁卓, 반盤, 상床등이 중국으로 부터 전해져 우리 생활에 많이 쓰이던 용구였으나 탁은 주거생활이 좌식으로 정착되면서 점차 전통적인 제사나 의식 때만 쓰는 도구로 남게 되었다.

5~6세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인 각저총角低塚현실 북측의 부부상도夫婦像圖, 무용총舞踊塚주실 우축 벽에 묘주墓主의 생활을 그린 그림에 음식을 담은 식기를 받친 4각반四角盤이 그려져 있다.『삼국사기』잡지 직관조職官條에 통일신라시대에는 궤화 반상을 다스리는 부서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에는 국제 무역이 활발했고 장엄한 불교 미술의 영향도 있어서 화려하고 풍요로우며 사용하는 기물도 국제성을 띤 것이 많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소반은 사회규범과 신분 질서가 엄격하여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었던 생활공간에서 운반이 손쉬운 형태의 규모, 구조로 제작된 생활용품이고 모든 계층이 널리 사용하였던 만큼 그 종류와 형태도 매우다양하게 발달하였다.

03. <회혼례도>. 혼례한 지 60년이 되는 해에 다시 치르는 혼례인 회혼례를 그린 기록화고, 잔칫날 독상을 앞에 놓고 있는 손님들이 그려져 있다. 
04. <후원유연>. 두 선비가 후원에서 연회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 우측 하단에 개다리소반에 음식을 나르는 여인들도 거문고 장단에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05. 괴목 연화상. 상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 해서‘연화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채로운 모양과 균형 잡힌 구조

보통 민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소반의 크기는 그 너비가 50센티미터 내외이다. 한 사람이 소반을 받쳐 들고 부엌에서 마당을 지나 대청을 오르고 안방이나 사랑방으로 옮겨가는데 과다한 힘을 쓰지않도록 계산된 크기이다. 성인의 어깨 넓이를 넘지 않으며 양팔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표출한 수치이다. 높이도 25~30센티미터 내외로 몸을 심하게 구부리지 않고 팔을 움직이는 데도 불편이 없다. 용도에 따라 다상이나 소상은 규격이 작으며 두셋이 둘러앉거나 돌상과 같은 특별한 상인 두레반의 경우처럼 넓이가 넓은 것도 있다. 그러나 모두 운반하기 쉬운 규격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움직이는 기구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재목은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은행나무, 가래나무, 피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등이 선택되었고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목재의 연결부분을 지혜로운 짜임으로 튼튼하게 짜 맞추어 가는 다리가 무거운 반을 지탱할 수 있는 역학적 구조가 채택되었다. 운반 기능을 위해서는 기물을 놓는 천판이 밖으로 나와 별도의 손잡이 없이 양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다리는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하되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유려함을 위하여 운각雲脚을 끼웠다. 다리는 호족虎足, 구족拘足, 마족馬足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절竹節이나 초형草形의 풍혈風穴을 달아 쓰임새와 함께 장식적인 효과를 가져 왔다.

보통 기물의 형태는 그 시대의 건축이나 다른 기물과 관련이 있다.고려시대에 가장 우수했던 소반은 청자기의 모습과 수저의 선에서 보여지 듯 선이 복잡하고 조각도 화려했을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처럼 담담한 흰색을 주로 썼을 무렵에는 개다리소반 등의 꾸민 흔적이 없는 것이 어울린다.

조선 목공품은 선이 만나는 부분이 모나지 않게 둥근 멋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면이 완만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귀접이한 것, 능菱형으로 굴린 것, 둥그스름한 것 등 어느 것이나 자연스러운 형태를 갖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리 모양은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어느 것이나 건축의 기둥이나 동물의 네 다리를 연상케하는 균형 잡힌 모습을 하고 있다. 똑바로서있는것, 활처럼 굽은것,밑으로 내려오면서 밖으로 튀어나와 특별히 안정된 느낌을 주는 것 등이다. 또한 그 사이에 배치된 간결하고 명확하며 풍부한 선의 부조와 투조의 문양은 훌륭한 건축에 장식되어 있는 현관이나 창을 연상시킨다. 보통 소반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의 종류는 새, 나비, 물고기, 박쥐, 학, 매화, 대나무, 당초, 연꽃, 모란, 석류, 태극, 수복, 안상, 등 모두 수복강녕壽福康寧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러 조형은 선조線彫양각陽刻, 혹은 투조 등의 방법으로 극히 온화하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어느 것이나 문양이 전체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다리가 직선인 해주반과 전상의 경우는 직선 또는 둥근 원이 들어 있는 문양이 배치되어 있고 곡선 다리를 가진 구족반, 호족반, 나주반의 경우 반판에 다리를 접속하는데 구름과 연기, 안개 등이 끼여 있는 듯 한 운문으로 그 조화로움에 보는 사람은 감명을 받는다.

06. 조선시대 개다리소반. 잘록한 발목은 발끝이 곡선으로 우아하게 매듭지어 다리 끝부분에서 버선코와 같이 위로 살짝 치켜 올리면서 두 개의 족대 위에 안정되고 있다. 
07. 호족반. 호족반은 다리가 호랑이의 다리 형태를 하고 있는 소반을 말한다.

단순한 장식 이상의 문양

소반을 만든 장인은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였으며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공고상公故床의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운雲문은 소반을 머리에 이고 갈 경우 양쪽을 내다보기 위한 창이다. 옆에 만자로 투조되어 있는 것도 광선이 잘 들어오게 하기 위해 만든 창이다. 또한 대원반의 다리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안상은 손잡이 구멍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나주반과 해주반의 운각은 실제로 다리를 고정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구조물이다. 통영반의 난간은 받침대 역할을 하며 해주반의 다리에 새겨진 투조는 상 하래로 빛이 들어와 전체를 가볍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소반에 붙어 있는 족대는 소반에 안정감을 주는 작용 외에도 실제로 다리를 뒷받침하는 등 어느 것이나 그에 상당하는 역할을 한다.

소반은 산지에 따라 그 지역 색이 뚜렷하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의 삼재론과 서쪽의 음양오행설이 구별되는 우리나라는 많은 골짜기와 함께 산지, 형태, 용도에 따라 60여 종의 종류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소반으로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 있고 평안도의 안주반, 충청도의 충주반 등이 있다. 다리가 하나인 일주반도 있고 높이를 낮게 만들어 보조역할을 하는 과반과 곁반도 있다.

기계로 제작된 공산품이 아닌 우리의 소반은 수공예품에 의한 우아한 선의 간결함, 잘 다듬어진 목재의 매끄러움, 날씬한 반盤의 각형脚型에 빼어남이 있다. 그러면서도 소박한 멋, 형태 자체가 풍기는 질박하고 순진한 맛은 컴퓨터와 기계화 시대에 인간미를 갖고 다가온다.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따뜻함과 편안함으로 우리 안방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글·사진. 나성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명채, 박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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