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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여 년 동안 서민의 삶과 함께했던 버스 쇠표, 토큰
작성일
2013-01-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773



구멍 뚫린 동전, 토우컨’ 또는 ‘버스 쇠표’

최초의 일반용 토큰은 황동(구리와 아연의 합금, 놋쇠) 으로 만들어 누런색을 띠었고 학생용은 양백 (구리, 니켈, 아연의 합금)이 재료로 은백색이었다. 처음에 토큰은‘토우컨’으로도 표기했고 ‘버스 쇠표’라고도 불렀다.

토큰이 나오기 전까지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릴 때 안내양에게 현금으로 요금을 계산 했다. 토큰 제도가 도입된 뒤에는 토큰을 판 매점에서 미리 사서 내릴 때 승강대에 부착 된 요금통에 넣으면 되었다.

처음 토큰제를 도입하면서 서울시 당국은 대체로 버스정류장마다 한 곳씩 담뱃가게, 약국, 매점 등 1400여 곳에서 토큰을 팔도록 했다. 1979년에는 토큰 자동판매기도 등장 했다. 토큰제를 도입한 이유는 현금 계산의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버스요금이 오르면서 한 사람이 내는 동전 개수도 많아지고 그 때문에 안내양의 유니폼 상의 주머니는 10원짜 리, 5원짜리 동전으로 가득차 출렁출렁했다. 큰 돈을 내면 안내양은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어야 했기 때문에 승하 차 시간이 지체되기 마련이었다. 토큰은 그런 불편을 덜어주었다.


 ‘삥땅’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토큰

토큰을 도입한 더 큰 목적은 이른바‘삥땅’의 방지였다. 대부분 가난 한 농어촌에서 상경한 안내양들은 적은 월급을 받아서 얼마간 떼어서 시골로 부쳐주고 나면 밥먹고 살기에도 힘든 처지였다. 그래서 안내 양들이 현금으로 받은 버스요금을 몰래 몸속에 감추어 횡령하는일(속칭 ‘삥땅’)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버스회사들은 삥땅을 막기 위해 승객이 탈 때 승하차 계단을 밟으면 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적으로 탑 승객수가 계산되는 요금계수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계수기가 없는버 스에는 회사 측이 안내양을 감시하는 비밀감시원(암행)을 태우기도 했 는데 이들은 탑승객 수도 헤아리는 역할도 했으니 말하자면 인간계수 기였다. 토큰은 현금이 아니기 때문에 버스 회사로서는 삥땅 걱정이 줄어들었다.



요금 인상철에 토큰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토큰은 문제도 많았다. 요금 인상철이 다가오면 토큰 판매소는 어른, 학생 할 것 없이 토큰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토큰 없음’이라 는 글씨를 써 붙인 판매소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국 은 요금을 올릴 때마다 토큰의 색깔을 바꾸었다.

학생 토큰 구하기는 정말‘하늘의 별따기’일 때가 많았다. 학생들은 한 달 치를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하는 데다가 가격이싼학생용 토큰을 사용하는 어른들도 더러 있었다. 귀한 학생 토큰은 나오기가 무섭게 다 팔려버렸는데 그 때문에‘반짝 토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를 악용해 학생 토큰을 사모아 웃돈을 받고 파는 악덕노점상이나 행상까지 생겨났다. 말썽이 끊이지 않자 당국은 1979년 5월 1일부터 학생 토큰을 없애고 회수권 제로 바꾸었다.

어떤 학생들은 10장짜리 한 묶음을 11장으로 교묘하게 잘라서사용하기도했는데회수권크기가작아서잡아내기가어려웠다. 그래서 회수권은 몇 년 후부터 크기가 조금 커지게 된다. 토큰과 회수 권은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던 요긴한존 재였다. 어차피 주인도 버스를 타고 다니니까 말이다.

안내양과 함께 버스에서 밀려난 토큰과 회수권

버스 승객이 줄어들고 카드 사용으로 요금 정산이 간편해지면서 토큰 과 회수권은 버스 안내양과 더불어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안내양 은 1970년대 중반 5만여 명에 육박했으나 1982년 8월 시민자율버스 제도가 도입되고 1984년 11월 1일부터는 버스요금을 지금처럼 앞문 으로 탈 때 미리 내고 뒷문으로 내리는 선불제가 시행되면서 점점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안내양이라는 직업이 먼저 없어지고 나서도 토큰 과 회수권은 한동안 제구실을 했으나 교통카드라는 전자식 도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글. 손성진 (서울신문 편집국장) 사진. 서울신문, 버스운송사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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