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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례악의 시작과 끝, 변화를 알렸던 잊혀진 소리들
작성일
2016-02-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070

소리를 벼리다 제례악의 시작과 끝, 변화를 알렸던 잊혀진 소리들
나무로 만든 우리의 악기, 박·축·어 나무의 속성을 생각한다. 늘 한 자리에 서서 그늘이 되고 쉼터가 되고, 수명이 다하면 베어져 궁궐이 되고 집이 되며, 다시 식탁이 되고 책꽂이가 되어 우리 곁을 지킨다. 어디 그뿐이랴. 온갖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어 오묘한 울림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조선 시대 최고의 악서(樂書)『악학궤범』에서는 악기의 재료 ‘나무’가 내는 소리의 특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무 소리는 곧다. 곧아서 바른 것을 세우고, 바르면 욕심이 적다. 나무 소리가 바르면 사람은 자신을 깨끗이 할 것을 생각한다

 

나무의 덕목은 ‘곧음’이라 했다. 곧아서 욕심이 없는 나무, 그런 까닭에 소리도 곧고 바르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을 깨끗이 단속한다고 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무가, 나무의 울림이 주는 혜택은 적지 않다. 그 울림만으로도 좋은데, 그 소리가 혼탁한 정신을 깨끗이 해준다 했으니, 나무로 만든 대표적인 우리 악기를 만나 보려 한다. 늘 곁에 있지만 우리가 내어주지 않아 자주 접하지 못했던 악기 박(拍), 축(祝), 어( 敔)를 만나보자.

 

 

※QR코드를 통해 생생한 종묘제례악을 만나보세요.Ⓒ 국립국악원

지휘를 이끄는 전악의 ‘박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지휘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전악(典樂)이라 하는데, 박은 전악이 들고 연주하는 악기이다. 악대가 음악연주를 하기 위해 모두 집중하고 있을 때, ‘쩍’하는 박의 소리가 울리는 순간, 연주회장은 장엄하고, 운치 있는 음악으로 물들게 된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연주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 역사가 깊다. 왕실에서 큰 규모의 음악을 연주할 때 주로 사용됐다. 박은 긴 나무 여섯 조각의 윗부분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다. 예전에는 박달나무나 뽕나무로 많이 만들었다. 산유자나무나 대추나무도 좋은데, 단단하고 빛이 좋은나무면 모두 박이 될 자격이 있다. 음악을 시작할 때 한 번 치고, 음악을 마칠 때 세 번 친다. 또 음악을 전환할 때나 춤의 대형이 바뀔 때에도 박의 소리가 춤을 이끈다. 박을 치는 사람은 서양음악의 지휘자와 같이 전체 음악을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악기의 아랫부분을 잡고 부채를 펴듯이 펼쳤다가 다시 오므릴때 세게 부딪치면 나무가 울려 소리가 난다.

땅과 하늘을 열어 시작을 알리는‘축

 

축은 어와 함께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악기이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를 위한 종묘제례, 혹은 공자와 여러 유학자를 위한 문묘제례, 그리고 토지신과 곡식신을 위한 사직제례와 같은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한다. 악대의 동쪽에 배치하여 음악을 시작할 때 연주한다. 만물이 생성하는 시작이 봄인 것을 상징하여 동쪽의 빛깔인 청색으로 칠한다. 상자 모양의 몸체 윗면에 구멍을 뚫고 역 ‘T’자 모양의 채[止]로 절구질하듯이 두드려 소리 낸다. 예전에는 네모난 상자 사방 한 변의 길이를 ‘2척 4촌’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24절기를 모방해서 그 ‘시작’을 상징한 것이라 하였다. 악기를 연주할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수직적 동작은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은 음양의 ‘양’을 상징하여 ‘시작’을 의미한다. 고려 예종 때에 중국에서 유입된 이후 제사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된다.

다시 하늘과 땅을 이어 끝을 알리는‘어’

 

어는 축과 함께 제사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된다. 악대의 서쪽에 배치하여 음악을 마칠 때 연주한다. 해가 기울면서 하루를 마치는 자연의 이치를 반영하여 서쪽의 빛깔인 흰색으로 칠한다. 엎드린 호랑이의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호랑이의 등 위에 27개의 톱니 모양이 튀어나와 있다. 한쪽을 잘게 쪼갠 대나무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먼저 치고 등에 있는 톱니 부분을 훑어 내리며 세 번 반복하여 연주한다. 축과 달리 수평적인 동작으로 채를 치는데, 이는 수직적인 동작으로 열었던 땅과 하늘을 다시 맞닿게 하여 음악을 그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어는 음양의 ‘음’을 상징하여 ‘끝’을 의미한다. 음악을 시작할 때 연주하는 ‘축’과 짝을 이룬다. 축과 마찬가지로 고려 예종 때에 중국에서 유입된 이후 제사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된다.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박, 악대의 동쪽에 배치하여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축, 그리고 악대의 서쪽에 배치하여 음악의 끝을 알리는 어. 이 세 악기는 모두 과묵한 나무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 악기가 선사하는 울림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무뚝뚝한 나무의 속성 그대로여서 소박하지만 깊은울림을 준다. 나무의 속성이 곧아서 바른 것을 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악기들의 소리는 과거 왕실에서 전승되었던 일부 연향음악, 혹은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 사직제례악과 같은 제례음악을 찾아 들어야 비로소 접할 수 있다. 이 소리의 곧은 울림만큼은 늘 곁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시작해야 할 때와 마쳐야 할 때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곧고 바른 울림이 필요할 때, 적막을 가르는 박의 힘찬 울림과 함께 시작되는 음악들, 그리고 축의 소리와 함께 시작하고 어의 소리와 함께 마치는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과 같은 음악을 찾아들어 보자.

 

글‧송지원(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사진‧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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