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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일항전 정신을 지켜준 보루堡壘 『애국가 유성기 음반』
작성일
2015-10-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065

대일항전 정신을 지켜준 보루堡壘 『애국가 유성기 음반』.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있는 각종 독립운동 유물 중 『애국가 유성기 음반愛國歌留聲機音盤』(등록문화재 제504호)은 100년 넘은 역사를 지닌 흥사단 미주 지부에서 기증한 161매의 음반자료 안에 포함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소장 H1972-5의 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동 음반은 광복 이전 일제강점기 재외동포들에 의해 레코딩된 유일한 애국가 음반자료로서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애국가 유성기 음반은 한쪽 귀퉁이가 약간 훼손된 채 기증되었다. 레코드 자체에 내용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 본 음반의 정확한 서지사항을 파악할 수 없었으며 동시에 음원을 재생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관되었다. 독립기념관은 동국대학교 한국음반아카이브 연구소에 의뢰하여 음원을 완벽하게 재생하였다. 음원을 재생하는 데는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었다.

01.『애국가 유성기 음반』(등록문화재 제504호)는 1942년 미주지역 대한인국민회가 제작한 음반으로, <구애국가>와 안익태 작곡 <애국가>, <무궁화 삼천리가> 등 총 3곡이 녹음되어 있다. ⓒ문화재청

 

<애국가>는 언제 만들어졌나

『애국가 유성기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의 유래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 노래들은 일제강점기에 해외의 동포들에 의해 제작되어 국가國歌로서 존립하며, 재외 동포사회는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개항 이래 한국은 근대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였고, 1902년 독일인 에케르트에게 의뢰하여 대한제국의 국가를 제정, 공포한 바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애국가>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무궁화가無窮花歌>는 1896년 11월 독립협회가 추진한 독립문 정초식장에서 배재학당의 학생들에 의해 처음 불리어졌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자인Auld Lang Syne>의 곡조를 차용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라는 후렴구를 갖고 애창되었다. 한편 대한제국의 국가도 학부學部를 통해 학교와 민간을 통해 정책적으로 배포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운명처럼 쇠퇴해버린 반면, 민간에서는 <무궁화가>가 생명력을 갖고 전파되어 <애국가>로 자리 잡았다.

신민회는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무궁화가>의 가사가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무궁화가>를 골격으로 삼아 <애국가>가사 짓기 운동을 전개하고, 새로운 국민가國民歌보급에 나섰다. 여기에 신민회 회원들과 이상준, 김인식, 이성식 등 역시 신민회원인 음악인들이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기존의 <무궁화가>와는 다른 여러 버전의 <애국가>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02. 미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는 1936년 3.1절 기념식 때 새 <애국가>를 제창하기로 결의했으며,『 대한국애국가』라는 이름의 악보집 책자로 출판하여 미국 전역으로 보급하였다. ⓒ문화재청

 

공식 국민의례 국가로 제창된 <애국가>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대한제국은 멸망하였으나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무궁화가>를 대신하여 현행 가사의 <애국가>가 국가로서 제창되었으며, 3.1운동 이후부터 광복되기까지 중국 관내와 만주 전역, 연해주 일대와 하와이, 북미, 그리고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사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등의 공식회의와 교민사회가 주최한 3.1절 기념식 등 모든 국경일에 <애국가>는 민족의 노래로, 국가로서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러나 외국어 곡조의 <애국가>가 한국을 대표할 수 없다고 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1930년에 미국으로 유학한 안익태는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때 <애국가>를 듣게 되었고, <애국가> 곡조를 자신이 작곡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35년 11월 어느 날, <애국가> 곡조를 작곡했노라고 그는 회고하였다. 이후 안익태는 <애국가>를 주제 선율로 한 교향곡 <한국환상곡(Korea Fantasy)>을 완성해 1938년 10월에 자신의 지휘로 베를린에서 초연하였다.

1936년 3.1절 기념식 때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에서는 새로운 <애국가>를 제창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미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는 1936년 3월에 『대한국애국가』라는 이름의 악보집 책자를 출판하여 미국 전역으로 보급하였다. 1940년에 들어와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와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새롭게 만들어진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제정할 것을 결정하였다. 1942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승전을 위해 적극 대일항전에 뛰어든 한인들이 국치일인 8월 29일에 로스엔젤레스 시청에 태극기 현기식을 거행하기로 예정하면서 미주 한인들이 새로운 곡조의 <애국가>를 익혀 제창할 수 있도록 레코드로 제작하여 보급에 나섰다. 이렇게 하여 로스엔젤레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중앙상무부 주도 아래 1942년에 『『애국가 유성기 음반』이 제작되었다.

레코드 앞면에는 <애국가>의 옛 곡조인 <올드랭자인Auld Lang Syne>의 선율과 새 곡조인 안익태 작곡 <대한국애국가>의 선율에 애국가 가사를 1절에서 2절까지 붙여 녹음하였다. 이 <애국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나성(L.A) 한인청년연합승리창가대(The Korean Victory Chorus)의 합창으로 녹음되었다. 이어 올드랭 자인(AuldLang Syne)의 곡조의 <구 애국가> 역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재미성악가 이용준의 독창으로 녹음되었다. 레코드 뒷면의 <무궁화가>도 한인청년연합승리창가대의 합창으로 녹음하였다. 음반뒷면에 수록된 <무궁화 삼천리가>는 작사·작곡 미상에 악보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무궁화 삼천리 내 사랑아…”로 시작하는 무궁화를 찬양하는 노래이다. 대한인국민회는 8월 29일 의현기식에 앞서 레코드를 보급하여 새로운 애국가의 곡조를 익혀서 행사에 참여한 교민들이 새 <애국가>를 제창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재미한인 9개 단체의 연합체인 재미한족연합회도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공식 애국가로 채택하였다. 재미한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를 지지하였으며 새 <애국가>는 한국인들에게 애국정신을 불어넣어주고 강인한 대일항전의 정신을 지켜주는 보루堡壘가 되었다.

 

글. 이명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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