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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학과 민간의 노력이 빛난 데라우치문고(寺內文庫) 환수
작성일
2016-06-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40

대학과 민간의 노력이 빛난 데라우치문고(寺內文庫) 환수 처음 이 명칭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게 뭐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그런 데라우치문고도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익숙한 용어가 됐다. 1995년 11월 일본 야마구치현에서는 일본의 야마구치현립대학과 한국의경 남대학교 간에
일제강점기 당시 유출돼 야마구치현립대학 데라우치문고에 보관되어 오던 한국관계 자료 중, 일부를 경남대학교에 기증한다는
‘기증각서’가 체결되었다. 이듬해 1월 24일, 그 각서에 따라 98종 135책 1축(分財記)의 한국관계 자료가경 남대학교에 도착했다. 경남대학교 박물관 데라우치문고 전시실

한·중·일 등 고전 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사설 도서관

‘데라우치문고’는 조선 제3대 통감이자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1852~1919)가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수집한 고전 서적 등을 이용해 세운 사설 도서관이다. 문고는 데라우치 생존 시에 계획되었지만, 실제 문을 연 것은 그의 사망 후인 1922년 아들 히사이치에 의해서다. 데라우치가 죽기 전에 작성해둔 『오호문고 기』➊에 의하면, 이는 일반 도서관이 아닌 ‘지역 향당자제들의 역사의식 고취’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둔 역사 전문 도서관을 세우고자 하였다. 때문에 자료의 수집 역시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육군대장이었던 히사이치도 사망하면서 데라우치가도 더는 문고를 운영하기 어려웠다. 이에 1941년에 설립된 야마구치여자전문대학(지금의 야마구치현립대학)은 데라우치가의 협조를 얻어 문고를 대학 도서관으로 사용하였고(1946년), 이후 데라우치가로부터의 기부 채납이 이루어짐에 따라 그 소유권까지 갖게 되었다(1957년). 현재 데라우치문고는 야마구치현립대학 도서관 2층의 개인 기증문고실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의 자료 18,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고, 한국관계 자료는 1,000여 종 1,5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1996년에 경남대학교로 기증된 한국관계 자료는 이들 중 일부이다.

데라우치문고와 경남대학교의 만남

그렇다면 한국관계 자료가 어떻게 해서 경남대학교로 오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경남대학교는 물론, 민·관 공동의 노력이 큰 역할을 하였다.

경남대학교는 1996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사업을 구상하던 중, ‘해외 유출 우리 문화재의 귀환’이란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박재규 총장을 중심으로 전문 인력으로 조사단을 꾸리고, 도쿄, 교토 등 일본의 주요 도시에서 그 대상을 찾아 2년여의 공을 들였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여름 어느 날, 조사단은 일본의 나리타공항에서 국회 한일의 원연맹 한국 측 간사로 활동하던 김영광(1931~2010) 의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였다. 이에 김영광 의원도 기회가 되면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김영광 의원으로부터 지금의 야마구치현립대학에 데라우치문고가 있고, 거기에 한국관계 자료가 대량으로 소장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경남대학교가 데라우치문고 환수에 나서기 전인 1990년대 초, 고성 이씨 가문에서는 그들 선조이자 고려 말 송설체의 대가인 행촌 이암(1297~1364) 선생의 필적을 찾아 나섰다가, 데라우치문고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종친회에서는 문고를 방문하여 확인하였고, 귀국 후에는 그곳에 수많은 한국관계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고하였다. 이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직접 데라우치문고를 찾아 조사하는 한편, 국가 차원에서 그것의 환수에 나섰지만 별 진척을 보지 못했다. 사정을 파악한 경남대학교에서는 데라우치문고의 환수를 국가가 아닌 순수 민간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하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교적 문제 등은 한일의원연맹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시 경남대학교가 소재한 경상남도는 일본의 야마구치현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대학교 또한 야마구치 현립대학과 학술교류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경남대학교는 지속적으로 야마구치현립대학을 설득하였고, 다카야마 오사무 학장도 경남대학교의 취지를 공감하면서 데라우치가를 설득해 기증을 성사시켰다.

고국으로 돌아온 유물들은 당시 문화재위원장이었던 임창순(1914~1999) 선생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직접 방문하여 선별하였다. 그런 만큼 이들 유물들은 문화재적으로나 사료적으로도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유물 중 『유한지예서기원첩』은 보물 제1682호로 지정되어 있고, 나머지 유물들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이들 자료는 현재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한마고전총서』라는 이름의 자료집으로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또 다양한 전시와 도록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소개되었다. 현재까지 『한마고전총서』는 모두 제16집이 출간되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과 대학 박물관 등에 연구 자료로 무료 배포되었다. 또 2014년에는 국외 소재문화재재단과 『돌아온 문화재 총서 2』로 2권의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➊ 오호(櫻圃)는 데라우치의 고향(山口縣 吉敷郡) 미야노(宮野)의 벚꽃동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글+사진‧김원규(경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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