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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야생화와 전설을 그린 ‘플로렌스 크레인’
작성일
2017-07-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041

한국 야생화와 전설을 그린 ‘플로렌스 크레인’ - 1913년 목사인 남편을 따라 미시시피를 떠날 때만 해도 플로렌스 크레인은 선교지라는 것 외, 한국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저 오지의 나라였다. 평소 즐겨 그리던 야생화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향할 때 그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숙명처럼 한국의 꽃과 이야기에 반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 식물학적 자료로써 높은 가치를 갖는 책자『한국의 들꽃과 전설』의 탄생은 한국 꽃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빚은 결과물이었다.

한국 꽃에 대한 방대한 자료 수집

순천에 안착한 플로렌스 크레인. 순천 주변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보았던 꽃은 물론 한국에서만 자라는 꽃들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플로렌스 크레인은 한국의 꽃에 매료됐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논두렁과 밭두렁을 누비며 수시로 한국의 야생화를 찾아 나섰다. 발견한 꽃은 화판에 담았다. 식물을 쫓다 보니 한국의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두기 시작한 그녀는 학생들에게 서양 화법을 가르쳤다. 학교에서 짠 비단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고 채색을 해서 상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새로운 꽃을 찾아 화판에 옮기면서 한국인들이 부르는 꽃 이름, 그 안에 담긴 뜻과 유래에 대해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풀기 위해 플로렌스 크레인은 나이든 유학자와 평범한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린 학생 등 그 모두를 선생으로 삼았다. 그들로부터 전해 들은 꽃에 얽힌 사연, 전설, 민요 등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한국의 풍습과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플로렌스 크레인은 자신이 모은 자료의 가치를 인식했고 책으로 엮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를 원했다. 1926년 휴가차 본국에 들른 부부는 그동안 그린 그림과 원고를 가지고 출판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명칭 등의 미흡함으로 인해 출판이 미뤄졌다. 식물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할 때,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과 세계규약에 따른 명칭(학명)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학문 수준이 미흡한 탓에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동경제국대학 나카이 박사와 게이요 대학 이시도야 박사의 도움을 받아 학명 수록을 끝낼 수 있었다. 세계적인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박사와의 인연은 플로렌스 크레인에게 행운인 동시에, 그의 감수가 이 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임으로써 귀중본으로 인정될 가치를 갖게 했다. 그렇게 1931년 일본 센세이도 출판사에서 첫 번째 출판을 하게 된 <한국의 들꽃과 전설>은 45개의 화판으로 조합했으며, 천연색(7색) 목판인쇄로 출간됐다. 책자는 미국의 맥밀란사에 의해 배포됐다.


이름에 담은, 꽃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

출판된 책에는 148종의 한국 식물이 소개됐다. 그녀의 그림은 전형적인 세밀화 기법은 아니었지만, 식물의 특성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묘사가 뛰어났다. 식물 소개는 한문을 포함한 한국명이 모필(붓인 것으로 생각됨, 원본을 볼 수 없어 추정함)로 첫 단에 적었고, 그 밑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학명, 영명, 영어로 번역된 한국명을 순서대로 기록했다. 특히 우리말의 꽃 이름 뜻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전설과 연계할 수 있게 했고 한문으로 표기된 이름도 뜻을 적었다.

예를 들어 며느리꽃(현재는 며느리밥풀이라 부름)을 ‘Daughterin-Law Flower’. 골담초(骨膽草)를 ‘Bone Carrying Herb’라 적었고, 할미꽃은 ‘Grandmother Flower’ 무궁화는 ‘Everlasting Flower’등으로 표기해 우리말의 뜻을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도 익숙하지 않은 꽃과 관련된 시 구절까지 소개하고 있으며, 한문으로 된 글이나 고전에 등장하는 내용은 한자와 한국말에 능통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수록했다. 미국에서쉽게 볼 수 없었던 개나리를 설명하며 개나리가 장원급제한 재원에게 왕이 내리는 어사화에 포함된다는 전통까지 담겨 있어 감탄하게 된다. 책자에는 야생화뿐 아니라 식용작물인 벼와 고추, 인삼, 미국에서 재배되지 않는 감도 함께 등장한다.

(좌)며느리꽃 (우)백일홍나무

식물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갖는 자료

플로렌스는 예술적 소질 못지않게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우리 꽃이 가진 종의 다양성을 보고하기도 했다. 이른 봄에 피는 갯가의 버들강아지를 대부분 한 가지 종류거니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녀는 그 특성을 찾아내어 4개의 버들강아지 종을 보고했고, 제비꽃의 종류를 12가지나 찾아냈다. 이러한 작업은 식물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귀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비전문가에 의해 저술됐다는 점과 나카이 박사로부터 감수받은 학명을 옮겨 적고 번역하는 동안 적잖은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령, 꽃창포(Iris ensata)를 창포라 적어 붓꽃속 식물을 천남성과 식물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하는 식이다. 더 나아가 고등학교 3학년인 어린 학생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은방울꽃인 Lily-of-the-Valley를 ‘비비추’라 했고, 참나리(Tiger Lily)를 글자 그대로 직역해 ‘호랑이 백합’이라 번역하기도 했다. 역자가 번역문과 함께 영어 원문을 같이 실었기 때문에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의 들꽃과 전설』이 비전문가에 의해 저술됐고, 번역과 재출판 사이에서 오류가 쌓였다 해도 그 가치는 조금도 저하되지 않는다. 플로렌스 크레인이 가진 한국 꽃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없었다면 이 귀중한 자료가 오늘날 우리 손에 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초판은 일찍이 품절이 돼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영어 속담처럼 ‘암탉의 이빨(Hen’s teeth)’만큼이나 찾기 어려운 책이 되었다. 재출판하고자 했을 때 목판이 2차 대전 중 부서지기는 했지만, 사진 오프셋 기술로 원본과 같은 책을 찍어낼 수 있었다. 원화를 찾을 수만 있다면 원본(초판)을 살리고, 전문가들이 오류를 바로잡아 원문과 수정본을 합해 다시 한 번 출판함으로써 가치를 더욱 높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글‧윤경은(식물학자 교수) 사진‧ 『한국의 들꽃과 전설』선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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