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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시원적인 재료에서 비롯되어 원적인 가치를 이루는 건축의 길을 생각하며... 건축가 조남호
작성일
2012-02-1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834

 한옥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고자 하는 건축가
시경詩經을 보면 ‘솔토지빈率土之濱’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다에 이르는 땅의 끝, 곧 온 세상을 뜻하며, 두 자로 줄여 ‘솔토’라고도 한다. 하나의 구조물로서가 아니라 자연이 그렇듯 삶의 터전이나 환경으로 건물을 이해한다면 건축은 솔토지빈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명을 지은 원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런 짐작을 하며 솔토건축사무소를 방문했다.

사무실 곳곳에는 설계도면들이 세워져있고 수납장 위나 창문난간 같은 빈 공간마다 크고 작은 건물모형들이 놓여 있었다. “그건 2010년에 건축된 서울시립대 강촌수련원이에요. 강의실과 홀, 식당 사이에 접이식 칸막이가 있어 전체를 한 공간으로 쓸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분리시킬 수도 있는 구조를 갖고 있죠.” 사람들은 그의 건축에서 전통한옥과 차별된 목조건축의 새로운 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한옥은 이미 과거부터 굉장히 자유로운 평면의 구조를 갖고 있다.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려 짓는 벽식 구조의 서양식 건축에서 평면은 철저히 고정되어 있지만 기둥과 보로 엮여있는 한옥의 벽은 언제든 털어내고 다른 위치에 다시 세울 수 있다. 그것이 조남호 소장이 얘기하는 한옥의 자유로운 평면의 구조다. “목조건축을 공부하면서 들여다보니까 한옥은 현대건축의 요소를 많은 부분 갖고 있어요. 깊이 연구하지는 못했지만 건축가로서 한옥을 항상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또 제 작업에서 그 가치를 활용하려고 애를 쓰죠.”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어진 목조건축
조남호 소장이 목조건축을 시작한 계기는 오래 전부터 가졌던 소신에 연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목조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8년 IMF라는 국난이 찾아왔을 때였다. 경기침체의 여파는 모질게 건축시장을 파고들었고 건축사무소에는 일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매출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원감축 없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직접 시공을 하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건축은 전문분야로서 시공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목조건축은 목수를 중심으로 비교적 단순화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목조건축을 시작한 계기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목조건축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건축의 지향점은 가치적인 것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 일본의 주택이 현대주택으로 오면서 굉장히 단순해 졌다고 본다면 한옥의 미래는 그렇게 단순화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한옥의 본래 가치를 잘 유지하면서 현대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죠.” 캐드앤캠시스템(CAD&CAM)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가공기술은 재료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매번 자르는 위치를 달리해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낸다. 기둥의 크기나 간격이 불규칙한 것이 더 이상 한옥의 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렇듯 한옥의 변화는 그것의 비효율성 때문이 아니며 새로운 장르로서 진행되고 있다.

 

건축문화재에서 얻는 지혜와 감동, 그리고 꿈
“지금까지 자본의 논리나 대량생산의 논리에 의해, 혹은 힘 있는 사람들이 이끄는 거대담론에 의해 구축법이 흘러온 부분도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건축은 사람 중심으로 옮겨와야 하고 환경 중심으로 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남호 소장은 결과물로서의 건축뿐 아니라 짓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공주체의 목적보다는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주목해야하고, 그들의 역할과 관계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다.

한옥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가려는 건축가, 조남호 소장은 현존하는 건축문화재들을 대할 때 공간과 시간의 저편을 보려 애쓴다. “직업상 단순히 형상만 보지는 않죠. 의성김씨 종가처럼 성리학의 대가들의 집들은 보면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힘 있는 질서들이 평면에 살아있어요. 또 해남 녹우당에 가면 실학자 가문의 집답게 자유로운 구성을 갖고 있고 실용적인 태도들을 볼 수 있죠. 예산 추사고택에 가면 그 시대 추사선생의 삶의 철학이나 사상들이 실제 그 집의 구성에서 느껴지죠. 그런걸 보면 건축이 삶의 형상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어요.” 추사고택의 안채는 매우 엄격한 대칭형태의 모듈을 갖고 있다. 또 안마당에는 당시의 일상적인 생활과 정신적인 세계관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기하학적 질서에서 비롯된 것이고, 목구조에 의해 구축된 아주 건강한 건축의 모습이다. 한옥은 비싼 재료로 마감한 건축물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가 내구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삶과 정신을 아우르는 느슨한 얼개와도 같은 모습이다.

건축문화재는 이렇듯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적, 정신적 가치들이 건물로 형상화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효율성과 편리성에 초점이 맞춰 있고 때로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본래의 목적을 잃은 지금의 건축을 볼 때 조남호 소장의 안타까움은 크다. 과거의 가치와 지금의 가치를 등가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원형이 많이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타의 건축문화재들이 조남호 소장에게 자신의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 견주어 보게 하는 건축이라면, 종묘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길고 깊은 울림을 주는 건축이다. “당시의 시대의 염원을 담고 있으면서 엄격한 질서가 존재하고, 그것이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긴 시간 동안 네 칸씩 증축되어온, 단순히 건축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큰 힘을 갖고 있는 건축이죠. 두 번 가보았는데 그걸로 더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게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요즘 조남호 소장은 건축학을 전공한 두 교수를 위한 ‘살구나무 아래윗집’을 지었다.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물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인상을 가지면서도 나름의 존재감이 있는 집을 지어보자는 뜻 깊은 작업이다. 이 경험을 연장해 옛날 초가집이 그러했듯, 이 시대의 민가의 전형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이후에는 목조작업을 통해서 건축의 여러 가지 독창적인 유형들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 가치는 우리 전통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아주 미래지향적이거나 어떤 지역이나 특정한 프로그램을 담기 위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조상들이 건축에 담았던 진지함으로, 오늘의 우리가 찾아야 할 바른 삶의 공간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작업일 것이다.

 

글•성혜경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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