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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호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
작성일
2018-06-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275

창호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 ‘눈이 떠지자 창을 여니 아청빛 푸른 하늘이 문득 가을이다.’ 이는 은사 치옹(痴翁) 윤오영(尹五榮) 선생님의 수필 <백사장의 하루> 첫 구절이다. 이 수필을 지으신 며칠 후 말씀하시길, 이 구절은 송강(松江)의 <재 너머 성권롱집의 술 닉닷 말 어제 듯고, -->에 연유된 것이라 하시었다. 우리들 심상(心象)에는 고전을 통하여 체득한 간접체험의 그림자들이 녹아있고, 또 매일 매일 건축공간으로부터 체득한 공간정서의 그림자들이 켜를 지으며 남아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 창호, 나아가 전통 건축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일면들이 녹아들어 현대 건축의 새로운 모습들로 나타난다. 더욱이 일상적인 ‘봄’의 행위에서 벗어나 관심을 가지고 창호가 빚어내는 은밀한 몸짓을 찾아볼라치면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그리고 느끼지 못하였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01. 창덕궁 후원 연경당 사랑채. 사랑방 1간과 대청3간의 들어열개 창호는 모두 띠살창호이며, 바른쪽 누마루의 창호는 만자살창호이다. 02. 창덕궁 후원 연경당 중문간 행랑마당. 바른쪽 사랑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연경당(演慶堂) 사랑마당이다.

어느 날 문득,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창호

창호’는 어느 날 문득,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치옹 선생댁은 성신여고 아래 조고만 한옥이었다. 한때 이미 세놓으셨던 문간방(사랑)과 당신께서 쓰시던 건넌방 모두를 세놓으시고, 부엌간 위 다락에서 지내신 적이 있었다. 어느 달 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뒤치락거리시다가, 문득 머리맡 다락창에 달빛을 받아 드리워진 살대의 은은한 그림자에 시선이 갔고 이어 창을 열고 보니, 사방은 고요한데, 처마에 걸려있던 손바닥만 한 파란 밤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한옥 처마선의 아름다움과 처마로 둘러져 있는 손바닥만 한마당 하늘의 아름다움을 아시게 되었다고 하셨다.

봄도 좋고,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좋다. 마음먹고 창덕궁 후원 연경당 바깥마당으로 가보자! 불로문(不老門)을 지나, 정갈한 모래바닥 마당에 들어설라치면, 휘어져 내려오는 도랑과 냇물, 도랑 위에 걸린 판돌다리, 큰 느티나무, 그리고 층층이 단 지어 올라간 마당 저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행랑채와 단 지어 내려오는 사고석담, 이들 모두는 파란 하늘과 맞닿아 우리들 시각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도랑 바닥으로 시선을 옮기면, 무넘기들의 간격이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넓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느티나무 밑동의 도랑 마감돌이 반대쪽으로 불룩 튀어나오고, 도랑은 거기서 원호를 그리다가 다시 곧게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동산바치의 놀라운 솜씨를 알게 된다.

방지(方池)에 비친 파란 하늘과 나무 그림자들. 돌다리 앞 석함(돌로 만든 함)은 아름다운 괴석을 담고 있고, 석함 네 모퉁이에는 개구리 네 마리가 어느 놈은 기어 들어가고 어느 놈은 기어 나오고 있다. 솟을대문 양쪽으로 뻗어나간 행랑채. 행랑채 판장벽 위에 던져진 나무의 그림자들, 그림자들은 순간순간 자리를 옮겨 앉으면서 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석함의 개구리들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건축공간이 정적공간(靜寂空間)과 동적공간(動的空間)이 교차반복(交叉反復)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중문간마당이다. 중문간마당에는 솟을대문행랑채 처마와 기와골 그림자들이 너울너울 춤추고 있고, 맞은편 중문간행랑채 벽면은 처마와 반복하는 서까래 그림자를 받아 또 다른 율동과 대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03. 양동마을 서백당 사랑방 04. 양동마을 손동만씨 가옥 사랑방 창호와 난간 05. 산정화백댁 사랑방에서 바라본 대청과 누마루. 창호의 호지법은 내부공간에 독특한 공간정서를 이룬다.


창호의 살 짜임새가 이루는 다양한 몸새

우리 창호의 살 짜임새는 다양한 몸새를 이루고, 외적(外的)으로는 선적구성(線的構成)을, 내적(內的)으로는 면적구성(面的構成)을 이룬다.

중문간행랑마당, 바른쪽 사랑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연경당 사랑마당이다. 장대석 두벌대 위에 네모뿔대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굴도리로 가구한 오량가구(五樑架構)의 사랑채는 바라보는 왼쪽부터 누다락, 사랑방, 대청, 누마루이고, 그리고 사랑방과 누다락 뒤로 침방이 자리 잡고 있다. 1간 누다락과 사랑방 1간 툇간의 창호는 정자살짜임이고, 사랑방 1간과 대청3간의 들어열개 창호는 모두 띠살창호이다. 그리고 바른쪽 누마루의 창호는 만자살창호이다. 이처럼 사랑채 입면의 창호 살 짜임은 정자살에서 띠살로, 띠살에서 만자살로 변화한다.

우리 창호의 살 짜임새들은 실로 다양하다.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살 짜임 창호는 살창이다. 장방형 창울 거미에 수직의 살대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꽂은 창으로, 창호지를 바르지 않고 햇빛과 공기를 투과(透過)시킨다. 부엌 부뚜막 위나, 광의 벽 높이 자리하여, 햇빛과 반복적인 살대의 그림자들을 받아들이고 통풍과 환기의 통로가 된다.

띠살창호는 가장 폭넓게 쓰이는 창호이다. 서민주택의 일반적인 창이고, 제택의 덧창호(바깥창호)로 쓰인다. 궁궐, 사찰, 등의 덧창호로는 띠살창호 이외에도 정(井)자살, 빗살(교살), 만살빗살(격자빗살), 꽃살, 빗꽃살, 소슬빗꽃살 창호들이 있다.

덧창호의 안쪽 창호들로는 용(用)자살로부터, 만(卍)자살, 아(亞)자살, 귀(貴)자살, 귀갑(龜甲)살, 숫대살 창호들이 있고, 이들 살대짜임의 변형이나, 복합으로 이루어지는 변형창호들이 있다. 창호들의 다양한 살대 짜임은 우리 건축이 다양한 표정들을 짓게 하는 원천이다.

어디 그뿐만인가? 우리의 창호들은 창호지를 살대 안쪽으로 바르는 호지법(糊紙法)으로, 외적으로는 선적구성을, 내적으로는 면적구성을 한다.

중문을 들어섰을 때, 파란 하늘 아래의 아름답게 휘어진 용마루 현수선, 그에 맞선 기와 골과 기와 골들의 율 동, 용마루와 어울리는 처마의 현수선, 도리와 기단의 수평선들을 잡아매주는 기둥의 수직선들,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입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창호들과 창살짜임들, 나뭇결의 섬세한 선들, 이들은 서로서로 함께 어우러져, 우리건축이 외적으로 선적구성을 하고, 내적으로는 면적구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창호 窓戶 창과 지게문의 총칭으로, 건물 내부를 외부와 차단시키기 위해 창이나 출입구 등의 개구부(開口部)에 설치되는 각종의 창이나 문을 말한다. 우리의 창호는 미적인 비례감을 중시하며 공간의 변화에 따른 율동감을 생명으로 한다. 과장과 허식이 없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미적인 기준이 드러난다.


창호의 살 짜임새가 이루는 공간정서

창호의 살 짜임새는 주제의 반복과 변화로 율동성이 크면서도 통일된 공간정서를 이룬다. 예컨대 건축공 간에서 만살창의 만(卍)자 무늬는 같은 공간의 다른 창호나, 가구의 무늬로, 또 연속된 다른 공간이나, 방 밖 난간 살대의 짜임 무늬로, 담장과 굴뚝의 장식무늬로, 장소를 달리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장소를 달리하여 나타나는 주제의 반복은 손쉽게 공간정서의 변화와 통일성을 이루게 한다.

창호의 호지법은 내부공간에 독특한 공간정서를 이룬다. 밝은 햇빛은 처마의 그림자를 창호에 드리우고, 창살과 창살사이의 창호지에 은은한 그림자를 이루어 준다. 그것은 때로 소쇄(瀟灑)한 기분이나 아기자기한 정을 불러일으킨다. 달 밝은 밤이면 처마의 그림자, 뜰에 심은 벽오동이나, 느티나무 가지들과 잎들, 또 파초 잎의 그림자를 받아 한 폭의 묵화(墨畵)를 이룬다. 그리고 주야로 살대들이 창호지면에 던지는 그림자들의 율동과 그림자 두께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모습들이 변화하면서 미묘한 공간 정서의 변화를 이룬다.

우리의 창호는 창호지마감으로서, 바람소리, 나무잎 흔들리는 소리, 여름철 바깥마당 느티나무에서 구성지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 툇마루 밑 귀뚜리 울음소리, 가을날 뒤뜰 높은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을 보면서 ‘깍’, ‘깍’ 울어대는 까치 울음소리, 겨울철 눈 녹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落水)소리와 어울린다. 이들 자연의 소리들은 햇빛, 달빛과 함께 창호지를 투과하여 내부공간에 들어와 자연과 하나 되게 한다.

빛과 그림자, 그 둘 사이에 있는 창호는 개방성과 폐쇄성을 공존하게 한다. 우리의 건축은 오랜 세월동안 온돌과 마루의 두 가지 큰 바닥구조를 이루어 왔다. 이들로 우리 내부공간은 폐쇄성과 개방성의 이중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덧창, 미서기쌍창, 망사창, 흑창, 그리고 문렴자(門簾子), 머릿병풍, 다섯 겹으로서 손쉽게 폐쇄성을 이루는 한편, 이들 창호들 모두가 열리는 순간 개방성을 이룬다. 또한 우리 창호에는 독특한 ‘들어열개’ 개폐법이 있다. ‘들어열개 분합’을 접어 들쇠에 매달면, 그 순간부터 기단(基壇)으로 대지(大地)와 분리되었던 인공적인 건축공간이 자연공간과 합일하게 된다.

우리의 창호는 담장 안만이 아니라, 담장 밖 자연, 모두와 하나 되게 한다. 우리의 창호들은 우리의 뜰이 거닐며 즐기는 소요정원(逍遙庭園)이 아니라, 좌식생활의 기본바닥인 온돌이나 마루에 앉아 내다보며 즐기는 조망정원(眺望庭園)의 성격을 갖게 한다. 그리고 담장에는 교살창이나, 살창을 달아 이 마당과 저 마당이 서로 침투케 하며, 살창 밖으로 흘러내리는 냇물을 바라봄으로써 담장 안[內]만이 나의 정원이 아니라, 담장 밖[外] 자연 공간 모두가 정원이 되게 한다. 이로써 ‘나’는 자연과 하나 된 존재로서, 자재(自在)하게 되는 것이다.


글. 사진. 주남철(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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