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21세기를 살아가는 ‘민화의 변주'
- 작성일
- 2016-02-02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673
첫 번째 담론, 민화 그것이 알고 싶다!
오형신 : 현대적으로 해석한 저희들의 작품을 말하기 전에 먼저 민화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민화라는 용어 자체는 일본 미술가에 의해 명명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속화’라는 표현을 썼죠. 하지만 현대에 들어 ‘민화’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민화란 무명인(無名人)에 의해 그려진 대중적 실용화를 뜻하는데요. 민화와 정통 회화를 정확히 구분 짓기는 어렵습니다. 두 회화 자체가 상당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권정순 : 무명 화가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해학적 유머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 전문화가들이 공들여 그린 궁중회화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필치가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민화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 부귀와 영화를 바라는 ‘모란’, 출세를 염원하는 ‘어변성룡도’, 학문 숭상에 대한 ‘책가도’ 등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점은 민화가 가진 강한 큰 특성입니다.
오형신 : 저 역시 그러한 부분 때문에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주제의 다양성이죠. 무속,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 등 수많은 주제를 대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그림마다 민족 문화를 폭넓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가 미상이기에 좀 더 자유롭게 사상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 담론, 현재로 이어지는 ‘민화’의 재탄생
오형신 :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민화를 도자기로 입체화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민화가 담고 있는 주제를 파악하고 이것을 입체화시키는 데는 대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수반돼야 했습니다. 그림 속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이나 상황을 독자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이니깐요. 민화라는 아주 친근하고 아름다운 민속화를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고자 함이 이번 창작의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권정순 : 제가 그리는 민화는 엘리트 화가들이 그린 궁중회화를 포함해서 무명 화가들이 그린 서민 그림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처음 민화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색채’였던 것만큼 제 작품 또한 화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색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 창작방향 또한 민화의 아름다운 색채를 재현하고 나아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민화의 아름다운 색채는 전통 시대의 주류 회화였던 수묵화나 문인화 등이 지니지 못한 특징이지요.
오형신 : 맞습니다. 색채만큼 민화에서 무궁무진한 게 바로 ‘소재’입니다. 예부터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민화의 소재이자 대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친숙한 나머지 민화에 대한 고정관념도 단단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문화의 일부분인 민화를 재해석하고 도자기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신선함을 안겨줌으로써 민화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옛 전통 민화 속의 ‘호랑이 재해석’입니다. 도자기를 사용하여 호랑이의 해학적인 모습과 액운을 막는 민화 속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 담론! 점차 잊혀지는 민화
오형신 : 민화에서의 대상과 주제들이 우리들에게 너무 친근한 나 머지 다른 전통 회화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권정순 : 말 그대로 유명하지 않은 서민작가들에 의해 그려져 서민들의 생활공간을 장식하던 민화였기 때문에 대체로 작가도 분명하지 않고 그려진 시기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일관된 양식도 찾기 어렵죠. 이런 점들은 학문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들입니다. 그래서 미술사학과 같은 주류 학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민화는 분명히 존재해야 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의 주체가 되는 서민, 즉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심성과 미감(美感)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담론!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
오형신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전통에 대한 친근감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전통인 것이죠. 다만 이 내재되어 있는 친근감이 점차 잊혀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에서 파생된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한국의 전통문화야 말로 우리 몸과 정신에 맞게 발전·계승된 문화입니다. 전통은 곧 주체성입니다. 주체성을 잃게 되면 미래에 대한 방향조차 제시하지 못합니다.
권정순 : 요즘 문화예술계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가 ‘글로컬리즘’입니다. 세계인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글로벌한 미감은 바로 전통에 뿌리를 둔 민족적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말이지요. 어떤 획기적인 현상도 전통과 단절된 상태에서는 생명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타의에 의해 여러 번의 심각한 전통의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는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전통은 낡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발판입니다.
글‧최용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