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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과의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선조의 공간감각
작성일
2012-05-0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856


바람을 벗 삼아, 햇빛을 벗 삼아

현대에 사는 우리는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그 건물 주인의 생활철학을 느끼는데 한계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동호정(東湖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은 다르다. 동호정은 주변 수목과의 어울림을 강조한 정자이다. 또한 군자정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0호)은 계곡 아래에 위치한 정자로, 계곡물에 의해 수만 년간 깎여 반질반질한 반석 위에 많은 물이 고이고, 그 사이에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계곡물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정자는 은닉이라기보다는 선비들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배울 수 있는 멋진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화려한 단청이 그려진 정자 건물이다. 이런 정자에 앉아 흘러가는 바위 사이를 스치는 물결을 보면, 잠시나마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평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계곡을 보며 시를 읊고 피리를 불며 자연을 벗 삼아 즐기던 선비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차를 함께하자고 손짓할 것만 같다.

가까운 일본이나 주변 나라의 정원건축과 우리의 정원건축을 비교해보면, 다른 나라 정원건축의 특징은 인위적인 연못을 만들고 그곳에 인공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자연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묻어 있다. 우리 조상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세상의 이치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연을 거스르기보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안기고자 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결과물이 한옥이라는 보금자리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우리 조상은 건물을 지을 때 자연의 이치를 인간 철학이 담긴 건물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 예가 담양의 식영정이다. 식영정을 지은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 중국 선비 중 그림자에 대한 갈등으로 고민하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몸에 붙어 다니는 그림자(인간의 번뇌와 고민)를 자신과 분리시키고 싶었으나 아무리 해도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나무 아래 그늘로 몸을 숨기니 그림자가 사라졌다. 서하당 김성원 선생은 이 이야기에서 진리를 얻고 사계절 그림자가 드는 소나무 숲 속에 그림자가 쉬어가는 뜻을 두어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사계절 내내 그림자가 들지 않도록 소나무 숲 속에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순리가 함께하면 어려운 번뇌로부터 심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철학을 우리 한옥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열린 공간으로 사람을 맞다

한옥이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은 공간 구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옥의 배치 구조를 들여다보면 자연을 벗 삼아 어울리고자 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주거용 공간은 태양의 흐름에 맞춰 동남향을 바라보고 장방형으로 배치했으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전망이 트인 곳을 명당으로 선택했다. 지붕 끝에는 처마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태양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방 안에 들지 않아 시원하며 겨울에는 낮게 비치는 햇볕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일조량이 적은 시기에 공기를 데워준다. 창호지에 비친 햇살은 기나긴 겨울을 쾌적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뒷건물은 앞건물보다 기단을 높게 만들어 태양 고도가 낮은 겨울에 집 안 가득 햇볕이 들게끔 했다. 이밖에도 한옥은 온돌을 이용한 겨울공간과 대청마루를 이용한 여름공간이 하나의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 점도 매력이다. 온돌은 중국의 ‘캉’이나 일본의 ‘다다미たたみ’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한옥의 부드러운 지붕선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좌우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위에 새끼줄을 걸고 하룻밤 동안 이슬을 맞아 늘어진 새끼줄 곡선을 용마루선으로 만들기에 자연을 닮은 지붕선이 나타난다. 이 모습은 마을 뒷산의 형상과도 닮아 있는데, 때문에 자연과 집이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 든다. 일본건축은 지붕선에 직선을 사용하고, 사용하는 나무들도 인공적으로 조각하여 반듯함을 표현한다. 중국은 하늘을 공격할 것처럼 강하게 표현하고, 그 위에 어마어마한 기와장식을 사용하여 자연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한옥은 최소한의 부분만 인위적인 가공을 하고, 경사진 곳이라 해도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짓는다.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집을 두르고 있는 담장은 그 높이가 제각각인데 사실 담장은 ‘내 집’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 분리의 역할보다는 집 전체를 아늑하게 감싸면서 건물 외의 공간으로 장독대와 텃밭을 만들어 건물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역할이 더 크다. 한옥에서는 마당을 외부공간이 아닌 지붕이 없는 내부공간으로 여기는데, 이는 건물 내부에서 할 수 없는 추수, 잔치, 음식 준비 등을 마당에서 모두 해결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다

우리 조상이 강조한 자연과의 소통은 바람과 햇볕이 드나들던 창에 있다. 거창 정온선생 고택의 내루(안쪽에 있는 보루) 전면 2분합 넉살무늬 불발기창은 가운데 ‘아亞’자 창틀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여름에는 삼면의 창문을 들어올려 누마루가 되고, 날씨가 싸늘해지는 계절에는 문이 곧 벽이 되는 묘미가 나타난다. 창문을 들어 천장에 걸면 자연스레 마당 한가운데 기둥만 지붕을 받치고 서 있는 오픈 공간이 된다.

사랑채 마당에는 화단을 꾸미고 좌우 담장 아래에 각각 화단을 만들어 다양한 나무와 꽃을 골고루 심고 괴석으로 장식해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사랑 내루 앞에 화단의 분홍색 철쭉과 붉은 장미가 피고, 아름다운 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사랑마당은 무릉도원처럼 보인다.

이처럼 전통 한옥의 문은 움직임과 분리가 가능해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분하고 연출할 수 있다. 눈썹지붕을 매달기 위해 반 칸 나간 지붕을 받치는 기둥과 그 안에 둥지처럼 품은 내루를 매달았는데, 이는 내루 안에 들어오는 햇살과 비바람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거주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뜻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한옥의 멋과 기능성을 조화시킨 발상은 예술적 극치를 보여준다.

건재고택은 자연의 이치를 건축에 응용한 사례가 매우 돋보인다. 먼저 설화산 계곡의 맑은 물이 북쪽 담장 아래로 흘러들어와 우물가 물과 합류하고, 사랑 담장 아래로 흘러 신선이 노닐 듯 아름다운 정원 연못에 다다른다. 연못에 다다른 계곡물은 정자에 앉은 주인에게 자신을 마음껏 보여준 후, 앙증맞은 인공폭포를 지나 사랑 바깥마당 담장 아래를 지나 다음 집으로 흘러들어간다. 물을 통해 자연을 이용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아름다움의 심성적 표현이다. 이 마을 상류 주택은 이처럼 물을 유입해 연못을 조성하고 아울러 화재를 대비했다. 한옥이 화재에 약한 것을 알고 대비책으로 물을 항상 가까이 있게 함으로써 화재예방까지 염두에 둔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 또 감탄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자연의 이치를 어느 것 하나 거스르지 않고 함께 나누면서 적절한 고집과 조화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우리 전통공예의 기법에 심취하여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오는 외국 사람들도 많아졌고, 특히 건축에서도 전통 한옥의 설계 아이디어를 배우고자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으로 찾아오고 있다. 전통한옥 마당과 후원의 자유로운 여유 공간 연출, 용도에 따른 절제된 생활공간, 서원건축과 향교건축과 같이 절제된 규율과 예절이 담긴 건축 등이 매력으로 보인다고 한다.

글·사진·서정호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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