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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우리 땅 우리 역사, 자연과 함께 하는 유적 여행-그 두 번째 이야기
작성일
2007-08-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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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의 미소와 만나다 - 운산 기행

 hspace=3 src=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과 상왕산 자락의 품에 감싸인 작은 산골마을. 그곳에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마애불이란 절벽이나 암반에 새겨진 불상을 말한다. 부처의 모습만을 생각한다면 종교적 근엄함이 다분하겠지만, 그 모습에는 당시 바위에 불상을 새기던 석공과 같은 시대를 공존했던 사람들의 심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서산마애삼존불은 근엄한 부처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온유하며 인심좋고 넉살스런 모습, 영락없는 백제인의 모습이며 당시 이땅을 살다간 수수한 민초들의 모습이다. 서산마애불은 가을 붉은 햇살이 뉘엿뉘엿 산등성을 향해 떨어지는 시각에 그 표정이 가장 온화하다고 한다. 그러나  hspace=3 src=한때 보호각을 세워 가을 빛이 드는 표정을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 보호각은 해체되었고, 이제 그 특유의 가을빛 머금은 온화한 미소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마애불로부터 용현리 계곡을 따라 1㎞가량 들어가다 보면 이번엔 너른 절터가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보원사지다. 한때는 꽤나 번성했던 사찰이라는데, 건물은 오간데 없고 석조물만 곳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당간지주와 석조, 오층석탑과 법인국사 부도, 부도비가 그것이다.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폐사지란 말이 흉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 곳에서 느껴지는 폐사지의 모습은 훈훈하며 푸근하다. 보원사는 한때 고란사로 불려지기도 했으며 서산마애삼존불의 원찰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정확히 전해진 바가 없다.

◎ 운산을 알차게 돌아보는 유적 코스
서산마애삼존불 - 보원사지 - 개심사 - 해미읍성

 

순교의 성지 해미읍성과 자연미 넘치는 절집 개심사
해미읍성은 해미면 읍내에 위치해 있다. 현존하는 조선 읍성 가운데 고창읍성과 더불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이다. 성곽 둘레가 1.8㎞, 면적은 2만여 평 정도다. 5미터 높이의 성벽이 2미터 남짓한 폭으로 둘려 있어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성곽의 특징상 전시에 대비해 쌓아 놓은 것이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잘 꾸며진 조경, 나직한 건물들, 성곽 안의 풍경들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의 커다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886년, 병인양요에 이어진 천주교 박해 때 이 곳에서 1000여 명에 이르는 천주교도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은 매우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갔다. 지금도 남아 있는 호야나무에 묶여, 혹은 구덩이 속에 산 채로 파묻혀 죽어갔다. 지울 수 없는 학살의 기억, 그러나 연유를 모르는 객들의 시선은 그저 서정적인 풍경 속으로 파묻혀만 간다.
 
◎ 운산 가는 길
개심사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32번국도 → 운산 → 647번 도로 해미방향→ 개심사
용현리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32번국도 →
          운산 → 7번 지방도 고풍저수지→ 용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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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와 만나다 - 미항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경상남도 통영 한산도 앞바다부터 시작되어 전라남도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자락 이백리 물길이다.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곳이자 고성, 삼천포, 사천, 하동, 남해, 여수로 이어지는 이백리 바닷길 중에서도 그 풍광이 손꼽히는 곳이다. 통영 미륵산에 올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득한 바다 너머로 점점이 흩어지는 섬들의 행렬, 내륙의 첩첩 능선들. 육지와 바다와 산과 섬이 어우러져 내어 놓는 풍광은 사람의 말로 다하기 어렵다. 이 좋은 풍광들을 꼭 보고 가라는 듯, 통영의 육지와 섬에는 망望 자가 들어간 산이 많다. 통영 시내의 남망산이 그렇고, 미륵산의 두 봉우리들은 각각 큰 망산과 작은 망산으로 불리운다. 사량도의 지리산 또한 망산이며 한산도의 산도 망산이다. 산의 이름이 죄다 이러하니 통영에 와서  hspace=3 src=산을 오르지 않는 것은 무안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통영의 바다는 이순신의 바다다. 통영이라는 이름이 조선 수군의 사령부인 통제영에서 비롯되었고 충무는 이순신의 호이다. 세계 유래에도 찾아 볼 수 없는 한산대첩의 격전지, 한산에는 이와 같은 지명이 부지기수다. 두억 개는 왜병의 모가지 억 개가 떨구어져서 생긴 이름이고, 개미목은 왜병들이 개미떼처럼 달아났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름들이 모두 이러한 탓에 어느 곳을 가도 이순신의 유적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수긍이 간다.

한산대첩의 격전이 펼쳐졌던 한산 앞바다, 한산도
 hspace=3 src=한산도는 성역의 섬이며 한산도의 바다는 성전의 바다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해 또한 피로 물들었는데, 이 바다를 물들인 피는 육지와는 달리 조선의 피가 아닌 일본의 피였다. 당항포와 옥포에서 승전을 올린 이순신의 함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정점을 맞게 된다. 1592년, 7월 8일 이른 아침에 출전한 조선 함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적선 70여 척과 마주한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학익진이 펼쳐지게 된다. 일본의 배들은 학익진의 날개 속에서 조선 수군의 무차별한 함포 공격을 받게 된다. 아비규환 속에 살아남아 도주한 배가 겨우 열한 척이었으니 죽은 자의 수는 헤아리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이후로 이순신의 함대는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 장악하게 되고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한산도는 이런 전사戰史를 바탕으로 성역화 되었다. 옛 통제영 자리였던 제승당 앞 수루에 오르면, ‘큰칼 옆에 차고 시름 읊던’ 이순신의 고뇌와 한산대첩의 찰나들이 밀물처럼 아득히 흘러간다.

◎ 한산도 가는 길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일곱 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여객선이 운행된다.
(소요 시간 30분) 통영터미널 : 055-644-0017 /
통영여객선터미널 : 055-642-0116

◎ 통영을 알차게 돌아보는 유적 코스
미륵산 - 해저터널 - 세병관 - 충렬사 - 한산도

◎ 통영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  판암I.C 대전,통영고속도로 →  사천I.C →  14번 국도 이용 → 통영


자연 속에 묻힌 세월의 흔적들 - 양양, 선림원지와 진전사지
 hspace=0 src=영동고속도로 속사를 빠져나와 양양으로 향하는 56번 국도는 강원도 산과 산마을의 그림같은 풍광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운두령을 넘고 구룡령을 지나면, 양양의 가장 큰 물줄기인 남대천의 지류 미천골이 나온다. 국도가 뚫리기 전엔 그야말로 산간오지마을이었던 이 곳은, 휴양림이 들어서며 비로소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기 시작한 곳이다. 선림원지는 물맑고 숲이 깊은 미천골 휴양림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위치나 선림사가 아닌 선림원이라는 이름에서 아마도 이곳은 대중들을 위한 사찰이 아닌 스님들의 수행처였던 듯싶다. 자세한 절의 창건 내력은 없지만, 이 곳에서 발견된 범종에 804년 순흥법사가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어 아마 그 당시에 창건된 사찰인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된 연유도 남아 있지 않아서 그야말로 산중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이 절터에는 모두 네 점의 보물급 문화재들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데, 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와 부도비 등이다. 이 문화재들이 자리한 위치로 미루어 선림원의 형태와 규모를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강현면 둔전리에 위치한 진전사터 역시 우거진 밭과 숲에 들어앉아 있다. 진전사는 신라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도의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도의선사는 당시 교종이 대세였던 신라 불교에 선종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로, 이 곳 진전사터의 유물들은 교종에서 선종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구분할 때, 그 문화재가 지닌 역사적 가치와 현 상태의 보존도에 따라 이들의 명칭이 갈리는데 진전사터 삼층석탑(국보 제122호)은 아마도 그 두 가지가 다 충족된 문화재인 듯싶다. 5미터가 넘는 높이에 살아 나올 듯한 조각들의 표정이 섬세하고 뚜렷하다. 이 조각들을 제대로 보려면 햇살이 알맞은 때에 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인데, 아마도 정오 햇살이 하늘 꼭대기에 있을 때보단 오전 10시나 오후 서너시쯤의 햇살이 좋을 듯싶다.

◎ 양양을 알차게 돌아보는 유적 코스
선림원지 - 낙산사 - 진전사지 - 하조대

◎ 양양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현남I.C → 7번국도 속초방면 → 양양

 

월악산과 충주호 자락에 스민 중원 문화의 자존심 - 충주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가르고 있는 월악산(1093m). 예전부터 이곳은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여덟 번째 임금인 아달라왕 3년(156)에 이 곳의 통로가 개척되었다고 한다. 바로 계립령이다. 계립령과 하늘재를 경계로 문경과 충주의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소백산 자락인 죽령 길과 함께 소백산맥을 넘나드는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더구나 남한강 물길까지 풍성하게 흐르던 충주는 온갖 문물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른바 중원문화가 크게 번성하게 되었는데, 삼국시대 당시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 곳을 차지하려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다. 본디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이 지역은 5세기말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6세기 중엽에는 다시 신라 땅이 되었다. 가금면 용전리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는 장수왕 시절 세워진 고구려의 점령 기념비인 것이다. 이 기념비는 오랜 세월이 흘러 비문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 볼 수 없지만, 당시 치열했던 삼국 간의 이 지역 쟁탈전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원고구려비에서 3㎞가량 떨어진 탑평리칠층석탑은 중앙탑으로 불리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 곳이 나라의 중앙임을 알리기 위해 세웠다는 특별한 유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땅 맨 남쪽과 맨 북쪽에서 한날 한시에 출발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던 곳이 이 곳이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고장사람들의 자부심이 탑 언저리에 은근히 베어 있다. 남한강의 시원스런 풍광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데, 신라탑 중에 가장 높고 칠층석탑으로는 유일무이하다.
 
◎ 충주와 충주호로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I.C →충주 → 3번 국도 수안보방향 → 살미삼거리 좌회전(월악나루), 직진(수안보온천, 미륵리사지) 

◎ 충주를 알차게 돌아보는 유적 코스
중원고구려비 → 탑평리칠층석탑 → 미륵리사지 → 사자빈신사터 → 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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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슬픈 이야기 - 덕주사와 미륵리사지
  월악산 자락, 5㎞ 정도 떨어진 덕주사와 미륵리사지에는 각각의 마애불(보물 제406호)과 석불(보물 제96호)이 상대편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무슨 연유일까? 여기에는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아들과 딸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닯은 사연이 숨어 있다.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 결국 고려에 항복을 하게 되었다. 나라의 모든 실권을 고려에 넘기게 되었는데, 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딸 덕주공주는 통곡을 하며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 신라의 마지막 날,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경주를 떠나 오대산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일행이 월악산을 지날 즈음, 그만 고려의 호족들에게 붙잡히게 된다. 결국 마의태자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덕주사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두 남매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패망한 신라의 한을 달래기 위해, 각기 미륵불과 마애불을 건립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의 미륵리 석불과 덕주사 마애불인 것이다.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때에 세워져 원래 이름이 월악사였지만, 덕주공주가 이 곳에 살게 되면서 지금의 덕주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덕주사는 마애불이 새겨 있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뉘어 있다. 원래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큰 절집이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하덕주사만 1970년대에 중건되었다. 하늘재 아래 쪽에 위치한 미륵리사지 역시 소실되어 70년대부터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이 곳은 특이한 법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석굴로 만들어진 법당으로, 절터 위쪽에 하늘재로 넘어가는 길이 이어져 있다. 미륵리사지에서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3.2㎞ 가면 하늘재에 당도하게 되는데, 그윽한 숲길 주변으로 자연생태탐방로를 만들어 산책 코스로 딱히 좋다. (생태탐방로 왕복 소요 시간 1시간 정도)



▶ 글 : 남정우
▶ 사진 : coreein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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