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문화유산답사 - 선조의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일
2005-06-15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969

송광사의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아름다운 봄날 ‘IT 동호회’는 완주 송광사에 다녀왔다. 송광사에 대한 역사적 유래 등을 알아보고 공부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우리들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일 역사의 과거가 되는 현재라는 것이다.



태어난 지 벌써 만 일 년이 넘어가는 문화재청 내의 동호모임 ‘IT 동호회’는 지난 4월 완주 송광사에 다녀왔다. 하루하루 숨가쁘게 살아가는 생활의 흔적들을 뒤로 한 채, 토요일 퇴근시간에 맞춰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짧은 기행이었다. 선조들이 남겨주신 귀중한 자산을 모델삼아 우리들의 배움을 실습하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전국각지 어디고 할 것 없는 벚꽃관람 인파로 인해 경내까지 진입하는 길이 조금은 짜증스러웠지만 송광사를 안내하는 아름드리 벚꽃터널의 반김과 늦은 시간이었음인지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경내의 평화로움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해질녘의 어스름한 하늘빛과 어우러진 고건물 처마의 아름다움, 게다가 그 아래 하늘거리는 풍경에서 울려나오는 음악과의 그림 같은 어울림이라니….

   모두들 구석구석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고 이곳저곳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한 곳 오려내어 화폭으로 옮긴다면 작품이 아닌 것이 없으리라. 살아가며 감동할 일 참으로 많고 감사할 일 또한 적지 않지만 이 순간 역시 감사함에 주저함이 없으리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문화유산과 또 그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우리들의 일이야 말로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완주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웠다고 하며, 광해군 14년(1622)에 이르러 응호·승명·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증·개축을 통하여 큰 절로 번창하게 되었다. 보물로는 제1244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완주송광사 종루’ 및 ‘완주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완주송광사 소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이 있으며, 지방유형문화재로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 사적비’ 가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며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송광사에 대한 역사적 유래 등을 알아보고 공부하며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우리들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일 역사의 과거가 되는 현재라는 것이다. 오늘 이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문화재지기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다짐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IT 동호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면서 송광사 유적답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김성희 / 재정기획관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