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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로 채워진 열 길 물속, 우물井
작성일
2012-04-1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548

생명력의 근원을 담은 우물井
물은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재앙災殃이나 잡귀를 물리치고, 세속世俗의 공간을 신성한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왔다. 만물의 탄생과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초적인 생명력 또한 물이 지닌 특성이다. 이렇게 ‘우물’은 물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와 현실적 필요로 인해 인간의 삶 한가운데 자리하게 된다.

우물을 파고 제사를 올린 고대古代 사람들
정착생활이 시작된 신석기시대에는 식수를 마련하는 일이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면 ‘우물’을 파서 일정량의 물을 얻었으니 매우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들은 땅을 판 후 내벽內壁에 나무를 대는 방식으로 비교적 쉽게 목조木造우물을 만들어 이용했다. 다만 나무 벽이 쉽게 썩기 때문에 우물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며, 이러한 까닭에 목조우물은 지금까지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만나기 어렵다.

삼국시대에는 좀더 발전되어 돌로 쌓아올린 석조石造우물이 나타난다. 공동식수장共同食水場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석조우물 제작은 목조우물에 비하여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반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발굴을 통해 확인되는 대부분이 돌로 쌓아 만든 우물인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토성 경당지구(한성기 백제 왕성의 중앙부로 추정)의 석조우물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백제 온조왕溫祖王대의 기록에는 정촌현井村縣, 천정군泉井郡 등 우물을 일컫는 마을 지명이 등장하고 있어 취락구성에 우물이 중요한 요소였음을 알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발굴을 통해 드러난 옛 우물 안에서‘井’자字가 새겨진 명문名文토기와 수백 개의 기와가 차곡차곡 쌓여 발견되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소와 말, 개 등 다양한 동물과 각종 물고기 뼈, 복숭아씨 등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 이로써 우물이 식수제공을 위한 기능 외에도 기우제祈雨祭를 비롯한 국가 의례의 장場 역할을 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 유적과 유물을 통해 우물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을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우물, 신화와 전설을 낳다
우물은 생활상의 필요라는 실용적인 기능을 넘어 중요한 신화적 표상表象을 담고 있다. 특히 신라의 시조始祖 탄생은 우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강誕降 장소가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이고, 그의 비妃 알영閼英 역시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가에서 나온 계룡鷄龍에 의해 출생한 것이 그러하다.

들여다보아서는 그 끝을 알기가 힘든 우물. 그래서 우물은 용궁이나 저승과 같은 미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로써 우물과 용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고려사高麗史》에서 태조의 어머니인 원창왕후를 우물을 통해 용궁을 드나드는 용녀龍女로 설정하여, 용의 자손으로서 태조 왕건의 왕권에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 그 예이다.

물의 소중함과 신성성에 대한 인식은 물의 유연한 움직임과 원리를 상징화시켜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을 만들었다. 우물제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우물에서는 종종 ‘용왕龍王’이라는 글귀가 써진 목간木簡이 발견되곤 한다. 이는 오늘날 우물에 용왕이 살고 있다는 믿음과 같은 맥락에서 우물과 제사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우물은 건국시조를 섬기는 신성한 장소로 나타나는데, 우물의 신화적 상징성은 여러 전설을 통해 치병治病이나 재생再生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지속되기도 한다. 우물과 관련한 다양한 설화는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우물에 대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물이 가져다 준 민속
우물에 대한 상징과 의례 행위의 역사적 전통은 우물고사告祀 등의 마을민속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식수를 공급해주는 우물의 변화에 늘 긴장하였고, 우물의 변화는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이러한 관념은 매년 정초 우물가에 제물을 차려놓고 한 해 동안 변함없이 깨끗한 물이 나오도록 빌고, 나쁜 병이 돌지 않게 비는 행위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나 영험한 기운이 있는 우물물을 떠다가 마을 우물에 섞어주는 풍습이 있는가 하면,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새해 첫 용날에 행하는 ‘용알뜨기’도 우물과 관련한 대표적인 세시풍속이다. 마을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우물 물을 떠서 밥을 지으면 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이렇게 행했는데, 우물에 비치는 달은 용이 낳은 알이며 이것을 떠오는 행위로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믿었던 소박한 심성이 비치는 민속이다.

 

좋은 물을 얻기 위한 마을공동체의 지혜

상수도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마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우물은 마을 내에서 신성한 공간이었다. 물의 공급은 삶과 직결되는 것이었기에 개인을 넘어 마을 전체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물을 파는 일은 항상 마을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고, 마을에서 물이 많이 나는 곳을 찾기 위해 경험적 지식을 동원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의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우물은 아무 곳이나 파는 것이 아니고, 함부로 메우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하여 우물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물이 오래되면 흙이 쌓이고 물이 탁해진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우물의 사용과 관리를 위해 특별히 ‘우물계’를 구성하기도 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그에 합당한 노력과 의무를 다하였다. 옛 사람들은 좋은 우물을 얻기 위해 협동이라는 지혜를 구사한 것이다.

우물 속에 잠긴 문화 깨우기
고대로부터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도 물을 얻어낸 옛사람들의 지혜가 모인 곳, 마을 차원에서 식수를 관리하여 공동체의 손길이 항상 닿아 있던 곳 ‘우물’. 전통적인 식수원이었던 우물이 1920년~3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 상수도로 교체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우물을 사용하는 마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게 닫혀 버린 우물의 뚜껑을 열고, 열 길 물속을 가득 채웠던 우리 문화를 두레박으로 힘차게 퍼 올리고 싶어진다.

 

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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