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든 경이로운 목화 성, 터키 파묵칼레
작성일
2012-04-1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635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로마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스트라본은 『지리지』란 책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히에라폴리스는 신탁이 거행되었던 성스러운 고장이었다고. 그리고 자신이 히에라폴리스를 찾는 것은 신탁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라고.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의 왕 에우네스 2세는 아나탈리아 남서쪽 군사요충지에 요새를 건설했다. 요새도시가 완성되자 왕은 왕국의 창시자 텔레포스 왕의 부인 히에라의 이름을 따 히에라폴리스라고 명명하였다. 히에라의 그리스어 표기 ‘히에로스’는 신성함이란 뜻으로 이후 사람들은 히에라폴리스를 ‘신성한 도시’로 불렀다.

히에라폴리스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로마 지배하에 들어간 기원전 130년경이다. 도시를 점령한 로마군대는 제일 먼저 로마를 통하는 도로를 건설하였다. 도로가 완성되자 대로를 따라 관공서와 목욕탕이 포함된 종합 문화공간인 페르메, 광장, 개선문, 신전, 극장 등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마주할 수 있는 유적은 대부분 로마 때 세워진 것이다. 오랫동안 히에라폴리스로 번성했던 이곳은 아랍인들이 지배하면서 언제부터인가 터키어로 ‘목화 성’이란 의미를 지닌 파묵칼레로 불리게 되었다.

 

수천 년에 걸쳐 조성된 신비로운 온천유적지
높이 100m 길이 2km에 달하는 거대한 석회석 언덕으로 이루어진 파묵칼레 유적지는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목화 성이다. 다량의 탄산칼슘을 함유한 온천수가 만들어 낸 신비로운 목화 성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오랜 벗 무스타파와 함께 오른다. 유적지 아래 마을에서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무스타파와 가파른 비탈길을 선택하는 까닭인즉, 포장된 도로를 걷거나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경이로운 목화 성을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좁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마주하는 태양의 각도와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온천수가 연출하는 장관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로마시대 때 이미 류머티스, 심장병, 신장병, 순환기 질환에 뛰어난 효능을 인정받았다. 그 명성은 유구한 세월을 뛰어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수량이 부족하지 않았다. 매시간 수백 톤에 달했던 풍부한 수량은 인근 마을에 식수와 농수를 공급했었다. 이를 증명하듯 유적지 여러 곳에서 카라하이으트 마을과 아오디게아 마을로 이어진 수로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파묵칼레를 찾았던 24년 전만 해도 어디서나 온천욕이 가능했다. 허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방문객이 급증하고 주변 숙박시설에서 다량의 온천수를 사용하면서 2000년대 초반 한때 관람객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었다. 급격한 수량 감소로 인하여 석회석 기둥 위 야외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녹록하지 않지만, 석회석 기둥이 받치고 있는 100여 개에 달하는 야외온천은 오늘도 방문객을 맞고 있다.

 

살아 있는 세계유산 고대 온천욕장
로마 귀족들은 휴식을 위해 히에라폴리스를 찾았다. 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히에라폴리스를 찾은 황제는 히드리아누스를 비롯하여 카라칼라, 발렌스 등이 있다. 이들은 도시 건설에도 적극적이었다. 현존하는 다수 유적지가 이들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목화 성 언덕에는 로마 때 건설해 놓은 종합휴양시설인 ‘테르메’가 십여 곳이나 세워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 유적지와 온천만 남아 과거의 영화를 증명하고 있다. 현존하는 로마 온천유적지는 하나뿐이다. 규모와 화려함에서 로마 카라칼라 욕장에 비교할 수 없지만 황제와 귀족들이 사용하던 온천이 유지되는 곳은 파묵칼레가 유일하다. 지금도 온천으로 사용되고 있는 파묵칼레 온천수는 체온과 흡사한 섭씨 36도로 긴장된 근육과 심신에 축적된 피로 해소에 그만이다.

풍광과 분위기만 놓고 보면 파묵칼레 온천은 사방이 너도밤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일본 온천이나 캐나다 로키 산자락 온천에 못 미친다. 허나 약 2,000년 전 로마 황제와 귀족을 위하여 조성해 놓은 세계적인 유적지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파묵칼레 온천유적지는 여느 온천유적지처럼 눈으로 감상하는 유적지가 아니라 지금도 사용이 가능한 살아 있는 유산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유적박물관
야외 온천이 내려다보이는 유적지 언덕에는 신전, 도로, 광장, 대극장, 휴양시설, 비잔틴 건축물이 흩어져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던 당시 히에라폴리스에는 넓은 길을 따라 수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커다란 사각형 대리석이 깔린 대로 북쪽 끝자락에는 도미티아누스 개선문이 있다.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개선문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등을 둘러본 방문객이라면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개선문은 소아시아 지역에 건설된 개선문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성한 도시를 찾는 방문객을 반긴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의 백미는 동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극장과 무덤유적지 네크로폴리스이다. 로마 황제와 귀족들은 온천으로 심신의 피로를 푼 후 저녁이면 극장에서 여유롭게 문화생활을 만끽했을 것이다.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찾을 때도 습관처럼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한다. 이유는 45층으로 이루어진 계단 정상에 서면 극장과 유적지는 물론이고 멀리 주변 마을과 자연경관까지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북쪽에는 원래 1만 5천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다. 거대한 무덤도 지진으로 90% 이상 사라진 상태다. 헬레니즘 고분을 필두로 정교한 로마식 석관묘, 둥근 천장이 있는 기독교식 무덤, 작은 비석을 세워놓은 아랍 무덤이 공존하는 네크로폴리스 무덤군은 로마 세르베테니 무덤지역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를 영유했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히에라폴리스 무덤군은 수천 년에 걸쳐 이곳에서 꽃피웠던 다양한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진귀한 유산이기도하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터전
내가 여덟 차례나 파묵칼레를 찾은 이유는 신비로운 경관과 유적지만 보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벗들이 없었다면 서너 번쯤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아담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무스타파, 토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헤팟, 관광업에 종사하는 코셈, 카펫 공방을 운영하는 바샥 등. 그중 가업인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무스타파는 파묵칼레를 자주 찾게 만든 주인공이다. 이런 인연으로 파묵칼레와 인근 도시를 찾을 때면 늘 그의 집에 짐을 푼다. 그런 다음 비탈길을 따라 목화 성을 둘러본다. 그리고 저녁이면 친근한 벗들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신성한 도시를 의미하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출발하여 목화 성이란 의미를 지닌 지명 파묵칼레로 불리는 곳. 그곳에 이르면 신이 만들어준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인간의 피와 땀으로 완성한 매혹적인 합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터전에서 살아가는 정이 많은 사람들과 조우가 가능하다.

 

글·이형준 여행작가 사진·이미지투데이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