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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성한 이야기가 운율에 깃든 예술, 가사歌詞
작성일
2012-04-1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728

 

인연, 삶의 길을 열다
이준아 전수교육조교는 어린 시절 시조를 배우면서 정가(正歌. 우리나라의 전통 성악곡으로, 가곡, 가사, 시조가 이에 속한다.)를 시작했다. 일곱 살 때였다. 국악 쪽에 깊이 관여하고 계셨던 조부(故 이도수)의 눈에 그 재능이 일찍이 띄어 국악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조부가 가시조시인들을 불러 정기시조창 모임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몸으로 체득하고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조부의 권유로 가곡에 입문했고, 한국정악원의 이주환 선생에게 직접 사사 하였다. 중요무형문화재 가사 이양교 보유자와의 인연은 국립국악고등학교 재학 중에 이루어져, 가사를 전수받기 시작했다. 시조와 가사를 꾸준히 익히는 동안, 그녀는 그리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냈기에 그때 이양교 보유자와의 인연이 그녀의 삶에서 결정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당시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정가 전공이 없어 거문고 전공을 하고 있었지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시조와 가곡을 공부해 와서 국악고등학교 행사 때 매번 불렀어요. 이양교 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직접 저를 찾아와 당신의 문하생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해주셨죠.”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모든 문화유산이 그러하듯, 이준아 조교 또한 사람에서 사람으로,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가사의 역사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인연이 깃든 노력 덕분에 가능한 오늘의 길이기에,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사의 풍성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히 가사를 잇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정가를, 그리고 가사를 알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싯구의 운율에 담긴 가사의 미학
사실 대중들에게는 가사가 그리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조는 워낙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 자생력이 강하고, 가곡은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같은 정가 장르인 가사가 아직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가락을 유심히 들어보노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운율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먼저 가사는 ‘가사문학’이라는 문학 장르에서부터 출발한다. ‘운율이 있는 산문형식의 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산문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곡이나 시조에 비해 매우 긴 장편가요다. 여기에서 가사가 가곡과 시조와 다른 점이 드러난다.

“가곡이나 시조는 고정된 가락이 있죠. 하지만 가사는 노래가 구사되면 반주는 밑으로 깔며 쫓아오는 수성이에요. 노래가 반주에 의지하지 못하는 점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노래 부르는 사람의 공력을 표현하기가 좋죠. 그에 비해 가곡은 일정한 가락이 있어 여러 악기의 반주가 노래와 함께 어우러지고, 남녀가 교창을 하니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어요. 하지만 가사가 가곡에 비해서 예술성이 없다기 보다는 숨어 있다고 보면 되죠.”

가사의 미학은 노래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형식의 자유로움에 있다. 산문시일뿐더러 중국시, 한시가 많이 차용되어 있어 내용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노래를 듣고 그것을 마음속에 풀어놓다보면, 흥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사와 운율에 깊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또한 12가사 중에서 8가사가 무용장단인 6박으로 이루어져 있어 듣기에 흥겹고 즐겁다.

“12가사 중에서 특히 <권주가勸酒歌>는 박자가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뽑고 싶은 데로 마음껏 뽑을 수 있죠. 또한 가사를 부를 때 일반적으로 대금, 피리, 해금, 장구 딱 네 가지 악기로 반주가 이루어져요. 정해진 것이 없어 반주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가사예요.”

 

오롯하게 이어지는 가사, 더 널리 더 많이
이준아 조교는 1997년도, 정가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공연을 했다. 그 당시는 국악을 하는 사람들조차 가사라는 이름을 모를 때였다. 이양교 보유자가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권주가>를 배워 12가사 전수를 완성하고, 그것을 모두 외워 한 무대에서 한번에 완창했던 것이다. 다만 12가사를 모두 부르면 3시간 30분인데, 가사의 특성상 반복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반복 부분을 잘라 2시간 공연을 했다.

“한 무대에 12가사를 모두 올린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하고자 했던 사람도 없었고요. 신문, 방송, 뉴스 곳곳에 실려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그때 사람들에게 12가사라는 게 알려졌고, ‘한국정가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 성악곡을 오롯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이준아 조교의 정가 인생은 가사로 완성되며 40년이 훌쩍 넘는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1991년도, 남북한 UN 동시 가입 공연이 열렸던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곡 독창 후 타임지에서 호평을 받으며 일찍이 그 재능을 널리 알렸던 이준아 조교. 벌써 국립국악원에 재직한 지 29년이 되었다.

이제 후진을 양성하고, 가사의 실질적인 활용과 대중화에 더욱 목마름을 느끼는 시기이다. 그래서 더욱 큰 꿈을 꾼다. 가사를 더 널리, 더 많이 알리기 위한 노력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12가사 중 8가사가 무용장단인 6박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무용과 가사의 접목이 현재보다 훨씬 더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노래는 그대로 가되 가야금이나 거문고, 양금을 새롭게 접목해 가사를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고요.”

전통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그렇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어떤 문화유산이든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융성해질 수 있다. 가사에 대한 이준아 조교의 마음도 그러하다. 무릇 역사란 사람과 사람에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사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풍성한 역사를 만들고자 한다.

 

글·박세란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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