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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유산의 숨결을 찾아
작성일
2006-07-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312



와불
<와불>
천불천탑 운주사의 와불臥佛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용화세상龍華世上에 대한 화두의 답은 역시 현실의 이 땅이다. 이곳이 진정 평화의 땅이요,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할 곳이기 때문이다. 운주사의 와불은 진정한 용화세상이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일구고 만들어가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단순히 일상을 떠나 산과 들을 찾아가는 것도 매우 유쾌한 일이지만 아직 보지 못한 우리 산하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길은 더 없이 기쁜 여행길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찾아가기 어렵고 다른 문화유산과 다른 문화적 특질을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답사라면 그 흥분감은 배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유쾌하며 흥분이 고조되는 답사의 가장 대표적인 곳이 단연코 전남 화순의 만산계곡에 자리 잡은 운주사일 것이다. 화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화성연구회에서 충청·전라도 일대의 읍성과 산성을 찾아 떠나는 길에 새로운 문화의 충격을 보자며 운주사 답사를 일정에 포함시켰다. 사실 운주사에 대한 이야기는 연구회 뒤풀이에서 젊은 답사꾼들에게 가끔 들어 매우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술 한 잔을 걸치면 자주 운주사의 신비함을 목청 높여 외치곤 했다. 하지만, 수원시의 도시계획을 전담했고 새로이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보전하는 일의 책임을 진 공직자로서 시간을 내서 운주사를 방문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우리 화성연구회에서 운주사 답사 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만사를 제쳐 놓고 회원들과 운주사로 길을 떠났다. 나주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다는 불회사佛會寺를 거쳐 굽이굽이 포장길을 돌아 운주사 주차장에 들어섰다. 예전 80년대 초반에 남평에서 비포장 길을 통해 엄청나게 어렵게 이 길을 찾아왔다고 우쭐해 하는 후배를 보며 옛 길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아마도 지금보다 약간은 불편했겠지만 몇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에 올라 전라도 사람들 특유의 육자배기 소리를 들어가며 시골길을 한나절 달려 찾아오는 그 맛이 한편으로 그리웠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주차장은 의외로 넓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이 외진 곳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리고 누가 찾아오는 것일까 생각하며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협곡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길게 솟아있는 탑과 길 옆으로 붙어있는 불상들은 기존에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던 그 탑이 아니요, 불상이 아니었다. 탑은 전혀 알 수 없는 형식으로 가득했고 불상은 부처의 위엄은 사라지고 그저 농투성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못생긴 것을 떠나 절 밖에서 모내기를 하다 지게를 메고 방금 들어온 농사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정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위엄으로 말미암아 다가서기 힘든 불상이 아닌 그저 만지고 끌어안아도 싫증 내지 않고 허허 웃을 것 같아서였던 모양이다. 과거 탑이 있던 주위는 모두가 논이었다고 한다. 운주사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폐사가 되고 나서 농군들이 들어와 탑과 불상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땅을 모두 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살붙이고 살았던 것이다. 그 논이 모두 잔디밭으로 변했으니 한편으로 아쉽기 그지없다. 논 위에 탑이 있다면 오히려 더한 정취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진정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천불천탑이라더니 과연 기러기가 줄을 이어 날아가는 모습처럼 탑들은 이어지고 불상들은 꼬리를 물었다. 형식의 파괴는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고 우리는 탑신부에 새겨진 ‘X’자 문양 등의 다양한 문양을 보며 이 탑을 만든 당대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곳이 절집이 맞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딜수록 새로 단장된 이곳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곳도 결국 세속으로 들어오는구나. 피안의 세계가 세속으로 들어오니 세속의 사람들은 과연 누가 구제해줄 것인가? 새로 중건된 운주사 경내를 지나 공사바위로 오르는 곳에 참으로 예쁜 탑을 보았다. 둥근 시루 모양의 돌을 이어 만든 탑은 신라시대 이층기단의 삼층석탑, 백제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부처가 곧 농군이듯 우리의 삶 주위에 있는 그 무엇이든 쌓아 올리면 그것이 바로 탑이었다. 석가모니의 사리가 있어야 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땅을 딛고 살아갔던 그들의 숨결이 담겨 있으면 그것이 탑이었다. 너무도 못생긴 4층의 시루 모양의 탑은 그 어떤 고귀한 문화유산보다 나를 감동시켰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를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사바위에 올라가야 한다. 운주사를 창건한 이는 신라 말의 도선국사였다고 한다. 전라도 일대의 절집 중에서 도선이 창건하지 않았다는 절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도선이 세웠건, 아니면 고려 초 이 지역의 원래 백성이었던 백제 유민이 세웠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바로 용화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평등하고 전쟁과 살육이 없는 평화 그 자체의 세상인 용화세상을 만들기 위해 천불천탑을 건립한 것이었다. 그 평화를 위한 천불천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사바위에 오르면 만산계곡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아! 아!” 하는 감탄을 연발하다가 눈을 지그시 감고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공사바위를 내려와 운주사의 절정인 와불을 보기 위해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 곳곳에 우리의 모습과도 같은 불상과 탑이 어우러져 있고 마지막 꼭대기에 미처 일어나지 못한 부처가 누워있다. 이곳 와불의 전설은 새로운 세상의 꿈이었다. 천구의 미륵석불이 ‘하룻밤 새’ 만들어져 세워지면 수도가 바뀐다고 했다. 아마도 고려왕조가 건국되고 그 치하에 있던 백제유민들은 지상의 ‘용화세계’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미륵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만산계곡에서 정과 망치로 끈질기게 탑을 만들고 부처를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구백구십구 개의 부처를 만들고 마지막 부처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새벽닭이 울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일어나지 못했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누워있는 것이다.

와불을 보고 내려오며 생각해보았다. 진정 용화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존재한다면 나의 용화세계는 어디일까? 운주사를 세계에 알린 독일의 예술사학자 요헨 힐트만은 이곳이 세계 최초의 평화공동체였다고 역설하였고, 그와 더불어 80년대 중반 이곳에서 술 한 잔 나누며 천불천탑을 거닐었던 송기숙과 이태호, 그리고 황석영 역시 이 땅이 용화세계였음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황석영은 장길산의 마지막 대목에서 길산의 무리가 이곳 운주사로 들어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리라. 나의 용화세상에 대한 화두의 답은 역시 수원 화성인 것이다. 그곳이 진정 평화의 땅이요,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할 곳이기 때문이다. 속세가 곧 용화세상이요, 용화세상이 곧 속세이듯 세속의 한가운데 있는 화성이 곧 우리의 용화세상일 수 있는 것이다. 화성을 올바르게 보전하여 역사문화도시로만 인정받을 것이 아니라 진정 세계의 평등평화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운주사의 와불은 곧 화성의 와불이 되는 것이며 결국 흰 새벽에 벌떡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든 것이리라. 멀리 고개를 돌려 천불천탑의 만산계곡을 바라보니 어느덧 전라도 육자배기가 내 온몸에 휘감기는 것을 느꼈다. 김충영 _ 수원시 화성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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