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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의 동거와 이별, 그리고 112년 만의 귀향과 재회를 기다리는 지광국사탑
작성일
2023-10-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34

천년의 동거와 이별, 그리고 112년 만의 귀향과 재회를 기다리는 지광국사탑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겨울 문턱,고려 왕궁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폐하, 해린 큰스님이 입적하셨다고 합니다.”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원주 법천사로 하산한 해린 스님이 입적했다는 부음이 왕에게 전해졌다. 그 당시 고려를 다스리고 있던 문종(재위 1046~1083년)은 비통함에 만월대 너머의 먼 산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해린은 지광국사의 살아생전 이름이었다. 01.원주 법천사지의 지광국사 현묘탑과 탑비가 세워진 자리다. 이미 지광국사 현묘탑이 경성(서울)으로 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허가 된 현묘탑과 탑비가 있던 자리를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국정을 도운 나라의 큰 스승 해린 스님

해린(海麟) 스님은 여든을 넘긴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왕궁에서 가까운 사찰에 머물며 국정을 도와 나라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았다.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지자 왕에게 하산을 청하였고, 왕이 극구 만류하였지만, 스님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안 것이다. 왕은 헤어짐이 아쉬워 전별연을 베풀고, 태자에게 멀리까지 나가 배웅토록 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날아든 부음에 왕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모든 경비를 나라에서 지원하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관리를 파견했다.


문도들은 조문이 끝나자, 법천사 동쪽 기슭의 길지를 택하여 다비식을 거행했다. 마지막 가는 길, 큰 스님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염불 소리가 온 천지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왕은 다비식이 끝나자 대신들과 논의하여 해린 스님에게 큰 지혜의 빛이라는 의미의 ‘지광(智光)’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 최고의 석공에게 유골과 사리를 모신 탑과 함께 살아생전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를 세우도록 명한다. 


탑비에 새길 비문은 문장가로 명망이 높았던 정유산(鄭惟産)을 불러 찬하도록 했다. 그리고 새롭게 세워질 탑과 탑비의 이름은 도리나 이치가 깊고 오묘하다는 의미의 ‘현묘(玄妙)’라고 내려졌다. 이로써 고려 문종은 나라의 큰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다했다.


02.원주 법천사지에서 반출된 직후 경성(서울) 명동 무라카미병원(村上病院)에 서 있는 모습. 일본 오사카로 옮기기 전 모습이다(1911년) 03.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복궁 경회루 동편에 세워진 모습(1923년). 04.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후 보수 정비하는 모습(정영호 촬영, 1957년).

천년을 마주 보고 선 지광국사를 위한 탑과 탑비

왕의 명을 받은 석공은 예술적 의욕과 심미안이 넘쳐났다. 석공은 법천사에 세울 탑이 기본적으로 스님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염원하기 위한 조형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도 오랫동안 지속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고려 왕조에 걸맞은 혁신적이고 품격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깊은 고민과 명상을 거듭했다. 결국 석공은 전대미문의 탑을 완성했다.


탑의 전체적인 평면은 기존 관행을 깬 팔각형이 아닌 사각형을 적용하였고, 상륜부는 원형과 팔각형을 혼용해 다양성을 갖도록 했다. 탑은 넓고 높은 받침부를 마련해 그 위에 사리를 모신 탑신을 올렸는데, 이 탑에서 가장 핵심 공간이 어디인가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지붕을 갖춘 전각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탑신에 모셔진 사리를 공양하고 찬탄하기 위하여 상륜부는 높고 화려한 외관이 형성되도록 했다. 


나아가 석공은 탑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탑의 외곽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령스러운 동물상을 배치하여 영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백수의 왕 사자상은 별도로 만들어 사방을 수호하도록 했다.


중요 부재의 표면에는 속인들이 사리를 모시고 공양하는 모습, 용이 구름과 함께 승천하는 모습, 도인들이 구름을 타고 불가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습 등 사바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되어 탑 자체가 신령한 세계임을 표현했다. 탑신에는 굳게 잠긴 문과 영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문양을 새겨 그 안에 사리가 모셔져 있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공간임을 표출했다. 


각 부재의 표면에는 꽃, 구름, 보주, 구슬 등 다양한 문양을 새겨 장식을 도왔다. 큰 스님을 공양하고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밑에서 꼭대기까지 한 치의 빈틈도 주지 않았다. 탑이 불가의 세계를 현실 속에 옮겨온 것이라면, 불가에서 가장 장엄하고 성스러운 공간에 해린 스님의 영령이 머물도록 했다.


석공은 정 끝이 무뎌질 때까지 섬세한 표현에 온 정성을 다했다. 탑은 인간이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최고로 장엄한 세계를 현실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희대의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석공의 생각과 손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의 생각과 손을 가진 인간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지광국사 현묘탑의 현묘스러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로써 지광국사를 위한 탑과 탑비는 한 쌍으로 같은 장소에 부부처럼 나란히 세워졌다. 서로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지만, 운명처럼 천년을 넘게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탑 수난사]

-1911년:원주 법천사지에서 경성(서울)으로 반출 서울 명동의 무라카미(村上)병원에 세움

-1912년:일본 오사카로 반출하였다가 반환

-1915년: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이 있었던 경복궁 뜰에 세움

-1923년:경복궁 경회루 동편으로 이전

-1932년:해체 후 재건

-1950년:6.25전쟁 중 폭격(약 1만 2,000조각으로 폭파)

-1957년:보수 및 복원

-1983년:해체 보수

-1990년:국립고궁박물관 뜰로 이전

-2016년: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전하여 보존 처리

-2023년: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이전


05.보존 처리를 위해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해체 이전하는 모습(2016년). 06.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 처리를 하기 위하여 옮겨 놓은 모습(2016년). 07.보존 처리를 마치고 법천사 유적전시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모습(2023년).

떨어지게 된 탑과 탑비, 시련의 여정

영원할 것만 같았던 탑과 탑비의 인연이 나라를 잃으면서 시련으로 다가왔다. 탑과 탑비는 고려시대 법천사의 길지에 세워진 이후 수많은 갈등과 전쟁을 무사히 견디어 냈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속절없이 깨지고 말았다. 둘은 천년 넘게 함께 자리를 지켰는데, 1911년 인간들의 눈요기를 위하여 탑이 배에 실려 서울로 팔려 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손을 타다가 바다 건너 일본 땅까지 갔는데, 그나마 조금의 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이곳저곳을 떠도는 기구한 운명으로 지내다가 1950년 6.25전쟁 당시 폭격을 맞았다. 기구한 운명에 비운까지 겹쳤다. 


탑은 만 조각이 넘는 상처투성이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다가 1957년에야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사할 때 함께 가지 못하고 홀로 외롭게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상당한 수준의 보존 처리 기술이 축적되자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이전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 되자 2023년 8월 원주 법천사지로 옮겨 놓았다. 드디어 운명처럼 천년 넘게 함께한 탑비가 있는 자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지광국사를 위한 탑과 탑비가 처음부터 한 쌍으로 부부처럼 세워진 만큼, 인간들을 위한 탑과 탑비가 아니라 온전히 탑과 탑비를 위한 길이 열려 그동안의 기구한 운명과 비운을 날려 버리길 한 인간으로서 바라 마지않는다. 지금 지광국사 현묘탑도 숨 쉴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귀향을 넘어 재회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염원한다.앞으로는 문화유산을 통한 우리가 아니라, 문화유산을 위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유산이 말을 못 한다고 하여 아무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숨 쉬는 생명이 있다.




글, 사진.엄기표(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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